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기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알게 된 두 가지가 있다. 보도되지 않을 뿐 사건사고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은 그다지 정의롭지도, 그다지 밝지도 않다는 것. 기자들 손에 어떤 '조명' 하나씩 쥐어져 있는 건 그래서다. 어둠을 더듬어 사건을 찾아내고, 거기에 빛을 갖다대는 게 기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특권이자 굴레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는데, 기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진실은 어둠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말 그대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참언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탐사보도팀쯤 될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영화는 2003년 카톨릭 신부의 아동성추행 파문 연속보도로 그 해 퓰리처상을 받은 <보스톤글로브>에 영화적 풍미를 더해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영화 속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망설임 없이 조명을 갖다 댔고, 그 속엔 타성과 무관심, 방관과 외면이 숨겨져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를 사건들이다.
이 영화와 관련해 눈길을 끈 것은 평론가 그리고 기자들의 떠들석한 반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남 칭찬하는 것에 가장 인색한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이 영화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씨네21>의 송경원 기자는 ‘탐사 저널리즘의 전략전술 교본’이라 평했고, 같은 매체 이화정 기자는 ‘언론의 역할, 언론 기능에 대한 집요한 관찰’이라 말했다. <매거진M>의 이은선 기자는 "진실에 대한 끝없는 탐구는 여전히 이토록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칭찬 일색이다. 이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인 수십개의 영화 중 유일하게 전문가 평점이 8점대로, 가장 높다. 오늘 영화를 함께 본 기자 동기들 역시 감명 받은 눈치였다.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이러니 저러니 좋은 평가를 쏟아냈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나지만, 이 영화가 기자를 상대로 ‘취향저격’ 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환호는 사뭇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현실에서 상실한 무엇인가를 보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을 주물러 만들어지지만, 스크린엔 언제나 현실엔 없는 일로 가득하다. 영화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그러하리라 생각되는 이미지와 인간의 욕망이 교묘하게 투사될 뿐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저널리즘’의 묵직함, 진정성 역시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일종의 판타지, 그야말로 '영화' 같은 얘기다. 아마 그것은 매일을 기삿거리에 허덕이는 '하루살이' 기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기자들의 호들갑은 영화가 주는 대리만족이 일반인보다 그들에게 더 크게 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 째 버릴 순 없잖나." 영화 속에서 피트 콘리(폴 가일 포일)가 <스포트라이트>의 팀장 윌터(마이클 키튼)에게 하는 말이다. 고개를 젓고 싶지만, 이내 끄덕여진다. '생존'이 언론사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 합리화가 일상이 돼버린 오늘을 잘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경쟁의 질서가 깊숙이 침투한 토양에서 정직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새 박수 받는 일이 돼버렸다.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팀이 진득하고 차분하게 사건에 접근하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아할 정도로 높은 이 영화의 평점은 기자들의 '자기반성문' 아닐까. 제 발 저린 기자들에게 영화는 "너도 이렇게 살아야하지 않니?"라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느껴졌는데, 기자들 저마다 자신의 경험, 저마다의 현실을 이 영화에 투사했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에서의 상실의 깊이 만큼 울림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실제 현실에도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진실에 목말라하는, 어둠을 밝히는 기자들이 있을까. 일단은 믿어본다. 영화 같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20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