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티는 날이 아니라
정리가 필요한 날이다.
예전의 나는
일이 손에 들어오면 끝까지 붙잡았다.
내 기준에 차야 비로소 손을 놓았고,
어떻게든 틀리지 않게
제대로 해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한다고
내 자리가 단단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내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내려놓았다.
끝까지 파고들지 않았다.
처음 맡은 새 업무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경운기 같았다.
덜컹거리며 겨우 굴려 갔지만
다들 모른 척했다.
이번 건은
애초에 협업이 필요한 평가 사안이었다. 범위와 규모도 컸다.
그런데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일이 터진 뒤에야
포르쉐 같은 전문인력이 바로 투입됐고,
업무는 순식간에 정리됐다.
그제야 알았다.
도와줄 수 없어서 못 한 게 아니라
그대로 두고 있었던 거였다.
상황은 늘 비슷했다.
달라진 것은 하나였다.
이번에는 나를 끝까지 갈아 넣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같은 시점의 다른 업무들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그 일에만 매달릴 여력은 없었고,
더는 나를 그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끝까지 완벽하게 해냈다면
그다음 일도,
그다음 빈자리도
결국 내 몫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완벽하게 메우는 것보다
하나쯤 남겨두는 방식이
나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덜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
더는 관계로도, 업무로도
나를 소모하며 증명하지 않으려 한다.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일 못하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이제는
내가 어디까지 할지
내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