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있을 때는 어깨만 내어주면 된다

by 서온

삶의 위기의 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갑자기 내가 나쁜 사람처럼 되어 있는 순간이 있다.
상대의 잘못이 되레 나에게 돌아오는 순간도 있다.
뭘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때.
그럴 때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
굳이 말이 많지 않아도, 어깨만 내어주면 된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런 것도 한 번 생각해 봐.”
그 말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다.
안 좋은 방향도 미리 생각해 보라는 뜻이고,
나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에는
그 말이 ‘도움’이 아니라 ‘추락’이 될 때가 있다.
이미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바닥을 보여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때는
문제를 더 분석하는 말보다
나를 살리는 말이 먼저다.
더 꺼지지 않게,
더 지하를 뚫고 내려가지 않게.
그 마음이 꺼지지 않게.
이때 필요한 건
누군가를 함께 욕해주거나 대신 화내주는 사람이 아니다.
“너, 진짜 열심히 살았어.”
“애썼어.”
“네가 잘못한 건 아니야.”
“지금은 버티는 것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을 걸어주며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다.
'도' 아니면 '모'로 살아온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사람에게
서운함을 쏟아낸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입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나중에서야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의 나는 내 마음부터 붙잡고 싶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내 사람에게 민폐 주기 싫다’는 마음이 더 컸다.
상처 주기 싫고, 부담 주기 싫고,
괜찮은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그 마음이 오히려 나를 더 깊게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무너질 때는 ‘민폐 안 끼치기’보다
‘내가 더 망가지지 않기’가 먼저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말을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이 한마디만 꺼낼 수 있어도 된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들었을 때
조언 대신 잠깐 옆에 있어주는 사람.
나를 더 내려가게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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