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 :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2013)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Art as Therapy, 부제 : 예술은 어떻게 우리를 치유하는가>는 예술을 감상하는 전통적 방식(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가르치고, 팔고,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은 치유의 매개 도구일 수 있으므로 예술의 7가지 기능(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그리고 감상)을 제시한다. 이 기능을 기반으로 사랑, 자연, 돈, 정치를 재해석한다. 이렇게 예술이 심리적, 존재론적 시각으로 돌아올 때,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고,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저자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사랑과 인간관계에 관해 탐구한 독특한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 기사 작위를 받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과 감성을 정밀하게 포착해 낸 우아하고 지적인 에세이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건축》 《일의 기쁨과 슬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등이 있다.《영혼의 미술관》은 영국 출신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 함께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알랭 드 보통이 집필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재치와 논리가 예술의 세계, 그리고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미술에 재능이 거의 없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미술관을 들러 마치 뭔가 의미를 찾아보려는 양 뚫어지게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곧 그런 노력은 허무함과 무력감으로 내게 되돌아온다. 처음 보는 작가나 그림은 당연하거니와 어느 교과서에서 만나 봄 직한 그림들도 "이게 무슨 의미를 준다고 한 거였더라?" 하며 과거 암기식으로 예술을 대하던 태도로 돌변하더니 결국 '예술 재능'이 없는 나를 자책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저자는 통쾌하게도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 준다.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가르치고, 팔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4p)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근본적인 목적을 묻고 있다.
저자는 첫 장 <방법론>에서 예술은 치유의 매개 도구일 수 있으므로 예술의 7가지 기능을 말하고 있다.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그리고 감상이다. 저자는 예술을 학술적으로 설명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인도 아래 심리적으로 우리 삶을 개혁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듯하다.
인간의 두뇌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듯이 예술도 모든 것을 기억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잊을까 봐 걱정하는 대상은 아주 구체적이다. (...)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기억하기 원하고, 그래서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화가들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고 무엇을 생략할지 적절하게 선택한다."(8p)
빅터 플랭클은 <죽음의 소용소에서>를 통해 인간은 어떤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는 한, 인간은 끝내 살아갈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수용소로 스스로 들어가 고통을 이기며 삶의 의미를 찾을 필요까지는 없지만-아니, 어떨 때 현실은 마치 수용소에 있는 것 같은 고통이 다가올 때도 분명히 있다-예술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지켜낼 수 있다.
"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닌 희망의 부재가 결정할 수 있다. (...)
세상의 고민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주위를 들깨우는 탓에 우리는 희망적인 성향을 지켜낼 도구가 필요하다."(16p)
우리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어느 예술 작품을 보면, 마치 나를 위로하는듯한 감정에 찾아오고 그로 인해 가끔은 위로를 받는다. 이는 마치 예술은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도피처로써 쇼펜하우어가 "우리는 미적 관조 속에서 고통과 의지의 속박을 일시적으로 떠나고, 이 순간 우리는 삶의 고통을 잊는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주장과 어울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그 슬픔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슬픔을 ‘내면의 진실을 깨닫는 계기’로 보는 키에르케고르식 실존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
(...)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26p)
지금은 중국 상해에 업무상 장기 체류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경기도 동탄 신도시의 한적한 타운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다소 교통은 불편하지만 마치 매일 나만의 별장에서 근무지로 출근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보다 자연친화적 환경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도시 생활이 주는 무료함을 연간 한두 번의 자연 여행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리라. 이런 내 삶을 지켜본 것이기라도 한 듯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이 그런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고 말한다. 심지어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의 과함을 상쇄하기 위해 궁전 근처에 가짜 농가를 지었다고 하지 않는가?
예술은 우리가 잃어버린 성향을 농축된 형태로 내놓아,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의 적당한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32p)
또한 우리는 스스로 또는 타인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아는 바를 따르지 않는 것. 즉,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못하는 상태” 즉 아크라시아(akrasia)라고 정의했다. 예술이 권고와 훈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 이유라 한다.
