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부르디외니 그람시니 하는 사회과학 서적만 읽던 나에게 '김훈'이란 이름은 별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기자 출신이라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아니, 그때는 외려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 만난 어떤 이가 떠올랐다. “김훈을 좋아해 김훈 스타일로 글을 쓴다”는 그의 글은 어쩐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글솜씨는 퍽 좋아 보였으나 왠지 알맹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올해 문화부로 발령이 나고 잠깐이지만 문학 담당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니, 솔직히 놀랐다. ‘와,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거였나?’ 생전 하지 않던 문장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찰나, 우연히 본 그의 글은 대단한 미문(美文)이었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낯설지만 우아한 단어 선택이, 사물에 대한 날카롭고 단단한 통찰이, 이를 뒷받침하는 표현력이 말 그대로 기가 막혔다. ‘나’를 많이 드러내지만 자꾸 보니 그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고 자기 색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문장가구나, 딱 그 정도였다.
김훈
얼마 전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김훈이 쓴 기고글에 대한 어느 기자의 칼럼을 보고 나서였다. 그 기자는 김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약육강식의 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도덕 따위 운운하지 말라고 말하던 그가 이제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정 앞에서 소리 내 운다”고 썼다. 김훈은 지난해 어느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글을 썼다. 그 기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산재사망자 1200명의 이름을 ‘김○○(53·떨어짐)’식으로 펼쳐 놓은 것이었다. 김훈은 이를 두고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고, “퍽, 퍽, 퍽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보도 당일 기자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던 그 지면은 물론 나도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느낀 건 슬픔이 아니었다. 씁쓸함이나 안타까움도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가장 먼저 워싱턴포스트가 떠올랐다. 지난해 8월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참사 희생자 1196명의 이름만으로 지면을 만들었다. 지난해 탐사보도팀에 있을 때 이를 우연히 보고 ‘언제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 기사가 나온 것이다. 솔직히 말해 기사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한발 늦었구나, 딱 그정도였다. 그랬던 그 지면이 이제 다르게 보인다. ‘퍽, 퍽, 퍽’ ‘쿵, 쿵, 쿵’ 놀라운 경험이었다. 칼럼과 기고글을 보고 다시 본 그 지면에선 정말 거짓말처럼 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마따나 그것은 “식인 사회의 킬링필드”였다. 부끄러운 감정이 확 밀려왔다. 나는 이 잔혹하고, 비참하고, 서글픈 활자 뭉치에서 소리는커녕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겠지만 그 뒤로 종종 어떤 활자들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 마음 먹었던 꽃집에 붙은 ‘임대문의’ 종이에서, 검정색 네임펜으로 3을 지우고 2를 덧쓴 동네 헬스클럽 ‘월 2만원’ 전단지에서, 늘 출근길에 보던 ‘제 아이를 찾습니다’ 포스터에서.. 때로는 ‘헉헉’, 때로는 ‘흑흑’, 때로는 ‘엉엉’ 소리가 들린다. 꽤 늦었지만 이 지면을 빌려 김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