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를 번쩍!

by 서온



습관이 무섭다.
눈 깜빡하면, 나는 또 원래 패턴으로 돌아간다.
거북목 모드로 일에 달라붙는 순간
나는 다시 업무에 빠져든다.
더 꼼꼼해지고,
추후 리스크가 될 만한 부분을 미리 점검하며
스스로 일개미 모드를 켠다.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도
내 여력과 상관없이 업무는 계속 늘어난다.
바퀴를 열심히 굴릴수록 짐이 더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알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더’가 아니라 ‘조절’이라는 걸.
Stop.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다.
상사에게는 선을 긋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래서 연차를 냈다.
급하게라도 휴가를 내서
내 정신과 몸을 돌아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컵이 9할 찼을 때,
넘치기 전에 멈춰내는 연습.
나에게 옐로카드를 들어야 한다.
지금은 경고 단계다.
레드카드로 퇴장하기 전에
내가 먼저 멈추고, 숨을 고르고, 우선순위를 다시 세운다.
발령 후 아직 한 달 남짓이라
모든 걸 내려놓을 수는 없다.
배우고 익힐 건 계속 익히되,
속도는 조절하자.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말자.
심지어 내 의지력도 늘 믿을 수는 없다.
그래서 매일 나를 점검해야 한다.
잘하려고 애썼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결과도 의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위해 애썼지만,
끝나고 나면 애쓴 공은 남지 않기도 한다.
조용히 한 발 빼고 있던 사람은 무난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애쓴 사람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열정이 상대에게는 전투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감정이 먼저 흔들리면, 일도 흔들린다.
감정이 앞서면 내가 손해를 본다.
열정은 무기이기도 하지만, 관계에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총명한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자신을 드러낸다고 한다. 내 열정을 함부로 남 발하지 말자.
나는 원래 “짧고 굵게”가 편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거리를 두고, 온도를 낮추고,
나를 덜 드러내는 관계가
오히려 편하고 안전할 수 있다.
직장에서는 나를 쉽게 드러내지 말자.
관계의 기준을 분명히 하자.
식사 후에는 철저한 더치페이의 관계.
이 정도 거리감이면 충분하다.
내가 내줄 것이 없는 관계라면
나도 더도 덜도 주지 말자.
친절도, 열정도, 감정도.
필요한 만큼만.
뾰족한 연필로는 모두가 힘들다.
금방 부러지고, 쉽게 상처를 남긴다.
뭉툭한 연필로 그려가는 세상이
오히려 오래가고 덜 아프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뾰족함이 아니라
조절과 거리 두기로.
안 무너지게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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