4. 달리기 대표는 부끄러워 - 콩나물밥

by 루치아

딸이 다니는 학교는 00교육대학교 부설초다 보니 대학교와 운동장을 같이 써서 동일 지역 내 다른 초등학교보다는 운동장이 크고, 인조잔디도 깔려 있고, 실내 체육관 실내수영장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의 초등학교 둘은 운동장이 전체 학년 아이들을 아우르기 힘들어 시립 공설 운동장을 빌려 쓰기도 한다던데


부설초는 운동장이 큰 것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남편 회사에 제출하면 공제된다는 서류를 떼러 오후에 딸 하교 시간 맞춰 학교를 찾았더니 아이들이 여기 저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래. 애들은 저렇게 뛰어놀아야지. 땀이 쫄쫄 흘러 얼굴에 머리카락이 들러붙어도, 햇볕에 좀 그을려도, 바지에 먼지가 묻어도 너무나 예쁜걸.


딸네 학교는 1,2,3학년은 11:30~12:30에 점심을 먹고 12:30~1:10에 4교시 수업을 하고, 4,5,6학년은 저학년 점심시간에 4교시를 하고 12:30~1:30에 점심을 먹는다.


그러니까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다 점심시간 후 뛰어노는 고학년 아이들이었는데,

50m 달리기 레인에서 누가봐도 1학년인 쪼끄맹이들이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달리는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엥? 울 딸램이?


딸은 열심히 달리더니 네 명 중 1등으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 내 딸이 1등 했어요! 1등! 우와!!!


딸은 예정일보다 2주 정도 먼저 태어났는데, 그 정도야 조산이랄 것도 없이 정상범위였지만 체중치 2.6킬로로 작게 태어났다.


별다른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의사 선생님도 아주 건강하다고 해주셨고, 주변 분들도 '작게 낳아 크게 키우는 것' 이라고 말했지만, 난 작게 태어난 딸이 안쓰러웠다


내가 밤일(?)을 하는 학원 원장이라 애가 뱃속에서 제대로 못 컸나, 맨날 속 안좋다고 라면, 짬뽕만 먹어서 그런가, 남들은 태교하는데 난 그런 거 한 번 안해서 아이가 일찍 나온건가, 다들 태담도 하고 좋은 생각만 했다는데 난 애들 혼내키고 계획대로 마음대로 안된다고 짜증내서 아이가 못큰 건가,

학부모들이 혹시 임신해서 애들 못가르친단 소리 나올까봐 최대한 임신한 걸 숨겼고, 배가 많이 나오는 편도 아니라 막달에서야 내가 임신한 걸 안 학부모가 있을 정도로 조심했는데, 아이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아이한테 전해진걸까.


이런 게 부모 마음이다. 다 괜찮은 걸 알면서도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해지는 것.


산후조리원에서 딸에게 젖을 물린 건 아이가 태어나고 다음날이었는데, 아이 입이 너무 작아 내 젖꼭지를 물지도 못하고, 또 입에 젖꼭지를 넣어줘도 힘이 약해 빨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때도 저 수많은 죄책감과 의문에 시달리며 딸에게 미안하고 또 안쓰러웠는데

이게 왠 걸. 한 며칠 지나니까 엄청 잘 먹고 애가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규모 자영업 하는 많은 애기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학원을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강사 둘에 학원차 운전해주시는 기사님, 나 4명이서 운영되는 학원은 누구 하나가 빠지면 굴러가기 힘든 구조였다.


그래도 출산 예정일 한달 전부터 임시 강사를 미리 뽑아 다른 강사분들과 내가 하는 수업을 세 명에게 나눠 일을 좀 덜었지만, 원장은 학원비 결제나, 학부모들과의 상담 등 다른 강사분께 맡길 수만은 없는 일들이 있다.


임신을 결심한 순간부터 계획을 해놓고 있었다. 애 낳기 전에야 애 나오는 그날까지도 일은 할 수 있는 것이고,

애 낳고도 학원에서 걸어서도 10분 거리에 있는 산후조리원을 예약해놓고. 주말이나 공휴일이 낀다면 한 4~5일 쉴 수 있을테고, 월요일에 출산한다해도 3일 뒤인 수요일엔 나와 앉아 있을거라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도 상의해봤는데, 자연분만 뒤 크게 무리 없이 움직이는 건 상관없다고 상황을 봐주셨다. 하지만 추위가 조금 걱정된다고, 예정일이 10월 중순인데, 그때쯤이면 바람이 차니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고. 이불을 두르고 다닌다 생각될 정도로 따뜻하게! 그래서 내가 롱패딩이 유행하기 전인 2011년에 롱패딩을, 내 발목까지 덮을만큼 오버사이즈를 사서 입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런 소규모 자영업자의 고충을 하늘도 알아주셨는지, 난 10월 3일 개천절날이자 목요일에 딸을 낳았고, 금요일 하루와 토요일 오전 수업만 강사분들께 맡겼고, 일요일까지 마음 편히 쉰 뒤, 아이 낳은지 5일차에 출근을 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특히 출산하신 분들은 특히 비명을 지르시고 계실지도. 하지만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실 필요없는 게, 풀 타임으로 수업을 한 게 아니라 임시 강사님이 수업 시간 들어가 몸쓰는 일을 했고, 난 소소한 서류 정리나, 운영자만이 건들 수 있는 것들을 담당해서 3~4시간 정도만 학원에 있었다. 학원도 논술,영어를 담당하는 곳이라 크게 체력이 필요한 일도 별로 없었고 말이다.


