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역사 : 역사란 무엇인가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1961)

by durante

[나의 1줄평] "나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 우연적 원인인가 합리적 원인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1분 요약]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1961)은 소련 역사의 대가인 E. H. 카(Edward Hallett Carr)가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케임브리지 대학 강단에서 연속 강연한 것을 묶은 것으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문장을 남긴 기록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역사가와 사실]에서 카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로 대표되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대항하여, 역사적 사실은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이라기보다는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 해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라고 말한다.

이 장에서 유명한 역사의 정의를 내린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 카는 역사가의 사실은 어디까지가 독립된 개인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 사실인지를 물으면서 역사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개인의 의미와 행위는 언제나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조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의 기록'이다.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카는 과학과 역사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논증하기 시작한다. 카는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역사가는 자신이 취급하는 역사 인물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서 카는 역사적 원인이란 발견되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가 자신의 설명 목적에 따라 선택하고 위계화한 의미 있는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합리적 원인은 우리들의 이해를 넓고 깊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며,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 카는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자동적(헤겔)·불가피한 결과(마르크스)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조건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의식적으로 믿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가능성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이다.(147p)

[6장. 넓어져 가는 지평선]에서 카는 이 장에서 20세기는 이성의 확대와 지리적인 범위의 변화(탈 유럽)를 보이고 있으며, 역사학의 객관성과 진보는 고정된 방법이 아니라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우연처럼 무작위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해석할 수 있는 질서가 있는 한 의미가 있고, 결정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닫혀있지 않다.

카의 역사관은 랑케 등의 실증주의 역사관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고, 헤겔이나 아사야 벌린, 포퍼, 토인비 등과의 견해 차이뿐만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즘과의 관계에 대한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저자 소개] 교보문고 참조 ;

E. H. 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1892년 런던에서 출생하여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스 스쿨(Merchant Taylor’s 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졸업했다. 1916년에 외무부에 들어가서 수많은 업무에 종사한 후, 1936년에 사임했으며,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더 타임스(The Times)」의 부(副)편집인을 역임했고,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밸리올 칼리지의 정치학 튜터(Tutor)였고, 1955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가 되었고, 1966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밸리올 칼리지의 명예 연구원(Honorary Fellow)이 되었다. 역사가로서의 그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소련사(History of the Soviet Russia)』로 가장 유명한데, 이 책에 대해서 「가디언(Guardian)」은 “금세기에 한 영국인 역사가에 의해서 쓰인 가장 중요한 저작들 중 하나”라고 했으며 「더 타임스」는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평했다. 그는 1945년부터 『소련사』를 쓰기 시작하여, 거의 30년간 그 일에 매달렸다. 그것은 한 권의 개요서인 『러시아 혁명 : 레닌에서 스탈린까지(The Russian Revolution : Lenin to Stalin)』를 포함하여 14권으로 되어 있다. 『볼셰비키 혁명, 1917-1923(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 『공백기, 1923-1924(Interregnum, 1923-1924)』 ; 『일국 사회주의, 1924-1926(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 『계획경제의 기초, 1926-1929(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1926-1929)』(그중 한 권은 R. W. 데이비스와의 공저) 등이 그것이다. 그의 다른 저작들 중에는 『낭만의 망명객(The Romantic Exiles)』(1933), 『20년간의 위기, 1919-1939(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1939), 『평화의 조건(Conditions of Peace)』(1942), 『소련의 충격과 서구세계(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1946),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1951) 그리고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From Napoleon to Stalin and Other Essays)』(1980) 등이 있다. E. H. 카는 1982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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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만한 단어, 문장들]


1장. 역사가와 사실

카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로 대표 대표되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에 대항하여,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기보다는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 해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유명한 역사의 정의를 내린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21,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게 되며,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하는 더욱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대답의 일부도 되는 것이다.