예술은 인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들어 준다.(37p)
언어 철학자로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의 명언인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는 말은 나의 사고는 내가 아는 언어의 범주 내에서 전개되며, 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세계가 한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대상을 인식하면서 그 사고 내에서 맴도는 그 무엇인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명확히 알게 하는 자기 이해의 기능을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과 동류의식을 느낄 때, 이는 그 사물이 지녔다고 느껴지는 가치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때 보다 그 사물에게 있을 때 더 분명히 보이기 때문 (...)
예술은 자기 인식을 누적시켜, 타인에게 그 결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
예술에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런 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해 주는 능력이 있다.(47p)
저자가 인용한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말한 시의 핵심 기능도 그림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어설픈 형태로 경험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거기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44p)
얼마 전 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2005)을 재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조 블랙의 사랑> 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케이트 윈슬렛(Kate Elizabeth Winslet)의 모습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짐 캐리(Jim Carrey)의 비교적 가벼운 웃음 연기도 정겨워 기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eternal sunshine(영원한 햇살)'이란 단어가 알렉산더 포프의 시인 <Eloisa to Abelard>의 '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에서 인용한 말로 '순수한 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은 연결해 보면 풍부한 의미가 되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영원한 햇살은 포프에게로, 포프는 알랭 드 보통으로, 보통은 다시 내게로 영원한 순환을 가져다준다. 참고로 영화에서 인용한 시 일부를 잠시 빌려온다.
결점 없는 수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 잊고, 세상으로부터 잊히니.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
모든 기도를 받아들이고, 모든 바람을 체념하니.
10여 년 전 <성장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고려대 석영중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톨스토이 문학을 중심으로 했던 강연인데 '성장은 성찰과 학습을 통해 자기완성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는 정의를 시작으로 그의 문학을 흥미 있게 강의해 주신다.(《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은 안나�? 아니죠~ 레빈�? 맞습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EP.08] | #석영중 교수) 내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14편이나 되는 영화가 아닌 책으로 읽도록 안내해 준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강의에서 톨스토이의 성장은 결혼과 회심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계기는 우연이나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비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처절한 삶의 반성에서 나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이 어떻게 성장의 기능을 부여한다고 보았을까?
잠재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대상 앞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견고하게 유지할지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58p)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의 마지막 기능으로 '감상'을 말한다.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다.'(59p) 이러한 원인을 습관화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상하게도 좋은 습관은 들이기가 어렵고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은 어느새 자연스레 몸에 밴다.-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좋고 나쁜 습관을 구분하는 것일까?
예술은 습관에 반대하고, 우리가 경탄하거나 사랑하는 것에 갖다 대는 눈금을 재조정하도록 유도해 그 소중한 것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59p)
즉, 예술은 나쁜 습관에 반대하고, 그 나쁜 습관이란 사랑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소중한 것을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arete)들은 (...) 그것들을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습관을 통해 완성시킨다."([독서] 자기계발)고 했는데, 탁월하지 않은 습관은 예술의 적인가 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예술을 치유로 보는 시각을 받아들일 때 생겨나는 결과로 기본적으로 예술과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예술이 우리를 도와 더 나은 삶, 더 나은 자아로 이끌어 주는 확신'이라고 말하며 7가지 보조 수단도 제시한다.
1. 나쁜 기억의 교정책
2. 희망의 조달자
3. 슬픔을 존엄화하는 원천
4. 균형추
5. 자기 이해로 이끄는 길잡이
6.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7. 감각을 깨우는 도구
그렇다면 예술은 어떻게 거래되는가?
갤러리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명화엽서와 원작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파는 기념품 가게는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83, 84p)
그러나, 현실에서는 명화엽서를 구매하는 것보다 경매를 통해 구매하는 이벤트에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참에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 세상의 구세주>는 2017년 4.5억 달러(약 6천억 원)에 낙찰되어 폴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약 2억 5천만 달러)을 제치고 1위가 되었다고 한다.
