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햄은 왜 늘 분홍빛일까 & 화이트 쇼크

발색제 _아질산나트륨

by 조은희

1부 What’s Added 감각을 조작하는 첨가물의 세계

1장. 눈을 속이다 _색이 만든 착시

(4) 발색제: 햄은 왜 늘 분홍빛일까


햄의 분홍색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생고기를 삶으면 회갈색이 된다. 구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기로 만들었다는 햄은 지글지글 구워도, 부대찌개에 넣어 한참 끓여도, 여전히 분홍빛이다. 도대체 이 고운 색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화학적 착시다. 이 색은 고기 본연의 자연색이 아니라 [발색제]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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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의 정체, 발색제

발색제는 식품의 색을 안정화·유지·강화하는 첨가물이다. 착색료가 ‘색을 새로 입히는’ 기능이라면, 발색제는 ‘본래 색을 지킨다’.


대표 발색제 [아질산나트륨]은 고기 속 미오글로빈과 반응해 붉은색을 고정시킨다. 덕분에 가열 후에도 햄이나 소시지는 익숙한 분홍빛을 유지한다.


더욱이 이 물질은 살균 기능도 있어, 보툴리누스균 등 유해세균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색과 위생을 동시에 관리하는 도구로 육가공 산업에서 널리 쓰인다.


안정과 살균 뒤에 감춰진 그림자

하지만 문제도 있다. 아질산염이 식품 내 아민류와 반응해 니트로사민이라는 발암 가능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WHO 산하 IARC는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25년 뉴욕의 90년 전통 육가공업체 스미스 패킹(Smith Packing)사는 아질산나트륨 허용치 초과로 리콜을 겪으며 소비자 불안을 증폭시켰다. 햄의 색이 단순한 시각 문제가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색은 흐릿하지만 안심되는 선택

다행히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엄격히 규제된다. ‘무첨가, 무아질산, 천연 발색’을 내세운 제품도 늘고 있다. 색은 다소 흐릿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안심할 수 있는 색을 점차 선택하고 있다. 즉, ‘예쁜 색’보다 ‘믿을 수 있는 색’이 새로운 트렌드가 된 셈이다.


‘화이트 쇼크’ _케이크 위의 경고

달콤한 케이크 위 하얀 아이싱. 한때는 축제의 색이었지만, 식품 전문가들에게는 오래된 걱정거리였다. 그 속의 정체는 발색제, [이산화티타늄]. 한때 ‘화이트 스타’로 불리며 케이크, 껌, 사탕, 도넛, 드레싱, 건강기능식품 등 수많은 제품에 순백색을 더해왔다. 무미, 무취, 안정성, 저가라는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2022년 EU가 이 물질의 전격 금지 결정을 내린다. 이유는 단 하나, ‘나노 크기의 입자가 DNA를 손상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었다. 이는 호르몬 교란, 혈당 조절 실패, 내분비계 이상과 같은 만성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졌다.


이 발표는 전 세계 식품업계에 도미노 충격을 안겼다. 유럽 전역의 흰색 식품의 레시피, 설비, 유통까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이 사건은 곧 ‘화이트 쇼크(White Shock)’로 불렸다.


미국 빅푸드 Mar는 그들의 제품, ‘스키틀즈’에서 이 성분을 자진 제거하기로 했고, 한국 역시 2025년부터 어린이 식품에 단계적 금지를 예고했다.


화이트 쇼크는 단일 색소가 산업 전반 -제품 개발, 글로벌 규제, 소비자 인식까지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무해하다는 증거가 없으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21세기형 식품 안전 철학의 상징이다.


햄의 분홍빛, 케이크의 순백. 이 두 사례는 색이 단순히 보기 좋은 장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색은 과학, 산업, 규제, 소비자의 건강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결국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더 진한 분홍이나 더 순백의 흰색이 아니라, 더 투명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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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Luci's Lab의 <食解, 가공식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시리즈의 일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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