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오래 다니다 보니 알게 된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낮은 자리에 있어도 결국은 각자의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지금의 직함도, 권한도, 자리도 퇴직과 함께 사라진다.
그때 남는 건 직급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했는 지다.
그래서 나는 일하는 동안 더 자주 나를 점검하려 한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보다,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결국 내 삶에 남기 때문이다.
나는 기준을 세웠다.
누구도 하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하대당하지 않겠다는 기준.
힘없는 사람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느낀다.
사람 됨은 위가 아니라 아래를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권력 앞에서만 달라지는 태도는 결국 신뢰를 남기지 않는다.
설령 그 방식이 당장은 유리해 보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서 모든 감정을 다 품고 갈 필요는 없다.
업무 회신을 무시하는 사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예전에는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상처 대신 교훈만 가져가기로 했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의 몫이고, 나는 내 태도만 관리하면 된다.
관계에서도 착각을 줄이려 한다.
자주 밥을 먹고 시간을 나눴다고 해서 그 관계가 특별해졌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간을 내어 함께해 준 것은 작은 호의가 아니다.
그래서 감사하되,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한때 먼저 나서고 더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직장은 공동체이면서도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과도한 오지랖은 결국 나를 소진시킨다.
이제는 먼저 끌고 가지는 않되, 누군가 진심으로 손을 내밀 때는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직장은 예측불가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도 있고, 조언이 간섭이 되는 상황도 있다.
그래서 정답을 찾기보다 내 기준을 단단히 세우는 편이 낫다.
발표할 때 앞에 ‘호박’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덜 떨린다고 한다.
직장인의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감정적으로 휘둘릴 때는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나는 마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를 잠시 ‘물체’처럼 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다.
무시가 아니라, 감정을 지키기 위한 기술이다. 그렇게 해야 내 기준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존중은 하되, 감정까지 다 내어주지는 않는다.
관계와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만들지 않고, 솜털처럼 가볍게 두려 한다.
그래야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혼자의 시간을 확보한다.
취미와 준비가 있어야 사람에게 과하게 기대지 않고, 자리에 매달리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때 남는 건 결국 태도다.
하대하지 않고, 하대당하지 않으며 감정보다 기준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