한 동영상(위작인가 진품인가? 논쟁의 중심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미술 읽어드립니다 EP.27] | 양정무 교수)을 보니 이 그림은 처음 위작으로 알려져 1958년 45파운드(약 7만 원)에 거래되었으나, 복원을 거쳐 이 모습으로 최고가에 거래된 사연을 전해주는데, 진위논쟁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 한다. 이 기사도 참고해 볼만하다.(7만 원→5000억 원 최고가…‘다빈치 그림’ 기구한 사연 - 헤럴드경제)
궁금함이 더해져 다큐멘터리 영화 <살바토르 문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The Savior for Sale>을 시청한다.
알랭 드 보통은 예술의 연구와 전시 방법과 관련하여 심리학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예술 작품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심리적 약점과 보다 긴밀히 연결시킬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86p)
(예술을 학술적으로 설명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인도 아래 심리적으로 우리 삶을 개혁하라는 격려가 필요하다.(92p)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사랑했던 것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곳이다.(94p)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2012)의 몇 장면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간단히 줄거리를 정리하면, 주인공 길(오웬 윌슨)이 약혼녀와의 여행지인 낭만과 예술이 가득한 파리에서 우연히 과거인 1920년대의 파리로 들어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모두 과거를 동경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약혼녀와 헤어지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레코드 점원과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영화는 끝난다.
1. 약혼녀 친구의 애인(폴)은 현학적으로 파리 곳곳의 미술 관련 장소와 설명을 늘어놓는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하는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가르치고, 팔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4p)는 말처럼.
2. 골동품점에 가서 비싼 의자를 고르려는 예비 장모와 말다툼을 한다. "예술은 어떻게 거래되는가?"(83p)
3.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헤밍웨이). "좋은 연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107p)
영화는 톨스토이의 명언처럼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상기 스크린샷은 유튜브 영화 소개 영상을 참조함 : 인생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당신이 꼭 봐야하는 영화)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저자는 '사랑 같은 게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들은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100p)'이라고 라 로슈푸코의 말로 시작하며 예술로 우리가 더 잘 사랑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라 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 ~ 1680)는 프랑스 작가로 <잠언집>(1665)이 유명한데, 이 참에 그의 명언 몇 가지를 찾아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적을 만들기 원한다면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
그러나 친구를 얻고 싶다면 그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느끼게 해 주어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그림 <녹턴 : 배터시 강>을 보고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엔 안개가 없었다"라는 찬사를 보낸다. 우리의 감각을 끌어올려 안개의 지위를 끌어올렸다는 것.
그냥 보통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이런' 특별한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보통'의 것들은 '특별한'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당위는 의무를 수반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부자연은 '이런' 안개를 만들지 못한다. 나는 '이런' 나다.
다프니스는 클로에가 너무나 소중한 나머지 감히 만지지 못하고 있다.(103p) '인류의 최초의 로맨스'라는 평가답게 첫사랑, 설렘, 감사, 불안 등의 감정이 마구 섞여 있는 듯한 이 그림이 주는 미묘함이란.
알랭 드 보통은 또 좋은 연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질문하며 답한다.
사랑에 빠져 하는 행동을 인식하지 않을수록, 그런 행동에 대해 학습하지 않았을수록, 더 존중하고 신뢰할 만한 연인으로 인정받는다'(107p)
사랑연습. 무엇이든지 더 잘하기 위한 훈련과 연습.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할까? 영화 <퍼펙트 데이트, The Perfect Date>(2019)
대중의 평가는 적어도 나에게 틀렸다. 인생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이 책 <영혼의 미술관>의 사랑 편을 읽는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이다. 사랑에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진심이다. 다음 순서는 그가 진심을 보여주는 것일 뿐.
사랑에 관한 예술에는 인내, 호기심, 회복력, 관능, 이성 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체적 관점에서 저자는 니콜라 푸생의 <겨울(대홍수)>를 제시한다.
인생은 대개 이런 모습으로 흘러간다.
난파선에 매달리고, 아무것도 없는 바위일망정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순간의 안전을 구한다.