영국 역사가 액턴(Acton, 1834 ~ 1902)의 역사에 대한 긍정적 견해와, 클라크 경(Clark, 1890 ~ 1979)의 '어떠한 역사도 객관적인 역사 진리란 있을 수 없다'라는 회의주의적 시각의 대립에 대한 카의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카가 역사에 대한 견해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액턴(John Emerich Edward Dalberg-Acton)은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corrupts.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말로 유명한 바로 그분이다.


21, 1830년대 랑케는 도덕주의적 역사에 대항하여 역사가가 할 일은 '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데 있을 따름'이라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랑케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기 위한 인용이다.


22, 조지 클라크 경조차 역사에 있어서 '사실이라는 굳은 핵'과 '이를 감싸고 있는 이론은 여지가 많은 해석이라는 과육'을 대조시키고 있다.

카는 클라크가 과일의 효용가치가 속보다는 과육 부분에 더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비판한다.


23, 우선 사실을 분명하게 입수하라. 그런 후에 해석이라는 유동하는 모래 속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어라. 이것이 역사에 대한 경험적 상식학파의 궁극적인 진리이다.

카는 영국 경험론적 전통 속에서 역사관을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24,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하우스만 Housman, 영국 고전학자)

카는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첫 번째 답으로 사실이 중요하나 그것은 '본질적인 것 아니라 단지 필요조건'임을 설명한다.


24, '사실은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는 자루 같은 것'(피란델로)

카는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두 번째 답으로 '기초적 사실을 설정하는 이유는 역사가들의 선험적 경험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지 사실 그 자체의 어떤 성격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역사가들의 '선택적 체계'이다.


사실은 흔히 자기 스스로 말한다들 하는데, 이것은 참말이 아니다.(24p)
(...)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위는 결국 해석의 문제에 따라 결정된다.(26p)


34, 오늘날 여전히 역사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역사가들은 허세와 자기 과장 속에서 교외 전원지대에 에덴동산을 재건하겠다는 나체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

역사철학(歷史哲學)은 역사학의 본연의 자세, 목표 등에 대해 고찰을 하는 철학의 한 분야로 이 용어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카는 윈스턴 처칠의 <세계의 위기>라는 역사책도 그 배후에 역사 철학이 없음을 로우즈(Rowse) 박사의 말을 빌려서 비판한다. 볼테르는 <풍속론(Essai sur les mœurs)>에서 역사란 “인간 이성이 어떻게 미신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왔는가"를 보여주는 서사라 언급하면서 즉, 볼테르에게 역사는 사실의 집적이 아니라 의미의 선별이므로 카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지금 카는 강의장에서 아마도 실증주의 역사관을 가진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35,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관점 아래 과거를 본다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크로체 Croce)

카는 역사적으로 사실의 우월성과 자율성이라는 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콜링우드(Collingwood)의 역사관에 따라 세 가지를 들고 있다.

1) 역사가에 대한 사전 이해

2) 역사가의 대상에 대한 상상적 이해

3) 현재의 눈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고 이해


'과거를 되돌아보며 여러 가지 계산을 하고 과거의 추억, 역사적 교양에서 위안을 찾는 노인들의 일은 노령에 맞는 일'(40p, 니체)


저자는 로퍼(Roper) 교수의 '역사를 사랑하라'라는 말이 애매하다고 말하면서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니체, <반시대적 고찰, Thoughts out of Season,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1873–1876>(책세상, 이진우 역) 2장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를 추후 더 살펴보자.

니체는 이 책을 통해 “과거를 많이 아는 것이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역사는 삶을 촉진할 때만 정당하다”는 급진적 선언을 한다. 니체는 역사의 세 가지 사용 방식, 즉 기념비적 방식, 골동품적 방식, 비판적 방식을 언급하고 있는데 카의 상기 인용문은 이 골동품적 방식의 병리적 형태에 해당된다. 좀 더 세부적인 사항은 추후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 감상평에서 상세 정리하기로 한다.


