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린치핀'은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

by 서온



린치핀은 “없으면 일이 멈추는 사람”, 즉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인력을 말한다. 보통은 일을 잘해서, 능력이 뛰어나서 만들어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겪은 조직에서 린치핀은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때로는 정보와 노하우를 어떻게 나누고, 무엇을 남기지 않느냐가 사람을 린치핀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여덟 번의 발령을 겪으며 인수인계를 “내가 떠나도 부서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영혼을 털어 알려주고 자료를 남겼다. 신규 직원이 와도 볼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었고, 업무의 중요 시점도 표시했다. 내가 정리해 둔 만큼 동료들은 덜 헤맸고 팀은 덜 흔들렸다.
후임자는 잘 인수받았고, 내가 없는데도 부서는 돌아갔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또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인계를 ‘받는 사람’이 되면 현실은 달랐다. 나이 들어 배우는 일은 버거운데, 어떤 부서는 배울 최소한의 기반조차 없었다.
서류 한 장 없이 던져진 상태에서 전임자는 상사에게는 말한다.
“걱정 마시라,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정작 실무자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리기도 했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인수인계는 비어 있었다. 그 공백은 결국 다음 사람이 밤을 새워 메웠다.
그리고 공백을 말하는 순간, 대화는 자주 해결이 아니라 무력화로 흘렀다.
“그건 원래 다들 힘들어.”
“예전엔 매뉴얼 없이도 다 했어.”
“지금 와서 그걸 왜 문제 삼아?”
“결국 네가 해야 할 일이잖아.”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어받을 수 있게 만들까’였는데, 논점은 금세 ‘너무 예민한 사람’의 문제가 된다. 이건 어린 동료만의 반응도 아니다. 실무 경험이 많은 선배도 흐름을 알면서, 되는 방향(어떤 순서로, 어떤 기준으로, 어디서 확인해야 하는지)을 말해주기보다 안 되는 방향(예외만 나열하고, 책임만 강조하고, “원래 그래”로 끝내는 방식)으로 설명해 혼선을 키우기도 했다. 그러면 질문하는 사람은 깨닫는다. 더 말해봐야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입을 닫는다.
더 아이러니한 장면은 그다음이다. 같은 사람이 상사 앞에 서면 태도가 바뀐다. 갑자기 친절해지고 이렇게 말한다.
“다 정리돼 있습니다.”
“큰 문제없습니다.”
상사는 문제를 모른다. 실무자는 혼자서 끙끙 앓는다. 그렇게 한 사람이 떠안고 버티는 구조가 반복된다. 멘붕으로 무너지고, 전보나 퇴사를 고민하는 직원이 생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편람을 붙잡고 뜬눈으로 밤을 보낸 적이 있고, “다시는 질문하지 말자”는 결심을 한 적도 있다. 이건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구조였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왜 잘되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 걸까.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잘되는 방향을 알려주는 순간, 그 사람이 쥐고 있던 흐름과 판단 기준이 공유된다. 그러면 그는 덜 ‘대체 불가’해진다. ‘내가 있어야만 돌아가는 자리’가 ‘누구라도 하면 돌아가는 자리’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친절하게 기준을 남기는 행동이 곧바로 신호가 된다.
“저 사람은 잘 알려준다.”
그러면 일이 더 몰린다. 잘 알려주는 사람이 더 많이 맡고, 숨기는 사람은 더 안전해진다. 그렇게 조직은 사람을 고슴도치로 만든다.
그러다 보면 린치핀은 ‘잘해서’가 아니라 ‘비워두어서’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내주지 않음으로써 독보적인 자리를 굳혀 가고, 누군가는 잘 돌아가게 만들어놓았다는 이유로 공이 사라진다. 내가 떠난 부서는 내가 잘 돌아가게 해 놨으니 후임자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고마움은 남지 않는다. 내가 만든 안정은 내 이름 없이 굴러간다.
그래서 질문이 다시 돌아온다.
내가 아는 노하우를 20~30%만 주고 빠지는 게 맞는 걸까. 이것이 린치핀이 되어가는 조직의 흐름일까.
지금 내가 결론처럼 붙잡는 문장은 하나다.
나는 더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어디까지는 주고 어디부터는 지킬지 선을 정해야 한다.
친절을 버리자는 말이 아니라,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친절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는 그 경계를 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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