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면 소비가 는다.
소비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울한 날, 나는 소비로 기쁨을 사려했던 건 아닐까.
행복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100을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
어릴 적 나는 사소한 것에도 잘 웃는 아이였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어대다 버스 기사님께 지적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감정에도 문이 생겼다.
너무 기뻐하면, 반드시 또 너무 슬픈 일이 따라왔다.
그래서 다짐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크게 기뻐하지 않고, 크게 좋아하지 않고,
크게 슬퍼하거나 크게 분노하지 않으려는 마음.
중용.
그게 참 어렵다.
나는 어떤 색깔의 사람일까.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
밝고 웃음기 많은 사람,
무표정이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사람.
나는 여전히 한 가지 색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소비는 나를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었다.
몸에 걸치는 것들로 나를 정돈하고,
나를 드러내는 소비로
‘나는 아직 괜찮다’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
어쩌면 어릴 때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결핍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소득이 생긴 뒤
가장 쉽게 행복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소비였던 건 아닐까 싶다.
책도, 옷도, 사람도 정리가 필요하다.
하나를 들이면 하나를 빼내는 것.
정리도 결국 능력이다.
우울하면 소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노동으로 그 소비를 메꾼다.
나는 무엇을 위해 회사에 가고 있을까.
현생을 유지하기 위함일까.
재테크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삶은 더는 살고 싶지 않다.
소비가 주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건 행복이라기보다
업무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덮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내가 쏟아온 열정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과연 얼마의 값어치가 될까
나는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행운처럼 크게 한 번 맞이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5분이면 충분하다는 마음.
행복을 기다리는 대신
행복을 '상시대기' 시켜 두는 삶.
언제나 호출하면 소환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기로 한 날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기로 한 날 몇 쪽이라도 넘기며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를 탈 때 기사님께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소한 행동.
내 행복은
나를 돌보는 시간에서 시작되고,
타인을 향한 작은 친절을 거쳐 만들어 가고 싶다.
요즘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행복을 크게 한 번 느끼는 것이 아니라,
빈도수를 자꾸 늘리는 것.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는 나를
다시 만나는 것.
그 정도면,
지금의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