41, 역사가의 역할은 (...)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에서 객관성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의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의견의 허위성이 곧 그 의견에 대한 반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생명을 북돋워주고 생명과 종족을 보존해 주고 더 나아가서는 종족을 창조해 주느냐에 달려 있는 것(42p)
- 니체, <선악의 저편> -


그 역사적 사건이 사실인가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 사건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인가? 그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인간을 더 잘 살아가게 만든다면 ‘유익한 거짓’이 ‘무기력한 진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46p)

사실이 발생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의 대화를 하라는 말로 이해된다. 이 말은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과거의 사실을 과거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해석, 이해해야 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다소 헷갈린다.

과거의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 나(역사가)는 현재에 존재하는 나이므로 현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일까?

현재에 있는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사실)' 보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 것인가?(질문)'를 묻게 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역사는 '언제, 누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로 물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2장. 사회와 개인

카는 이 장에서 역사가의 사실은 어디까지가 독립된 개인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 사실인지를 물으면서 역사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개인의 의미와 행위는 언제나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조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의 기록'이다.


49,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관한 역사의 비전이 현재의 모든 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쓰여지는 것(54p)

카가 인용하는 몸젠(Theodor Mommsen)의 <로마사> 속에 나타난 키케로에 대한 평가는 '무능한 수다쟁이요 결단력 없는 인간'(53p)이다. 이는 몸젠이 처한 독일의 사회가 '독일 국민에게 혼란을 일소해 줄 강력한 인물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키케로 대신 카이사르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키케로는 몸젠에게는 ‘국가를 구하지 못한 정치가’였고, 기번(Edward Gibbon)에게는 ‘국가가 무너질 때까지 원칙을 지킨 인간’이다.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에서 키케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는 추후 별도로 확인, 정리하기로 한다.


52, 역사가는 (...)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60, 나의 목적은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데 있다. (...) 만일 사람은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인 것이다.

카의 이 말은 한 역사가는 일생에 동일한 사상적 기반하에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말일까?


62,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소산이다.

카는 영국혁명의 원인을 스튜어트 왕조의 처음 두 국왕 때문으로, 칭기즈칸이나 히틀러를 나쁜 사람으로, 공산주의를 칼 마르크스의 두뇌의 소산 등으로 돌리는 등 개인의 행위만으로 돌릴 수 없음을 비판한다.


역사가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한없는 재부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 즉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이다.(68p)
- 마르크스 -

'나로서 무조건 찬성하고 싶은 마르크스'라는 이 인용의 변 때문에 카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었을까?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지만 인류의 역사적, 보편적 목적 달성을 위한 무의식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70p)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나타내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 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원천이고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73p)
- 헤겔, <법철학> -


74,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소산이며 그 사역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의 기록'이다.(74p)
- 부르크하르트 -

스위스 역사가인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 ~ 1897)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라는 책을 통해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확립되었고 한다. 또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로 있을 때 서로 동조관계를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다.(74p)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카는 과학과 역사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논증하기 시작한다. 카는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역사가는 자신이 취급하는 역사 인물들의 성격이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1) 역사는 특수한 것과 개별적인 것을 취급하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취급한다?

이 세상에는 명칭 이외에는 보편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도 그 하나하나는 모두가 개별적이고 단일한 것이다.(85p)
- 홉스, <리바이어던> -


88, 사회학에는 법칙이 있다는 점에서 역사와 구별된다.(칼 포퍼)

카는 이러한 포퍼의 견해에 대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카와 포퍼 간의 역사법칙 논쟁과 관련해서는 아래 별도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89, 역사학이 사회학적인 것으로 되면 될수록, 또한 사회학이 역사적인 것으로 되면 될수록 양자를 위해 더욱 이롭다.


2) 역사는 결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91,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와 현재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북돋워주는 데 있는 것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92, 과학으로부터 예견이 나오고 예견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콩트)


93,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4)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97, 지식의 과정은 주체와 객체를 아주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양자 간의 상호 관계와 의존 관계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카는 역사에 있어서 객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별도로 후술 하기로 한다.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한다?

