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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재 Nov 17. 2021

스스로가 짠해질 때

스스로가 짠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휴식? 위로? 친구? 가족?  

우선 스스로가 짠해질 때는 언제인가?

인생은 딱 한번, 즉 우리에겐 모든 게 처음이며 사람은 저마다의 생과 수명을 산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오가고 그 환경은 다양하다. 

진학 문제, 마음을 전하는 고백, 합격이라는 기쁨, 누군가의 죽음.

모든 게 처음인 만큼 경험은 없으며 그럴수록 혼란스럽고 스스로가 짠해질 때가 많다.  


또 사회는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늘 꼬여있고

언제 집을 사야 하고, 언제 결혼을 해야 하고, 언제 아이를 가지고,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오지랖들과 노후는 어떡할 것인지, 버티지 못한다면 나약하다는 도장을 받는 그런 곳이다. 

낮에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만 밤이 되면 표정 없는 표정으로 밤의 어두움에 가려진 채 씁쓸함, 쓸쓸함을 홀로 감당한다. 이런 삶이 더 많지 않은가?

사회는 가진 자에겐 즐길 수 있는 게임 같은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에겐 그저 노동에 불과한 걸 지도.  

그렇기에 우리에겐 상처 주거나 상처 받으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잘 꿰맨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정해놓은 틀과 생각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정말 타인이 말한 그런 사람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약한 면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떨어지는 것 같고, 부족한 것 같고, 더 못나질까 봐.

그건 곧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짠해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누군가 나에게 모질게 대한다고 해서 그 사람도 강할 거라고 생각 말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즉 누구나 약하며 나 하나쯤 짠해진 모습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누구나 그런 시간을 지나왔을 테니.

때로 삶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 볼 정도로 괴롭히겠지만 강해 보이지 않다고 상심할 필요 없다. 

또 나약함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우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스스로가 짠해진 것 같다면 나의 그런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다음은 안아주는 것이다. 나에게 주지 못했던 시간을 선물하고 나만의 공간에서 다독이고 위로할 것.  

사람마다 자신만 이해 가능한 영역이 있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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