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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문학

에밀 졸라 <테레즈 라캥>

by durante

인간이 "죄를 짓는 동기는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으며, 그 동기의 다양함을 상상하다가 소설 문학 작품 속에서 다양한 죄의 동기를 찾는다. 명예, 애정, 심지어 부조리에 의한 죄까지...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Édouard Charles Antoine Zola, 1840-1902)의 <테레즈 라캥, 1867>을 읽는다. 이 소설은 자연주의 소설관을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밀졸라는 바칼로레아를 낙방했지만 작가의 길로 들어서 성공한 작가이다. <목로주점>의 성공으로 <레 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의 원고료보다 높았을 정도다.

<루공-마카르 총서> 20권 중 제7권인 <목로주점, 1877>의 성공으로 후속 3부작 <나나>, <제르미날>, <인간짐승> 등을 발표하면서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와의 인연도 깊다. 에두아르 마네는 1877년 소설 <나나, 1880>와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렸는데, 고급 창녀의 부귀영화와 몰락을 통해 고위층의 부패를 시각예술로 비판한 작품이었는데 이 실제 모델이 고급 창녀 출신 여배우 앙리에트 오제르여서 작품이 나오자 파리 시내가 들썩였다고 한다.


나나-마네.jpg 에두아르 마네의 ‘나나’(154×115㎝), 1877년작

사실 졸라는 ‘풍기 문란한 그림을 그린다’고 늘 가혹하게 비평받던 마네를 지지하고 변호해 준 몇 안 되는 비평가 중 한 명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마네는 졸라의 초상화도 남긴다.


마네-초상.jpg ‘에밀 졸라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 1868년, 캔버스에 유채, 146 × 114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위키백과 등을 참조하면,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 조류의 수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연주의(自然主义)는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문학사조이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realism)-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문학 <보바리 부인> 참조-의 파생물이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자연주의들은 한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사회적 환경이 결정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주체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나 유전 같은 밑에 숨은 힘들을 ‘과학적으로’ 결정하려고 시도한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모두, 주체가 고도로 상징적이고 이상적이며 심지어 초자연적이기까지 한 취급에 영향을 받는다는 낭만주의에 반대한다.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은 자주 거칠고 욕망에 가득한 주체의 문제를 담고 있는데, 에밀졸라의 작품들에서 마음에 스며드는 비관주의와 함께, 성적 욕망에 솔직함을 드러낸다.


그의 소설 <테레즈 라캥>의 줄거리.

19세기 파리의 음습한 골목에 사는 테레즈 라캥은 이모이자 양어머니 마담 라캥에게 자라 사촌 카미유와 무미건조한 결혼을 한다.
카미유의 친구 로랑을 만나 강렬한 육체적 욕망을 느낀 테레즈는 그와 불륜에 빠지고, 둘은 카미유를 세느강에서 익사시키는 살인을 저질러 자유를 얻고, 결국 결혼한다.


드가-테레즈 로랑.jpg 박이문 역 <테레즈 라캥> 중


하지만 살인 후 두 사람은 처음의 열정 대신 죄책감·공포·혐오에 휘말리면서 끊임없는 환각과 불안, 서로에 대한 의심이 심화되어 결국 동반자살로 파멸을 맞는다.


결국 자연주의는 (평범한 일반 대중인) 인간과 그 삶에 관한 진실과 진리를 밝히는 문학이다(박이문, 2009). 주인공 테레즈나 로랑이 일반 대중인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의 핵심적 요소별로 보면,

유전과 환경의 결정론(다윈의 <종의 기원> 영향) : 테레즈의 열정적 기질(아프리카계 어머니)과 음습한 집과 무기력한 결혼생활이 욕망과 범죄를 촉발하게 되어 인간의 선택보다 태생·주변 환경이 행동을 규정함을 보여 준다.

본능·욕망의 과학적 묘사 : 테레즈와 로랑의 육체적 충동, 살인 후의 '심리·신체 반응(환각·불면·신경쇠약)'을 임상 보고서처럼 세밀히 기록한다.

도덕보다 관찰 : 작가는 선악의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이 조건에 놓인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실험하듯 서술한다.

사실주의 이상의 사실감 : 파리의 습기 찬 골목, 가게의 냄새와 빛, 인물들의 피부 감각까지 감각적으로 재현해 독자가 현장에 있는 듯 체험하게 한다.


찰리 스트래턴 감독, 엘리자베스 올슨(Elizabeth Olsen, 테레즈 역) 주연으로 영화화하였기에 같이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테레즈 라캥 영화.jpg


영화는 원작의 음습함을 나타내듯이 대부분의 영상이 매우 어둡다. 심지어 강한 빛이 내리는 한낮의 야외 풍경조차 그리 밝지 않다.


라캥 영화.png


테레즈가 로랑과의 사랑에 앞서.

당신은 나를 너무 늦게 찾았어요


테레즈의 대사는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은 최인훈의 <광장> 은혜의 대사가 이어질 듯하다.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2014년 한국 개봉 당시 어는 평론 기사.(에밀 졸라 원작 영화화 ‘테레즈 라캥’, 클래식 무비의 결정판 ‘호평’ - 뉴스웨이)

‘테레즈 라캥’은 명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의 뒤를 이를 또 하나의 명품 클래식 무비의 탄생을 알리고 있어 고전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 연극 또는 뮤지컬로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데 2012년 이후 매 2년마다 공영되다가 2022년을 마지막 공연이 진행되었다. 종연된 지 3년이 지났으니 곧 재공연이 있으라 기대해 보며, 2022년 뮤지컬 <테레즈 라캥>의 평론을 읽는다.([Review] 운명에 대하여 - 뮤지컬 테레즈 라캥)


테레즈 라캥 - 뮤지컬.jpg


주인공 테레즈에게는 복수가, 까미유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라캥 부인에게는 독선이, 로랑에게는 탐욕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각자의 욕망이 억압되었을 때 생겨나는 반대급부로서의 독 毒, 저마다의 죄종 罪宗이다. 테레즈에게는 자유가, 까미유는 믿음이, 라캥 부인에게는 안정이, 로랑에게는 물질이 결여되었고 그것은 욕망과 억압과 죄종을 자아낸다.


에밀 졸라의 시신이 안치된 프랑스 팡테옹의 입구에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한다.

"국가가 위대한 인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또한 에밀 졸라에 대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평가는 매우 찬사적이다.

나는 졸라를 향한 존경과 가없는 찬사에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


다음 내가 읽어야 할 소설은 <목로주점>, <보바리 부인> 또는 마크 트웨인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2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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