99, 역사의 통합성이라는 것과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결정한다는 어떤 초역사적 힘을 받는다는 것과는 조화되기 어렵다


99, 역사가는 자신이 취급하는 역사 인물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카의 의견과 약간 다르게 나는 역사적 중요 인물의 사상과 사생활이 다른 점에 대해서 일부 도덕적 가치를 두고 평가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마치 <에밀>의 저자인 루소의 사상을 의심해 보는 것과 같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 하에 마치 재판관이나 된 것처럼 하여 여기서는 유죄 판결을 내리고 저기서는 무죄 판결을 내린다는 식으로 법석을 떨면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사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101p)
- 크로체 -

그 옛날의 위인을 단죄한다고 해서 누가 어떠한 이득을 얻겠는가?


역사는 모든 여신들 가운데서도 아마도 가장 잔인한 여신일 것이다.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 발전에 있어서도 이 여신은 시체의 산을 넘어서 승리의 전차를 몰고 다닌다.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무지한 우리 남녀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에 시달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진보를 위한 용기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106p)
- 엥겔스 -

카는 이 문장을 '엥겔스의 유명하고 화려한 구절은 기분 나쁠 정도로 적절하다'라고 평한다.


111, 과학자, 사회과학자 및 역사가는 모두 동일한 연구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존경하는 유시민 님은 카의 역사관을 크게 존중하면서도 과학과 역사가 동일하다는 의미를 주는 이 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평한다. 다만, 유시민 님이 '과학은 물질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기에 역사학은 근본적으로 과학이라 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잘못 언급했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반증 가능한-은 자연과학에 대한 것이고, 인간을 포함한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인 사회과학도 있기 때문이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카는 역사적 원인이란 발견되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가 자신의 설명 목적에 따라 선택하고 위계화한 의미 있는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합리적 원인은 우리들의 이해를 넓고 깊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며,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117, 역사가는 항상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단순화해야 한다.


119, 이미 죽은 말에 채찍질을 해서 산 말처럼 보이게 하려는 자가 바로 포퍼 교수와 이사야 벌린 경이다.

카는 칼 포퍼가 그의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역사법칙주의 빈곤>에서 헤겔 및 마르크스의 결정론적 역사철학(헤겔의 간계)을 '역사주의'라는 난폭한 명칭으로 묶어버렸다고 비판하고, 이사야 벌린 역시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는 의심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이들과의 논쟁은 별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124, 또 하나의 공격의 근거는 (...) 역사는 대부분 우연의 집합체이며, 우연의 일치에 의해 결정된 전적으로 우발적인 원인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것(클레오파트라의 코)

'클레오타트라의 코'라는 비유는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그의 저서 <팡세>에서 언급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가 생각난다. 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츠바이크를 '열등생'이라 평가하지 않았을까? 모두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조엘 레비의 <비밀과 음모의 세계사>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카는 역사에 있어서 '우연한 것과 예견할 수 없는 것의 작용'에 대한 토인비의 오해를 지적하고 있어 토인비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7, 역사적 사건의 절정이 아니라 단지 그 골짜기를 지나가는 집단이나 국민에게는 우연이나 우발적인 사건의 작용을 강조하는 이론이 지배되기 쉽다. 시험의 결과는 제비 뽑기와 같다는 생각은 언제나 열등생 사이에 인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 문장으로 카는 칼 포퍼, 이사야 벌린 및 토인비를 열등생으로 평가해 버린 셈이다.


역사의 모든 과정은 역사의 법칙이 우연적인 것을 통해 굴절하는 과정이다. 생물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역사의 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를 통해 실현된다.(128p)
- 트로츠키 -


그러나, 카는 우연에 대해 심하게 비판한다.