따라서 관계의 파탄, 그로 인한 상심은 상궤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119p)
겨울이 되기 전 자연은 가을이라는 것을 내놓는다. 마치 사람이 죽기 전에 그런 나이, 모습, 행동 등이 나타나듯이 말이다. 저자는 예술은 자연이 가을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을 앞두거나 죽음을 생각하도록 '미래의 소식'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것일까?
운명적인 죽음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 다가올 일에 마음이 보다 정밀하게 조율되고, 그에 따라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148p)
저자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인 허버트 리드의 노력에 감사해 한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 ~ 1968)는 깊은 학식과 투철한 심리분석에 의한 많은 평론에 의하여 영국 미술 저널리즘의 지도적 입장에 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서 『The Meaning of Art(예술의 의미)』(1931) 등을 통해 예술의 이론 및 원리에서부터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 원시예술에서 현대예술까지 서구문명의 예술사를 섭렵할 수 있다고 한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권 <소돔과 고모라>에는 캉브르메르 부인은 (...)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 이는 용서할 수 있는 일이다. (...) 진짜 문제는 자신의 관심사를 모른다고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 약점을 가리기 위해 뒤집어쓴 오만에 있다.'(168p) 프루스트를 읽지 않고 어떻게 그 '오만'을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 ~ 1896)는 산업 혁명기에 대량 생산된 제품의 저질화 현상과 노동의 즐거움을 앗아간 기계를 비판하고 미술 공예 운동을 주도하였지만, 그의 회사는 결국 파산한다. 저자의 냉철한 판단은 이렇다.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면 실패하고, 취향을 무시하면 성공한다.(176p)
하지만 진보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세르 데이비드 할릴리(Naser David Kalili, 1945 ~ ), 앤드루 카네기, 앤드루 멜런(카네기 멜런 대학은 이 두 명의 기부자에 의해 탄생) 같은 부호의 발자취 즉, 경제의 '낮은'영역에서 돈을 벌어 자선사업을 벌이는 유형도 좋지만 저자는 '값진 진실'을 말한다.
처음부터 돈을 버는 일상의 직업 안에서 진리와 친절과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더 생생하고 접근하기 쉽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값지고 진실하지 않을까?
에밀 클라우스는 찰스 디킨스와 에밀 졸라가 문학으로 했던 일을 그림으로 했다.(198p)
얼마 전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 대한 감상평에서 언급한 것 처럼,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시조로로 알려져 있다.([독서] 문학)
책 서두에서 예술의 목적을 설명하던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다소 역설적이면서도 내게는 아주 반갑고 아름다운 상상 같은 선언을 또 한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다. (...)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232p)
그러나, 만일 세상이 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세상이 온다면 예술은 사라져야 할까?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7가지 기능 중 기억,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의 기능은 줄어든다고 해도 희망 없는 삶이 있다면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술은 또 다른 희망을 위해서라도 더 존재해야 한다.
몇 달 전 나의 중국 친구(아니 지금은 친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있는 나에게 이 책 <영혼의 미술관>을 본인의 최애 도서라며 빠른 독서를 권한다. 읽고 있는 책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읽어야 할 도서 순서가 있었기에 이제야 읽고 말았다. 나는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지만 이 기회에게 다소 개선되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기면서 왜 그가 이 책을 최애 도서라고 했는지 조금씩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기쁜 것은 미술 관련 책을 완독 했다는 것에 있다. 약 10년 전 한 서양철학학원 지인이 추천하여 장만한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도, 언제 가볼 거라 다짐하며 미리 보겠다고 구한 Koenemman의 <Louvre >도 아직 표지도 열지 못한 채 책장에 고스란히 모시고 있는데 말이다.
완독한 이유는 물론 친구의 추천이 강렬했다. 그래서 우리에겐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둘째, 이 책은 200여 페이지 정도 되지만 한쪽은 그림이나 사진으로 채워져 있어 100여 페이지 정도되는 부담 없는(?)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친구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을까?
1.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2.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3. 롱고스, <다프니스와 클로에>
4. 윌터 아이작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5. 라 로슈푸코, <잠언집>
6. 허버트 리드, <The Meaning of Art(예술의 의미)>
7.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25.12.1 ~ 12.11, 上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