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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문학

사랑에 대하여, 안톤 체호프

by durante

25년 초여름,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사랑에 대하여>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책을 구매한다.

오래전 읽은 그의 생애와 희곡 <갈매기>의 주요 기억나지 않음에 약간의 불안함-나는 전에 무엇인가 본 적이 있거나 읽은 기억이 있는데 핵심적 내용이 떠오르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무슨 심리적 장애라도 될지 모르겠다-을 가지고 그의 생애를 다시 돌아본다.

1860년생인 체호프는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고골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 그를 '인생의 스승'이라 칭한다. 아마 그의 작품들은 고골의 소설 <외투>에서 보여준 '인간의 내면 탐구'라는 숙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했다 하니 고골의 명성은 짐작할만하다.

그의 초기 인생은 가난한 가정형편과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그러나 '정직'을 강조한 모스크바 의대생이었다. '의학은 나의 본처요, 소설은 나의 정부다'라고 밝힌 그였지만 1904년 44세에 장결핵으로 사망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여배우 크니 페르와 결혼(1901) 하기 전 유부녀 작가 리디야 아빌로바와 사귄 것(1889)을 보면 하나의 주장은 맞았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체호프는 체혼테 등의 필명으로 수백 편의 단편소설을 썼는데(그가 저작한 소설은 총 510편), <사랑에 대하여, 1898>는 그가 사랑했던 바로 그 유부녀 리디야 아빌로바와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반영한 소설이다.
그가 진정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분명히 다른 '보통사람들의 애환과 행불행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삶의 예술가'(이항재, 작품해설 중에서)라면, 나의 정리독서 순서의 앞줄에 있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이 <사랑에 대하여>의 후순위로 밀어야 한다.
반톨스토이적 중편소설 <결투>를 완성하며 "두 번 다시 톨스토이자가 되지 않겠다"라고 한 체호프가 내 이번 각오를 듣고 아주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막심 고리키의 말처럼 나도 "체호프 앞에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더 단순하고 더 진실하고 자신에게 더 충실해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이 연극으로 서울 성북구에 있는 꿈빛극장에서 공연(6.14~22)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때마침 참 반가운 일이다. 이 참에 체호프의 4대 희곡(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포함)까지 이어가야 하나 즐거운 고민이 늘었다.

체호프의 사랑에 대해 들어가 보자.
번역서로 14페이지 정도 되는 단편이다.

주인공 알료힌은 아름다운 펠라게야가 술꾼에 난폭한 성질을 가진 요리사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사랑은 어떻게 생겨날까요?"라고 묻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쓰고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은 해명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제기한데 불과하다."
내 생각에 이는 후술 하려는 본인의 사랑 이야기에 대하여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미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알료힌은 어느 초봄에 유부녀 안나 알렉세예브나를 만나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이후 늧가을에 공연장에서 안나를 다시 만나고 그녀는 알료힌에게 "약간 마음에 끌렸다"라고 고백한다.
알료힌은 그 부부의 집에 드나들며 아주 친한 사이가 되나, 그녀가 왜 나이 많고 따분한 등등의 남자와 결혼한 것인지 의아해한다.
시간이 흐르고 우울증을 앓는 안나는 알료힌에게 이상하게 화를 낸다. 이는 아마 본인의 결혼생활의 불만족과 알료힌을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갈등의 표출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요양차 크림으로 가는 안나를 배웅하는 알료힌. 기차 객실에서 둘은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알료힌은 드디어 사랑을 고백한다.
알료힌은 "사랑을 고백할 때 그 사랑을 논하려면 일반적인 의미의 죄나 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하고 높은 곳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 사랑을 논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우장산역 스타벅스에서 이 사랑을 읽고 있고, 유해준의 <내 소중한 사람에게>라는 노래가 이어폰으로 스며든다. 체호프의 사랑과 유해준의 사랑이 마구 뒤섞인다.

"그대가 그립습니다
내 가슴 오직 한 사람
문득 올려다본 저 하늘엔
떠가는 작은 그리움 하나

언제나 삶이 힘겨울 때도
늘 곁에서 함께한 사람
그 한마디 전하지 못한 말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가 없는 빈자리
지워질 수 없는 그때 그 추억이
텅 빈 내 가슴을 비워도
그대 하나만큼은 비울 수 없네요

언제나 그대를 많이 사랑해요
그댄 나를 있게 한 사람
내 가슴엔 곁에 함께한 그대와
늘 행복한 꿈을 꾸어요

이 세상 그대뿐인 내가 많이 사랑해요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늘 그때같이 내 그대와
영원히 늘 사랑에 꿈을 꾸어요
늘 행복한 꿈을 꾸어요"

하지만, 알료힌은 늘 행복한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어지는 <개를 데리고 가는 부인>을 더 읽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알료힌이 안나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작별 키스로 끝낸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음에 틀림없다.

다가오는 6.19 저녁, 존경하는 로쟈의 <사랑에 대하여> 강의는 이렇게 짧은 그의 사랑에 대하여 어떤 울림을 줄까 기대하며, 이렇게 짧게 체호프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나는 이 책의 첫 편 <박식한 이웃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펼친다.

2025.6.14 우장산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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