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는 사람을 본다는 것

by 서온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결과와 무관하게 사람 자체를 믿겠다는 마음.
정년을 앞둔 인생 선배와 식사를 하던 날,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 시절 그분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한 장면을 인용해 내게 말했다.
“네 자신을 못 믿겠으면 너를 선택한 나를 믿어라.”
흔들릴 때면 이렇게 덧붙였다.
“서영 선생님을 선택한 나를 믿어라.”
그건 조언이 아니었다.
신뢰였고, 지지였다.
그분은 또 말했다.
삶에 진심인 사람이라고,
설렘과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라고.
진심 때문에 여러 번 다쳐본 나에게
그 말은 상처 위에 바른 약 같았다.
살다 보면 참된 어른들이 있다.
결과보다 사람을 먼저 믿어주는 이들.
인생의 방향이 흔들릴 때 그분들을 떠올리면
나는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다.
“주체적으로 살아봐.”
“충분히 잘 살아왔어.”
“조금은 덜 참고 살아도 된다.”
“자네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그 말은 등을 떠미는 말이 아니라
내 중심을 세워주는 말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마음.
직장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고,
튀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장칼을 꺼내듯 기준을 드러낼 필요도 있다.
상대를 베기 위한 칼이 아니라,
무방비로 당하지 않기 위한 경계다.
그 선택이 때로는 불편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두려움이 있어도 필요한 선택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었을까.
소속이 같다는 불편함을 아무 일 없다는 듯 환대로 바꾸어
자연스럽게 끌어주는 사람,
수렁으로 빠지려 할 때 수시로 내 상태를 묻고
괜찮은지 살피며 돌봐주는 사람,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꺼지지 않게 매일같이 나를 살펴주는 사람.
나에게 그런 이들은 재산이다.
보이지 않는 배경이 생긴 듯 든든하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나를 더 단단히 세워가고 있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정년을 앞둔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업무를 잘 배우지 않더라.
자기 일인데도 일회성업무 처리하듯 넘기더라.
그러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말은 열심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잘못 산 건가” 하고 흔들리던 후회로 들렸다.
업무를 하다 보면 배우는 사람이 더 짊어지게 된다는 걸 알기에
아예 배움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 또한 각자의 삶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분께 말했다.
“충분히 잘 살아오셨습니다.”
같은 직원으로서 자랑스럽다고, 진심을 전했다.
열심히 살아온 날들은
후회가 아니라 박수받아 마땅하다.
애씀은 당장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누군가는 알고 있다.
나도 그 ‘누군가’ 중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생은 방향 없이 속력만 내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나는 나침반을 자주 확인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와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고 싶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사람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지받은 사람이 단단해지듯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결과가 아니라 존재로 믿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어른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귀한 분들처럼,
내가 선택하며 닮아가고 있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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