어떤 일을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 원인을 찾아내는 귀찮은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128p)


인간의 정신은 관찰된 '사실'이라는 넝마자루를 뒤져서 '부적절한' 것은 버리고 '적절한' 관찰된 사실을 골라내고 이어 붙이고 하나의 틀로 만들어서 마침내는 '지식'이라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편물을 만든다.(130p)
- Paul -

역사에 우연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카가 제시한 '담배 욕구로 인한 차사고' 예시(131p)는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특정 사건의 원인을 분석할 때 그런 의견을 내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역사는 실재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태도가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태도의 '선택적 태도'이다(132p)
- 탈코트 파슨스 -


133,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라는 헤겔 <법철학> 서문의 오해

이 말은 '합리적이면 현재 있는 것이고, 현재 있는 것은 모두 합리적이다'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자유의 이성적 개념을 제대로 구현한 것만이 진정으로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 속에서 현실화된 제도는 우연이 아니라 이성적 필연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134, 합리적 원인은 우리들의 이해를 넓고 깊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며,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가 없다.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 관계의 탐구는 가치와 관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인과관계의 탐구의 배후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언제나 가치에 대한 탐구가 놓여 있다.(134p)
- 마이네케 -

카는 마이네케를 '저 위대한 마이네케'라 칭한다.


135, 역사가는 '왜?'라는 물음 이외에도 '어디로?'라는 물음을 가진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

카는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자동적(헤겔)·불가피한 결과(마르크스)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조건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의식적으로 믿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가능성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이다.(147p)


역사를 해석하겠다는 열망은 너무나 뿌리 깊은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견해를 가지지 않으면, 신비주의나 시니시즘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137p)
- 포위크 -

카는 토인비의 견해를 신비주의의 한 예라고 비판한다.


141, 문명의 몰락에 관한 모든 논의는 '대학 교수들이 옛날에는 식모를 썼지만 지금은 스스로 설거지를 한다는 것을 단지 뜻할 뿐이다'.

나는 얼마 전 한 직원에게 한국이나 중국의 경제 발전과 개인의 소득 증대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삶의 서비스는 저하되고 있음을 한탄한 적이 있었는데 카의 예시가 더 적절한 것 같아 반갑다.

나처럼 최근의 기술 진보 역시 모두에게 이득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대런 아세모글루의 <권력과 진보>를 읽어보자.


142,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


142, 진보에는 명확한 시작이나 끝이 없다.


144, 진보의 시기가 있듯이 퇴보의 시기도 분명하다.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가능성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이다.(147p)

카의 이 주장은 헤겔의 '역사는 자유의식의 필연적 진보'라는 주장이나, 마르크스의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기계적으로 결정한다'라는 주장과 같이 자동성이나 불가피성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카에게 있어 진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일시적으로 후퇴하더라도 여러 노력을 통한 진보 가능성이 있으니 역사의 진보를 법칙으로 믿어 무책임과 독단으로 빠지지 말고 진보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믿고 나가자는 의미로 들린다.


148, 역사에 있어 객관성이란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고, 단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이다.


152, 한 역사가를 다른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는 단지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 혹은 올바른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52,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은 '역사란 과거의 여러 사건과 점차 나타날 미래의 여러 목적 사이의 대화'이다.


몰락하는 시대에는 모든 경향이 주관적인 것이 되지만, 모든 일이 새 시대를 향해서 성장하고 있는 시대에는 모든 경향은 객관적인 것이 된다.(154p)
- 괴테 -

이 인용구는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의 《괴테와의 대화(Gespräche mit Goethe in den letzten Jahren seines Lebens)》에 언급된 것으로 확인된다. 몰락하는 시대에는 사회 전체가 방향을 잃은 상태가 되어 객관적인 기준을 상실한 채 '각자도생'하게 되고, 성장하는 시대에는 사회가 공유된 과제와 방향을 가지고 있어 개인의 판단이 전체의 방향성과 연결되는 객관적 상태가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카는 '진보를 포기한 시대는 객관성도 함께 포기한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157, (이사야 벌린이 말한) 역사에 있어서의 판단의 기준은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 '가장 소용되는 것(가장 소중한 것을 돌보는 것)이다.

카는 이점에서만 이사야 벌린과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158, 역사는 소위 '지연된 성공'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가 내일에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수도 있다.

