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자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매 순간까진 아니더라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권력자의 비리를 고발하는 특종을 썼다가 검찰에 불려 간 선배가 말했습니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자기가 쓴 기사를 들고 와 한 줄 한 줄 밑줄을 치며 으름장을 놓더랍니다.
“∼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거 어디서 전해 들은 거죠?”
“∼으로 알려졌다고요? 어떻게 알려졌다는 거죠?”
“∼인 것으로 확인됐다라.. 확인해 준 사람이 누군데요?”
기사를 문장 단위로 쪼개 기자를 몰아붙이는 것이죠.선배는 다행히 풀려났지만거기서 삐끗했으면 교도소 쪽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아찔하죠.
그래서 기자들은 '위험한' 기사를 쓸 때 몹시 신중해집니다.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누군가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 뻔해 보이는, 보도 당사자가 적극 부인할 성범죄나 권력형 비리 등을 다룰 때 기자는 철저한 계산과 의도를 갖고 단어를 고릅니다. 거칠게 말해 언제 수사기관에 붙들려 갈지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럴 일이야 잘 없지만 동시에 언제나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감은 기자들 머릿속 한편에 늘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자가 하는 일이 ‘확인’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충실한 확인(취재) 과정을 거쳤다면 이런 불상사를 어렵지 않게 피해갈 수 있기(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보다 기자가 그렇게 믿고 보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기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여부입니다. 설령 ‘팩트’가 틀렸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 기자들이 ‘확인’이란 단어를 쓰는 것에는 꽤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기자 한 명이 모든 사건사고의 배경과 이유, 흐름을 빠짐없이 파악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시간이 넉넉하고, 해당 사안에 대해 잘 아는 양질의 취재원이 있다면야 가능하겠지만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경우는 현실에서 잘 없습니다. 기자들은 자기 회사나 타사의 믿을 만한 기자들의 선행 보도로 뼈대를 세운 뒤 새로운 팩트를 찾는 식으로 취재를 하곤 합니다. 일단은 앞서 보도된 내용들이 맞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죠.(물론 핵심적인 팩트는 반드시 확인 과정을 거칩니다)
다만, 이렇게 알게 된 사실들은 ‘∼로 알려졌다’ 혹은 ‘∼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씁니다. 기자 본인이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알려졌다’는 통상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진 사실이란 뜻이고, ‘전해졌다’는 어떤 취재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이란 뜻입니다.
‘알려졌다’는 앞에 (세간에), (해당 업계에), (언론계에)를, ‘전해졌다’는 (어떤 취재원으로부터), (앞선 언론 보도를 통해)가 생략돼 있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습니다. 실무적으론 거의 같은 맥락에서 쓰이며, 때때로 제보자, 그러니까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일부러 이런 식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확인됐다’는 다릅니다.
기자가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며 이를 보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늬앙스입니다. ‘충분한 취재를 통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기자가 직접 눈으로 봤다.’
조금 더 과장하면 이런 늬앙스마저 읽힌달까요?
(세간에 풍문으로만 떠돌던 것인데 내가 취재한 결과)확인됐다.
(다른 기자들은 취재할 엄두도 못 내던 것을 우리 취재로)확인됐다.
(언제든지 취재 내용을 소명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확인됐다.
즉, 대단히 자존심 강한 표현인셈이죠.
신문에 실리는 기사는, 헤드라인에 [단독]이 붙어 있는 인터넷 기사와 달리 단독보도임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아침 신문을 볼 때 자연스레 문장 뒤쪽으로 눈이 갑니다. ‘확인됐다’로 단독보도임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죠. 기자들끼리만 아는 일종의 ‘암호’인 셈입니다.
기자들이 뉴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기사일 경우에는 문장에 매체명이나 취재팀 이름까지 들어갑니다. 이를 테면 ‘∼라는 사실이 OO일보 취재결과 확인됐다.’ ‘OO신문 취재결과, ∼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식입니다.
<한겨레> 2018년 3월28일자 1면
<동아일보> 2019년 12월3일자 1면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새로 발굴된 팩트인지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바로 뒤에 ‘∼이란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말을 한 줄 더 써넣는 것이죠. 아예 기사 제목을 ‘∼로 확인’으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단독보도란 사실을 온 힘을 다해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문화일보> 2019년 9월4일자 2면
단독보도인데도 술어를 ‘∼드러났다’나 ‘∼밝혀졌다’ 등으로 쓰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웬만해선 ‘확인됐다’고 쓰기를 선호합니다. 일종의 버릇, 습관같은 것입니다. 자기 취재에 확신이 있다면 굳이 안 쓸 이유가 없습니다. 신문 1면 기사처럼 기자가 심혈을 기울이는 기사일수록 유독 ‘확인됐다’가 많이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때때로 ‘확인됐다’는 다른 기자들을 향해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봐 봐라, 내가 이거 확인했다”고 외치는 것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사실 기자가 생각하는 독자는 평범한 시민뿐 아니라 같은 출입처에서 비슷한 취재활동을 벌이는 기자, 혹은 자기 회사 선후배가 꽤 큰, 어쩌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출입처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나 그다지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기사에는 ‘확인됐다’란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출입하는 기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굳이 힘줘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예외도 물론 있습니다. 가령 주한미군 주둔 지역 인근 하수도 오염 사실이 정부 조사로 밝혀진 경우나, 경찰 수사로 피의자의 범죄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 등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는 늬앙스를 살려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대개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나 연구기관이 취재원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자가 해당 팩트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져야 ‘확인됐다’고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일까요. 아마 기자들이 실체적 진실의 파악보다 객관적 사실을 찾아내 독자들에게 전달하도록 오랜 기간 훈련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실을 확신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있습니다. ‘확인됐다’처럼 단정적인 표현에는 항상 오보의 위험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기자들은 자기 취재에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가급적 이런 표현을 피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기자들이 느끼는 ‘확인됐다’의무게감은바깥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큽니다.
*<기자가 기사를 읽는 법>은 뉴스를 자주 보는 대학생, 혹은 언론계에 막 발을 디딘 수습기자들이 기사를 좀 더 풍부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