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팔자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말은 나를 정비하라는 뜻이었다.
듣기 싫었지만, 결국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늘 앞서 생각하고 먼저 움직였다.
작은 일에서도 그랬다.
엎어진 컵은 바로 세워야 했다.
내 컵이 아니어도,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업무 흐름상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멈추지 않았고,
맞다고 믿는 방향으로 경주마처럼 달렸다.
나는 그것이 성실이고 책임이라고, 당연한 일이라고 알고 살아왔다.
그래서 상사들은 그런 나를 좋아했고,
성과를 인정받는 순간도 있었으며
보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이 비틀리고 맥락이 달라졌다.
내가 한 일은 ‘밀어붙임’으로만 남고,
상황을 만든 사람은 빠진 채
나는 총대를 메는 사람으로 남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적지 않게 무너졌다.
이 일련의 상황을
끌어주는 상사복이 없어서라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환경을 탓하기보다
내 기준을 다시 세우고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이
누군가에겐 위협으로 읽혔고,
전혀 내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자리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그 방식은 결국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돌아보니 그 ‘당연함’은 나의 나댐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대고, 잘난 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성격은 결국 나를 갉아먹었다.
어그러진 관계에도 내 몫이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가짐을 다시 세운다.
나는 평직원이다.
운영은 관리자의 몫이다.
조직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돌아간다.
현실을 자각하고, 내 본분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 몫을 넘어서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되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앞서 움직이던 습관을 멈춰야 한다.
가끔은 힘을 빼고, 속도를 늦추는 삶도 필요하다.
늘 똑바로 걷기만 하려다 보면 더 쉽게 꺾인다.
때로는 흐느적흐느적 걸어도 괜찮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기 위해.
그리고 다짐한다.
상처가 아문 자리라도 다시 건드리면 아프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도 통증은 남는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매일,
5분이라도 건강한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
근력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마음에도 잔근육을 만들며 단련하겠다.
아침 명상을 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거나,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거나,
스케치를 시작해 보거나,
“잘하고 있어”라고 이유 없이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과
잠깐이라도 대화해 보겠다.
이 작은 실천을 멈추지 않겠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업무든 관계든, 내 몫을 넘어서는 방식은 반복하지 않겠다.
나대지 않고, 내 자리에서 정확히 서 있겠다.
성격이 팔자라면,
나는 팔자의 방향을 바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