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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Oct 28. 2019

모유냐 분유냐

모유도 분유도 제가 먹이는 것입니다만


아기가 나오기 전에 분만 예정 병원에서 여러 가지를 서약(?) 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모유나, 분유나, 섞어 먹일 것이냐 3가지 옵션이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섞어 먹이겠다고 답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이것이 중요한 질문이었다.




일단 나는 모유 수유에 대한 의무감이 아예 없었다.

잘 나오면 먹이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한 번은 같은 팀 남자 부장님이 휴직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근데 애는 꼭 모유로만 키워. 우리 애들이 다 모유로 자라서 아픈 데가 없어."라고

진심 어린 코칭(?)을 해주셨다. 민감한 사람이라면 짜증이 났겠지만

 나는 그 말조차 별로 스트레스가 아닐 정도로 별생각이 없었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하면 2-3일은 너무 아파서 꼼짝할 수 없는데

그 와중에 병원에서 "슈유 콜"이 온다. 말 그대로 아기에게 "수유"를 하라는 "콜"이다.

그러면 "갈게요~"라고 하거나 "그냥 분유 주세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데

나 같은 무지한 엄마도 초유가 좋다는 말은 들은지라 거의 항상 "갈게요~"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아기는 아직 젖을 잘 빨지 못한다.

또 내가 출산 전 질문지에 섞여 먹인다고 체크한지라

이미 신생아실에서 분유병을 접해 버렸다.

아기가 울면 신생아실에서 분유를 냉큼 주는 터라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잘 빨리지 않는 엄마 젖이 짜증 나고 힘들 뿐이다.

게다가 24시간 중 거의 모든 시간을 주무셔야 하는 초짜 인생이시라서 

젖을 1분 빨다가도 그냥 잠이 들어버린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진짜 모유만으로 키우고 싶다면 병원에도 분유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태어나자마자부터 모유를 빠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엄마 젖 말고는 먹을 것이 없으면 아마 아기도 죽기 살기로 빨지 않을까.


아무튼 그래도 초유가 그렇게 좋다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으니

나도 초유만큼은 먹이리라 열심히 수유 콜마다 예스를 외쳤다.


출산의 아픔은 유명하지만 수유의 아픔은 상태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젖이 도는데 아이가 잘 빨지 못하니 돌처럼 굳어지는 가슴도 여간 아픈 것이 아니다.

가슴 마사지를 통곡 마사지라고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어떤 산모는 아예 몸살처럼 앓기도 한다.



여러 가지로 노력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한 달 정도에서 모유수유를 끝냈다.

일단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먹여서 인지 아기는 분유병을 수월하게 생각해 젖을 열심히 빨지 않았고,

산후조리사분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으셨던지라 여러 가지로 쿵작이 맞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모유는 안녕하고 분유로 정착했다.

게다가 나는 잠을 못 자면 다른 인성을 가진 인간이 표출되는 지라 

밤에 잠을 못 자고 수유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주변에 보면 모유가 안 나와서 잘 못 먹였다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들도 많고

15개월 넘게까지 모유로만 키웠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들도 많다.

또 모유로 키워야 엄마와 애착이 잘 형성된다고도 한다.


*다행히 우리 아기는 잘 아프지도 않고 분유-이유식-유아식까지 모두 잘 먹고 

나와의 애착은 과하게 생성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자랑할 일도 죄책감을 느낄 일 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분유보다는 모유가 좋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받은 소에서 짜낸 우유도 몸에 좋지 않다는데

스트레스받은 엄마 젖은 좋기만 할까?


엄마가 너무 스트레스받는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냥 분유로 키운다 해도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항상 베스트 옵션만으로 육아를 꾸려갈 수는 없다.


아기에게 제일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엄마이다.

그런 엄마가 분유를 택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거기에 모유가 좋다는 둥 노력을 하라는 둥 오지랖을 펼쳐 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 젖은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말씀드리겠다.


우리 아기는 내가 잘 웃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저도 칭얼대지 않고 잘 논다.

분명 엄마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한 것이 아기도 나도 행복해지는 방법 이리라.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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