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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May 19. 2020

(2)..라고 jtbc가 보도했다고?

받아쓰는 방식에 뉴스 가치가 숨어있다

기자들은 왜 기사를 쓸까요. 국가공동체의 공공선?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이념 전쟁과 헤게모니 탈환? 기자 개인의 명성이나 회사 내 입지 확보, 혹은 밥벌이 수단이라 답하는 기자도 있을 것입니다. 기사 쓰기의 내적 동기는 무척 다양하죠. 그러나 ‘기사를 쓰고 언제 가장 희열(보람이 아닙니다)을 느끼느냐’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기자들이 내 기사를 고스란히 받아썼을 때. 기자가 아니라면 선뜻 와닿지 않을 수 있으나 기자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입니다.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일까요? 이 역시 답이 모두 다르겠지만 통상 ‘단독’이 첫손에 꼽힙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특종’을 말하는 것이죠. 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우나 경험적으로 단독기사는 ‘나 혼자 확인했다’에 방점이 찍혀있는 반면, 특종기사는 ‘나 혼자 확인한 것인데 다른 기자들이 왕창 받아쓰는(받는) 기사’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단독의 범주 안에 특종이 있는 것으로, 단독이라고 다 같은 단독이 아닌 셈이죠.


그래서 기자들은 아무도 받지 않는 단독기사, 그러니까 뉴스 가치가 딱히 없어보이는데 혼자 확인했답시고 [단독]을 붙여 온라인에 내보낸 기사를 우스갯소리로 ‘고독’ 혹은 ‘독단’이라 부르며 비아냥대곤 합니다.




‘단독’이란 단어에는 쾌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단독에 집착하지 않는 기자는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단독 싫어하는 기자는 찾기 힘듭니다. 단독이 취재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자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취재의 동력, 기자 개인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질료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따지고 보면 단독 하나 더 쓴다고 월급 한 푼 더 받는 것도 아니고(회사에 따라 보너스가 있기는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네가 이 기사를 썼구나. 어쩜 이렇게 대단하니’ 하고 알아주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단독은 기자들을 고무시키는 영험한 힘이 있습니다.


<jtbc> 2016년 10월24일 뉴스룸


그 중에서도 특종은 이런 것입니다. 타사 기자들이 ‘속절 없이’ 내가 쓴 기사를 받아쓰게 만드는 기사. 기자 생활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이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기자는 대단히 드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였습니다. jtbc는 2016년 10월24일 저녁뉴스에서 이 보도를 내보냈고, 그 이튿날 거의 모든 조간신문이 1면에 해당 내용을 아래와 같이 실었습니다.


<동아일보> 2016년 10월25일자 1면
<서울신문> 2016년 10월25일자 1면
<한국일보> 2016년 10월25일자 1면

기사의 출처, 즉 취재원이 ‘jtbc’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기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보도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진 못했으나 뉴스 가치가 너무나 커 보이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취재원을 해당 매체로 밝히고 보도해야겠다”며 두손 두발 다 든 것이나 다름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1면에 실었다는 것은, 자존심과 체면을 생명처럼 여기는 신문기자 입장에선 대단히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죠.(전통적으로 신문기자들은 방송기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


기자들이 남이 쓴 단독을 잘 받지 않으려는 데에는 은연 중 ‘남 좋은 일 해줄 필요 없다’는 인식도 작용하는 듯 합니다. 여러 언론이 달라붙어 해당 이 눈덩이처럼 커졌을 때 결과적으로 모든 공이 최초 보도한 매체로 돌아가는 일이 매우 흔하기 때문이죠.(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한겨레처럼 충실한 후속보도로 언론계 안팎에서 크게 인정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쓰지 말자”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기사도 아닌데 굳이 키워줄 필요 있느냐”는 시각이 슬그머니 담긴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매체들은 받아쓰기를 할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추가 취재를 한 뒤 자기네 방식으로 다시 쓰거나 기사의 부피를 크게 줄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경우엔 ‘확인됐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jtbc 보도처럼 다른 매체들이, 일제히, 매체의 이름을 정확히 넣어, 1면에, 언론계 표현으로 “시원하게 받는 일은 보기 드뭅니다. 사실 여기에는 이런 늬앙스도 숨어있습니다. ‘jtbc가 보도한 것을 우리는 받아서 쓴 것일 뿐, 추후 사실관계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그쪽 매체에 있다.’ 은연 중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자체 기자들한테는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물론 아무 보도나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받진 않습니다.


<동아일보> 2016년 7월23일자 10면
<서울신문> 2016년 7월23일자 6면

일부 매체는 교묘하게 ‘한 언론에 따르면~’,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방식으로 취재원을 뭉뚱그리기도 합니다. 일반 독자들이야 그런가보다 넘어갈지 몰라도, 기자들이 봤을 땐 그리 탐탁한 모습은 아닙니다. 속이 좁아보인달까요. “기사는 받아쓰지만 체면은 세우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탐사보도로 유명한 어느 기자는 “우리 언론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출처 밝히기”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이나 염치없이 기사를 도둑질하는 매체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왜인지 몰라도 우리 언론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매체를 언급하는 일을 극도로 꺼립니다. 오랜 전통, 일종의 불문율이랄까요? 이는 거꾸로 A 매체가 쓴 기사에 B 매체가 언급돼 있다면, 해당 기사 스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무심코 지나쳐도 될, 그저 그런 기사가 아란 거죠.




하지만 최근에는 정식기자 교육을 받지 못한 알바생이나 인턴기자들이 ‘이슈 대응’이란 이름 아래 타사 단독보도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런 어뷰징 기사들은 앞선 사례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뉴스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온라인에서 클릭 수가 많이 나오겠느냐에 따라 받아쓰기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회사는 가르칩니다. 사안이 민감해 보일 수록 반드시 해당 매체 이름을 구체적으로 넣어라. 물론 도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겠죠? 기사는 기사대로 가져가되, 혹시 모를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심산 것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어뷰징 기사들이 하나둘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면 레거시 미디어들도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뉴스 시장 이슈가 이슈를, 받아쓰기가 받아쓰기를 만드는 딜레마 빠져 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읽는 법>은 뉴스를 자주 보는 대학생, 혹은 언론계에 막 발을 디딘 수습기자들이 기사를 좀더 풍부하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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