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의 기술 : 모란, 왕, 대중 그리고 역발상
매년 3~4월이면 꽃이 피는 계절인 봄이다. 꽃 중의 왕(花王)이라 일컬어지는 모란(牧丹, 목단) 역시 이 시기면 어김없이 핀다.
20세기 초 한국의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라는 시를 발표한다. 당시 유명했던 무용수 '최승희'와의 실연의 아픔을 그렸을 것이고,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빼앗긴 나라의 슬픔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나라를 생각하기 전에 좋아했던 여인을 추억하는 것이 뭐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는 누구나 국가를 생각하게 된다.
2025년 4월 4일, 한국의 '왕(王)'을 자처하던 대통령은 모란이 피는 때아닌 봄에 '슬프지 않고 다행스럽게' 지고 말았다. 역발상까지는 아니니만 역현상 정도는 되지 않을까?
중국 당나라 시절 장안의 귀족들은 모란의 화려함을 좋아하여 모란을 마구 사들였다고 하고 모란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모란은 집 한 채 가격을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고 한다. 투기의 시초였을지도 모른다.
험프리 B. 닐(Humphrey B. Neill)이 1954년부터 저술해 온 책 <역발상의 기술, The Art of Contrary Thinking>에는 당나라의 모란과 같은 투기 열풍과 같이 1634년 네덜란드에서 ‘튤립 광풍(tulipomania)’에 대해서 소개한다. 광풍 전성기 때에는 튤립 구근 한 개 가격이 무려 숙련공 연봉의 10배 이상이었고, 거래를 위한 각종 법과 제도는 물론 튤립 거래 전담 공증인과 부기기록원도 등장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광풍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이 '미친 바람'은 몇 년 후 잦아든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대중 열풍과 군중심리'라는 장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개인은 추론과 분석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 군중은 감정과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 군중은 '지도자'를 추종하거나 지도자의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추종한다."
“어떤 해로운 허튼소리라도 권위의 외피만 두르고 있으면 쉽게 믿어버린다. 그래서 역발상적 사고가 필요하다"
기업혁신의 방법의 하나로 '역발상의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때 이른 모란 지는 봄의 여운처럼 지는 '왕(王)'과 그를 따르는 군중을 생각하게 되고, 지는 왕에게는 검은색 튤립을 바치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 금번 독서의 목적인 혁신의 방법을 추구하기 위한 역발상의 기법으로 돌아가 몇 가지 의미 있는 그의 몇 가지 주장을 기록한다.
"역발상의 기술은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것…사고를 할 때는 비순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군중은 옳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면 언제나 틀린다…군중은 추세의 종점에서 틀리며, 추세가 진행 중일 때는 대개 옳다."
역발상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정하면서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의 쓰임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발상이 감정적 대중의 의견에 대한 대응 또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할 때 유용하다고 한다면, 집단지성은 같은 대중이라도 정보를 독립적으로 제공하고 의견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군중의 심리를 더 살펴보기 위해 좀 오래된 책이긴 하나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의 책 <군중 심리>와 역혁신에 대한 필독서인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의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다음 필독 서적의 순서를 변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