지연된 성공에 해당하는 예는 매우 많다. 영국 차티스트 운동은 1838~1848년 영국에서 노동자 계층이 보통선거·비밀선거·선거구 평등, 의원 세비 지급, 재산 자격 폐지, 매년 의회 개선 등을 요구한 참정권 확대 운동이었는데 실패 후 1867·1884년 선거법 개정으로 보통선거가 확대되었다. 20세기초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서프러제트(Suffragette) 운동 역시 실패했으나 1918·1928년에 여성참정권이 도입된 사실 등이다. 참고로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영화(2016)로도 나와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영화-서프러제트.jpg


161, 역사에 있어서는 진보란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 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다.


162, 역사적 진리 영역은 이러한 양극(사실과 가치)의 중간 지대의 어디엔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6장. 넓어져 가는 지평선

카는 이 장에서 20세기는 이성의 확대와 지리적인 범위의 변화(탈 유럽)를 보이고 있으며, 역사학의 객관성과 진보는 고정된 방법이 아니라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164, 역사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계절의 순환이나 사람의 일생-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된다.


개인은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지만, 또한 그 이상의 일을 달성한다. 이러한 일은 그들의 의식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행위 속에서 잠재한다.
인간은 합리적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하면서 이것을 이용하여 취지를 달리하는 그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이성의 간계)(166p)
- 헤겔, <역사철학> -


173, 인간과 사회는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우리 눈앞에서 달라져 가고 있고 변화되고 있다.

카는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깊고 심각한 변화 과정에 있으며 그 첫 번째 측면은 깊이에 있어서의 변화 즉, 이성의 확대이다. 역사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무엇이 중요해지는가’가 달라지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178, 역사 상의 모든 위대한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이 발전에도 지불되어야만 할 희생과 손실이 있고 직면하여야 할 위험성이 있다.


178,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깊고 심각한 변화의 두 번째 측면은 지리적인 범위에서의 변화, 즉 세계의 외형의 변화이다.

카는 강의 당시의 세계의 중심은 서부 유럽에서 동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연장부로 변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181, 18세기에는 아직도 엘리트의 역사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영국 역사가들은 망설임과 산발적이었지만 전 국민사회의 역사라는 역사관을 향하여 나아갔다.

이 말은 결국 한 인물 중심의 역사에서 사회(집단, 계급, 국민, 대륙, 민족 등)의 역사로의 이동을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85,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요소는 (...)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란 믿음이다.


187, 인간 세계의 진보라는 것은 과학에 있어서나 역사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인간이 현존 제도의 단편적 개량에만 국한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현존의 제도와 그 토대를 이루고 있는 전제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다는 대담한 각오를 통해서만 이룩된 것




[감상평]


나의 독후감을 적는 순서를 보자. 저자 소개를 반드시 감상평보다 먼저 두는 이유는 그 저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고자 함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선입견이나 왜곡을 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저자의 주장 내용은 저자의 성장 및 사고 환경에 지배받을 것이므로 설사 선입견이 생겼다고 해서 꼭 틀렸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역사서에 관해서 나의 생각과 유사하나 더 정치(精緻)한 문체로 작성된 글이 이 <역사는 무엇인가>가 아닐까 한다.

내가 읽은 책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다문독서연구회'가 옮긴 것이다.(1993년) 존경하는 유시민 님의 <청춘의 독서>(2009)의 '14장.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에서 인용된 번역서는 박성수의 번역본(민지사, 1983)이며, 최근에는 김택현 교수의 역서(까치, 2015)가 많이 읽히는 것 같은데 카의 의견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번역서라도 크게 무리가 없다.

