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나는 새벽 5시까지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전성기처럼 남을 수 있다는 걸.
얼마 전, 같은 회사를 다녔던 분과 연락이 닿았다.
가까운 부서에서 함께 일한 분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 시절 어떻게 일했는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업무에 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지.”
“그 큰 업무 맡아서 하던 것도 기억나.”
괜히 민망하면서도 마음이 울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더 인색할까.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던 사람들보다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정과 격려가 더 인색한 경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오래도록
“괜찮아”라는 말을 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아직 부서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손님을 직접 응대하던 때도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들,
계속 생기는 돌발 상황들 앞에서
멍해지는 순간이 반복됐다.
그때
나보다 어린 직원이
내 옆에서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선생님.”
그 말은 어지럽던 마음 위에 살짝 내려앉는 마법가루 같았다.
안 괜찮던 상황이 이상하게도
조금은 괜찮게 느껴졌다.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사람을 다독이는 말을 배웠다.
비슷한 일은 이후에도 있었다.
기한은 다가오고
나는 허둥거리고 있었는데,
동료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그 말 한마디가
흔들리던 마음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잊고 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맞다
말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제때 건네는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여전히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말이 많다.
잘하면 나댄다고 하고,
못하면 그 사람을 그대로 규정해버리곤 한다.
그래도 나는
다른 쪽을 택하고 싶다.
얼마 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심신이 지쳐 퇴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의 나 역시 힘든 시기라
많이 챙겨주지는 못했다.
며칠 뒤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나는 고생 많았다고, 정말 애썼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고, 분명 더 잘될 거라고도 말했다.
그 친구의 일을 지켜본 나는
차마 그 선택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더 분명해졌다.
최소한 그 사람들이
그 상처를 오래 안고 살게 하지는 말아야지.
사람을 시멘트처럼 굳혀버리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잘한 것은 "잘했다"라고 말해주고, "괜찮다"고, 한마디쯤은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말보다
사람을 다독이는 말을 건네는 쪽을 택하며,
나무의 나이테를 하나씩 쌓아가듯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