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각] 나의 에파고메날(Epagomenal)

더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이 있을까?

by durante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1년 365일이 주어진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주어지는 날들(days)이다.(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돈을 가진 자는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것은 별도로 생각하자)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원래 1년은 360일이었다. 신화 '여분의 날들(에파고메날, Epagomenal Days)'에 의하면, 1년이 365일인 것을 이집트 신화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대지의 신 게브(Geb)와 결합해 신들을 낳으려 했지만, 태양신 라의 저주로 1년 360일 동안 출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혜의 신 토트(Thoth)는 달의 신과 내기해서 360일에 속하지 않는 다섯 날을 얻어냈고, 그 틈새의 날들 동안 누트는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세트(Set), 네프티스(Nephthys), 호루스 등을 낳았다. 이 다섯 신은 이집트 신화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들로, 이 시기는 곧 신들의 탄생일이자 축일인 ‘에파고메날(Epagomenal Days) 5일’이 탄생 됐다. 이 다섯 날 동안은 대규모 제사나 축제가 열렸고, 1년은 360일 외에 5일이 더해져 365일이 됐다고 한다.([아침뜨락] 달력 한 장을 남겨놓고 < 아침뜨락 < 외부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이 신화는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체계에서 벗어난 여분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재설계해보는 것이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사색의 시간, 장기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 고독 속에 위로를 찾는 시간인 나의 에파고메날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현대의 시간관리와 관련한 개념 중에 많이 알려져 있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Eisenhower Matrix)'라는 것이 있다. 중요도와 긴급도를 기준으로 4분면으로 나누어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데,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를 인용하면서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영역(제2사분면)'에 시간을 투자할 때 장기적 전환이 일어남을 강조하면서 ‘주도적 삶의 핵심’으로 설명한다. 이 부분이 '에파고메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잘 선택하는 것 외에도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초기에 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일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파악해서 이후 실행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더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 반대로 초기에 일에 대해 불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면 일을 실행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 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그 결정적 시간은 그리스 철학 입장에서 보면 '카이로스(Kairos)'이다.

카이로스의 머리 앞쪽에는 긴 머리카락이 있고 뒤통수는 대머리라고 하는데, 이는 마주 올 때는 붙잡을 수 있지만 지나가면 잡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참 신들의 모습에 영특한 의미를 부여하는 재주가 많은 것 같다. 시간 관련된 신에는 크로노스(Chronos)가 또 있는데 이는 카이로스와 달리 이 신은 정해진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구별해야 하고, 또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 12 신 중 한 명이자 막내인 (농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크로노스(Cronus)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즉 크로노스(Chronos)가 양적인 시간, 시계가 재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 결정적 의미를 지닌 순간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그 안에 카이로스가 몇 번 있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Torino Museo di Arte Greco-Romana - Kairos Relief.jpg Kairos: The Right Moment or Occasion

데이비드 앨런(David Allen)의 책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 Getting Things Done>을 보면, 모든 과업을 외부 시스템으로 이전해 ‘정신적 여백’을 확보하라고 조언하는데, 뇌를 기억 장치로 쓰지 말고, 사고 장치로 사용하라고 한다. 이는 카이로스를 인식하기 위한 준비 작업과 같을 것이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1813~1855)는 <철학적 단편>과 <불안의 개념> 등에서 순간(Øieblik)’을 언급하는데 이는 단순한 시간의 점이 아니라 "시간과 영원이 서로 접촉하는 결단의 지점"으로 존재 방식 자체가 바뀌는 도약(leap)을 의미한다. 결단 즉, 순간의 선택으로 우리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창조하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렉 맥커운(Greg Mckeown)의 책 <에센셜리즘>에는 '덜 하지만 더 잘하라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과감히 제거하고 가장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키르케고르의 순간이 떠오르는 책이라 하겠다.


지금 혹시 시간을 허비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너무나 바쁜 일정으로 가득 차 숨 돌릴 틈도 없는 것은 아닌지? 지금부터라도 에파고메날의 날들을 만들어 보고, 카이로스를 지나치지 않도록 여유를 갖으며 결단의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하여 더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2026. 2. 13, 한국 통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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