물론, 그래도 아이 낳은지 5일차만에 출근을 해야했던 (연년생으로 그 다음 해 12월에 낳은 아들 땐 4일차만에 출근했어야 했다.) 그 때의 내가 딱하기도 하고, 그 시간을 버텨줘서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산모들이 저래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본인은 꽤 건강체질이다. 그 앉아만 있어서 대부분 변비로 고생한다는 고3때도 늘 쾌변했으며, 운동을 딱히 하지 않아도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갈라져 잡힐만큼 튼실하며(이건 건강체질과 좀 거리가 있나?) 환절기에 감기에 걸린 적이 있긴 해도 그리 빈도수가 많지 않고, 독감 예방주사 한 번 맞은 적도 없지만(임신하고 처음으로 맞아봤다) 독감도 걸린 적 없다.


우리 신랑은? 본인보다 더 튼튼체질이다.


딸도 작게 태어나, 산후조리원 동기들 중에서도 제일 작고, 어린이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제일 작았으며, 초등학교 입학할 때 겨우 2등이 될만큼 키가 작았으나, 체질만큼은 건강했다.


기어다닐때도 팔다리 근육이 짱짱했고, 째끄만 게 달리기도 늘 빠른 편이었으며, 철봉도 잘 매달려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같이 나가면 무거운 봉투도 곧잘 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게 아무리 딸이 빠른 편이라 해도, 키가 큰 애들을 이기기가 힘든 종목이기에, 유치원 체육대회 때도 달리기를 1등한 적은 없었는데,

내 눈으로 딸이 달리기에서 1등하는 걸 보니 감격 또 감격이었다.


난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데, 어째 딸램 표정이 별로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이(담임 선생님이 아니셨다) 아이들에게 뭐라 하시고 수업이 끝나는 듯 했다.


난 자랑스러운 마음에 딸한테 얼른 달려가


"너 달리기 1등으로 들어오는 거 봤어!"


라고 말하는데 딸은 갑자기 울음을 훅 터뜨린다.


이게 뭔일이야, 우는 애를 겨우 달래서 교실가서 가방 가져와 차에 태우고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딸은 운동회 때 녹팀 달리기 대표로 뽑혔단다.(딸네 학교는 모든 학년이 4반이다. 추첨할 때부터 남자 40, 여자40명 숫자를 맞춰 뽑고 각반 남자10명, 여자10명 맞춰 배정한다. 그리고 1반은 백, 2반은 청, 3반은 홍, 4반은 녹 팀으로 나눠 운동회를 했다.) 하지만 자기는 대표가 싫단다.


"왜? 자랑스러운 일인데?"


"부끄러워."


"뭐가 부끄러워~"


"그냥 녹팀 대표 나오라고 말할 때 앞에 나가는 것도 부끄럽고, 애들 앞에서 뛰는 것도 부끄럽고, 다 챙피해."


"....그렇게 싫으면 선생님한테 말해. 하기 싫다고."


"뭐라고 하면 어떡해~"


"엄마가 대신 말해줘?"


"안 돼. 아무 말도 하지마. 절대."


딸을 키우는 만 6년 반동안 걔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거의 없다만, 그래도 이번엔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부끄러운 거.

그래, 어떤 형태로든 남 앞에 서는 게 부끄러울 수도 있지,


선생님께 NO라고 얘기할수 없는 거.

그럼. 선생님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지. 어른들도 힘든 일일걸? 게다가 1학년 짜리가. 선생님도 무서운 스타일이라던데.


내가 선생님께 전화하는 게 싫은 거.

괜히 그래서 자기가 미운털 박히는 거 아닌지 걱정되서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울면서 뛴다고?


그리고 며칠 후 토요일


뭘 해먹을까 하다가 냉장고에 며칠전에 사놓은 콩나물 봉지가 그대로 있는 게 보여 '콩나물밥'이 떠올랐다.


냉동실에 소고기나 돼지고기 간 것이 좀 있으면 콩나물과 함께 해먹어도 좋고. 없으면 콩나물만 넣어도 괜찮다.


콩나물을 차가운 물에 한번 씻으며 상한 것을 정리하고


쌀을 씻어서 일반 밥을 할 때보단 물을 좀 적게 붓고, 위에 콩나물을 얹은 다음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면 끝.


그리고 콩나물밥은 간장에 비벼먹어야 하니까 간장에 약간 양념을 넣어두면 좋겠지?


쪽파를 송송 썰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두세방울만. 매콤한 걸 좋아하는 엄마, 아빠 용엔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도 송송 넣고. 아이들용엔 깨소금만.


딸. 콩나물밥의 대표는 뭘까?


콩나물을 앞에 쓰니까 콩나물?


역시 밥이니까 밥?


뭐가 대표인 게 무슨 상관. 콩나물과 밥이 이렇게 섞여서 간장넣고 비비면 그저 맛있는 콩나물밥인 것을!

이처럼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달리는 것도 달리기고


그냥 강 둔치에 가서 엄마랑 놀 때 달리는 것도 달리기야.


대표라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냥 네가 좋아하는 달리기에만 집중할 순 없을까?


어차피 선생님한테 말해서 대표 안한다고도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거잖아!


라고 평생 난 못해본 달리기 1등을 딸이 해서, 딸이 계속 달리기 대표가 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