다행스럽게 알릴레오 북's의 Youtube 동영상도 있으니 훌륭한 참고가 된다.([알릴레오 북's 60회]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 역사란 무엇인가 - 주진오, 윤영휘 편, [알릴레오 북's 61회] 그래도 역사는 움직인다! / 역사란 무엇인가 - 주진오, 윤영휘 편)


내 책의 앞표지를 열고 보니 '1993. 11. 14'라고만 적혀 있다. 당시 나는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복학한 3학년 말에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보통은 습관상 읽게 된 배경과 목적을 적어두기도 하고, 읽고 나서의 '한줄평'을 적어두곤 하는데, 일자 외에는 없는 것을 보니 배경이나 목적보다 완독 후 '한줄평'을 적고 싶었던 것 같고 그마저 적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 완독 하지 못했거나 정리하지 모양이다.-몇 가지 도구로 밑줄이 그어져 있고, 별표도 한 것으로 보아 읽기는 한 것 같은데 말이다-

다시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정독하며 정리를 시작한다. 참고로 재독이라 생각해도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 힘들어하다가도 상기에 언급한 알릴레오 영상에서 유시민 님과 주진오 교수(상명대)의 시작 멘트 덕분에 용기를 갖고 완독했다.

"수십 번을 읽어도 알까 말까 한 책이다(유시민)"

"역사학자라고 해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주진오)"

일단, 이토록 어렵다는 책을 일독한 뿌듯함에 다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감상평을 남기면서 후일 재독 또는 독서 토론 후 좀 더 개선된 감상평을 기대해 본다. 역사는 아니라 해도 나의 기록에 대해, 마치 카의 말처럼 현재나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의미는 있지만, 닫혀 있지 않다.”

역사는 우연처럼 무작위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해석할 수 있는 질서가 있는 한 의미가 있고, 결정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닫혀있지 않다.



[더 생각할 것들]


1.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은 무엇이고 카의 견해와 어떻게 다르며 어떤 한계가 있는가?

“역사는 사실이 과연 어떻게 있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독일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1795–1886)는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랑케에게 역사란 객관적 자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작업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사료의 충실한 전달자(transcriber)라고 하여, 그는 역사 연구를 신화·문학·철학의 영역에서 과학적 연구의 영역으로 이끈 공로가 인정된다. 그러나 카의 비판을 포함하여 몇 가지 한계가 지적된다.

1) 객관성의 환상

어떤 사실을 기록할지 선택하는 순간 이미 역사가의 가치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객관적 재현”은 불가능하다.

2) 사료의 편향성

남겨진 기록은 대부분 권력자·지배층이 만든 것이므로 그대로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증주의는 '있는 자료만'을 기준으로 하였으므로 일반 민중·여성·식민지 피지배자를 역사에서 배제하는 결과도 생길 수 있다.

3) 맥락 없는 사실 나열

날짜나 사건만 나열하면 '연표'는 되지만 '역사적 이해'는 생기지 않는다. 원인·구조·맥락 측면에서 역사를 해석해야만 의미가 생기는데 실증주의는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죽은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해석이다.


2. 카의 '역사도 과학이다'라는 주장은 이후 어떤 비판과 조정이 있었는가?

카의 주장은 역사가 단순히 과학과 같다는 말이기보다는 역사는 단순한 서술·문학·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과관계·설명·법칙성·합리적 추론을 포함한 지적 탐구이므로 과학적 방법을 갖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역사주의—역사 속에 필연적 법칙과 목적이 있다고 보는 관점—를 전체주의적 사고의 씨앗으로 규정했다. 그는 자연과학의 핵심이 ‘반증 가능성’ 임을 강조하며, 역사가 예측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상 과학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자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역사적 이해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해석자의 지평과 과거의 지평이 융합되는 언어적·문화적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후일 포스트모던 사조는 Carr의 명제에 훨씬 급진적으로 반대한다. 화이트(Hayden White), 데리다(Jacques Derrida), 푸코(Michel Foucault) 등은 역사 서술 자체가 권력·담론·서사의 산물이라고 지적하며, “과학”이라는 말은 특정한 해석을 객관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즉 Carr의 명제는 역사학 내부뿐 아니라, 철학·문학·사회이론 등 다양한 방향에서 논쟁을 촉발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홍수 속에서도 Carr의 생각이 폐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80–1990년대 이후 역사학은 Carr의 문제의식을 조정된 형태로 계승한다. 역사는 자연과학과 같은 ‘법칙-예측형 과학’은 아니지만, 아무 근거 없이 서술이 남발되는 순수 해석적 자유주의도 위험하다. 따라서 현대 역사학은 “역사는 해석적이지만, 증거에 의해 자기 자신을 견제하는 학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역사학은 인문학적·서사적·가치적 성격을 갖지만, 동시에 자료·근거·반성적 검증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특수한 유형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2. 카가 "역사는 진보한다"는 주장에 대한 이후 학계의 평가는?

