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향료, 이소아밀아세테이트의 달콤한 착각
1부 What’s Added 감각을 조작하는 첨가물의 세계
2장. 냄새로 유혹하다 _후각이 지배하는 소비심리
(2) 바나나우유? 아니고 바나나 ‘맛’ 우유
노란 우유라 불리던, 어릴 적부터 익숙한 바나나 '맛' 우유.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진한 향은 마치 막 깐 바나나를 으깬 듯 달콤하게 입맛을 깨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한다. ‘정말 바나나가 들어 있을까?’
정답은 시기별로 다르다. 2009년 이전엔 ‘없고’, 이후엔 ‘있다’.
1974년 국내에서 처음 출시될 당시, 바나나는 귀한 과일이었다. 따라서 제품에는 바나나가 한 톨도 들어 있지 않았고, 식품표시 기준에 맞게 ‘바나나 우유’가 아니라 ‘바나나 '맛' 우유’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2009년 법 개정으로 ‘합성향’만으로는 ‘~맛’ 표기를 쓸 수 없게 되자, 제조사는 수십 차례 시제품을 만들며 돌파구를 찾는다. 결국 소량의 바나나 과즙을 첨가해 이름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오늘날 제품 속 과즙은 고작 0.1~0.3% 수준이다.
만약 과즙 첨가가 실패했다면, 바나나‘맛’ 우유(과즙첨가)가 아니라 바나나’ 향’ 우유(과즙 무첨가)로 바뀔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바나나 향은 과즙 때문이 아니다. 원재료명에 조용히 적힌 착향료(합성향료, 바나나향), 바로 이소아밀 아세테이트(isoamyl acetate)라는 화학물질이, 그 주인공이다.
이 분자는 바나나 껍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향 성분과 구조가 같아 우리의 코를 속인다. 소비자는 바나나가 듬뿍 들어간 것처럼 착각하지만, 사실은 분자 하나가 만든 달콤한 환상일 뿐이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실제 바나나와 바나나 맛 우유를 비교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절반 이상이 ‘우유 쪽이 더 바나나 같다’고 답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가공된 바나나향’에 노출되었고, 그것이 곧 바나나의 ‘표준 향기’로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향의 학습된 표상(Learned olfactory representation)’이라고 부른다.
바나나 맛 우유에는 분명 소량의 과즙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합성 향 분자가 주도한다. 천연이든 합성이든, 향료는 안전성이 검증되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바나나는 이미 ‘진짜 과일’이 아니라 가공된 향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가공식품은 이렇게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재편한다. 단순히 ‘향이 첨가됐다’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뇌가 향에 맞춰 새로운 진짜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맛있다고 믿는 것은 진짜 경험일까, 아니면 산업이 설계한 경험일까?
바나나가 그리운 날에는, 바나나 맛 우유가 아니라 진짜 바나나를 베어 먹는 것이 더 솔직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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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Luci's Lab의 <食解, 가공식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시리즈의 일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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