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작은 공간이 나를 지키고, 삶을 바꾼다.
우리가 눈에 담는 모든 것은
각자만의 주관적인 프레임을 거쳐 해석된다.
같은 사물을 보고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전시회에서 액자 속 그림을 바라보듯,
나도 내 삶을 내 프레임 밖에서 바라보고 싶어졌다.
내가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그 프레임이 내 판단과 반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다.
돌아보면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자극이 오면 바로 튕겨 나가는 핑퐁볼처럼.
몸을 움직이고 민첩하게 처리하며
부지런히 반응하는 일이 가장 쉬웠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쓰면
모두가 편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은 생존 본능이었을 것이다.
너무 이른 사회생활 속에서 나는
업무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늘 ‘바로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다이어리 앞표지에 적어 두곤 했다.
“즉각 실행.”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는 안다.
자극이 와도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한 박자 멈추고 유연하게 대처해도
일도 관계도 충분히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반응이 필요할 때에도
언제나 전부를 쏟아낼 필요는 없다.
내 안에 10의 힘이 있다면
5만 써도 충분한 순간이 많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반응해도 괜찮다.
요즘 나는
제삼자의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를 회고하는 순간,
내 행동과 말의 결을 돌아보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타인의 반응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집중해 살아보면 어떨까.
직장 안의 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내 인생에 강물처럼 흘러가게 두는 관계로,
업무 또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말의 속도를 늦추고, 더 신중하게.
업무의 속도도 늦춘다.
걸음걸이도 더 이상 뛰지 않는다.
인생의 생사 앞이 아니라면
그다지 급할 일도, 절대적인 일도 없다.
대부분은 잠시 늦어도 괜찮은 일들이다.
말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바로 꺼내지 않고 한 박자 멈춘다.
먼저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정리한 뒤
정말 필요한 말만—짧고 정확하게.
때로는 한동안 지켜본 뒤 말해도 늦지 않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내가 편안하면 그걸로 충분하고,
내가 불편하면 멈추면 된다.
불필요한 참견과 과한 친절을 내려놓는다.
도움은 내가 먼저가 아니라, 요청받았을 때 건넨다.
내가 먼저 앞서가며 애쓰지 않아도
관계는 제 속도로 흘러갈 수 있다.
불필요한 소음은 배경음악처럼 흘려보내는 연습.
내 안의 꽃밭을 가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삶.
내 프레임 안에서 살아온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