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일단 하얀 백지를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매한가지다.
조용한 방에서 파일을 띄어놓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한참을 응시한다.
그 과정에서 긴 시간과 공백을 두고 싸우는 게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이 역시 자신과 친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사람은 가끔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길 원하고 차분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내가 가는 길이 어떤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을 쓰거나 읽는 것.
글을 씀으로써 하루를 정리하고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다.
또 글을 읽어봄으로써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삶을 한 번 살아보기도 하며 꽁꽁 숨겨놓은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철학적인 게 아니고, 아주 멋스러운 게 아닐지라도.
뚜렷한 주제가 없더라도.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무언가를 지녔을 때 빛이 난다.
그리고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다. 욕심 없는 사람 어디 있을까. 끝없이 나아가길 원하고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200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한 곳과 계약을 맺었다.
베스트셀러가 되진 못했지만 읽어주는 사람들은 나름 있었다.
글을 쓰고 보인다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힘들고 아프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니까.
어떤 이야기든 적어보고 퇴고하고 그럼 우리는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생각과 말은 휘발성이 강해 금방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진실된 글쓰기는 그 글만의 고유한 감동을 지니고 간직한다.
감당할 수 없었던 순간들, 슬픔, 이별, 가족, 관계 같은 것들을 글을 써 내려가며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러니까 살면서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들을 스스로 매만지고 회복도 할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특별하면서도 상처와 회복 그 어디쯤에서 머무는 것.
또는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
어떤 주제의 글이던 안 쓰는 것보단 훨씬 나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