포스트모던 역사이론은 “진보” 개념 자체가 서구·근대·백인 남성 중심의 담론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화이트(Hayden White)는 <메타역사 Metahistory>에서 역사 서술이 문학적 서사구조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하면서, “진보” 역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플롯에 불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푸코(Michel Foucault)는 <The Archaeology of Knowledge>에서 역사와 지식의 발전 과정이 “축적”이 아니라 '단절과 전환(discontinuity)'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보를 일직선적 발전 과정으로 간주하는 관점을 거부했다.

포퍼(karl Popper)는 <역사법칙주의 빈곤, The Poverty of Historicism>에서 “역사에는 보편적 법칙이 존재하고,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는 믿음”을 '역사주의(historicism)'라고 규정하며 이를 비판했다.
Carr가 진보를 결정론으로 이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진보 개념이 자칫 전체주의적 정치 담론의 정당화 구조로 이어질 위험성을 경고했다.


3. 카의 토인비 역사관에 대한 평가는?

토인비의 핵심 명제는 다음의 명제로 요약된다.

“문명은 도전(challenge)에 대한 응전(response)의 성공 여부에 따라 흥하거나 쇠퇴한다.”(<역사의 연구>)

그는 문명을 ‘국가’보다 더 큰 분석 단위로 보았고, 각 문명의 흥망을 비교하여 역사적 법칙에 가까운 반복 구조를 찾으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19–20세기 역사학 내부에서 ‘총체사(Universal History)’의 회복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실제로 토인비는 전후 영국 지식사회에서 일정 시기 동안 역사학의 중심적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접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역사 대상: 문명 단위의 거대 구조

2) 목표: 패턴·법칙을 통한 역사 인식

3) 진전 방식: 발전-쇠퇴의 순환적 논리

토인비의 역사관은 즉, 역사 속 개별 행위자·구체적 사건보다는 “세계사적 구조”를 우선시하는 거시적 총체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카는 결정론을 명확히 거부한 채 진보를 “자동적 결과가 아닌 인간의 선택을 전제로 한 가능성의 확대”로 재정의하였으므로, 이것은 곧 토인비가 문명쇠망의 패턴을 비교함으로써 역사적 결과를 설명하려는 방식과 근원적으로 충돌한다.




[더 읽을 도서]


1.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hard Times>(창비세계문학, 장남수 역)

2. 니체,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이진우 역)

3. 도스토옙스키, <악령>(민음사, 김연경 역)

4. 에드워드 기번, <로마 제국 쇠망사>(청미래, 황건 역)

5.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6. 헤겔, <법철학>

7.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 김덕영 역)

8. 막스 갈로, <프랑스 대혁명>(민음사, 박상준 역)

9. 빅토르 세르주, <러시아 혁명의 진실>(책갈피, 황동하 역)

10.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1.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이한구 역)

12. 칼 포퍼, <역사법칙주의 빈곤>(철학과현실사, 이한구 역)

13.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14. 조엘 레비, <비밀과 음모의 세계사>

15. 토인비, <역사의 연구>(동서문화사, 홍사중 역)

16. 대런 아세모글루, <권력과 진보>

17. 헤겔, <역사철학 강의>(동서문화사, 권기철 역)

18. 조지형, <랑케&카: 역사의 진실을 찾아>

19. 가다머, <진리와 방법>


2025.12.19 ~ 12.25, 한국 통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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