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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Sep 19. 2019

난 모성애가 없는 엄마일까

아기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좋아요


"우리 슈우야~우리 꿀 애기!!"

슈우는 잠이 오면 눈을 비비다가 나에게 매달려

내 입술과 볼을 쪽쪽 빤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방긋거리면서 벌어진 앞니를 어벙하게 드러내고 웃으면서

내 목을 감싸 안고 작은 손으로

남편과 내 볼을 번갈아 만져주면서

제 이마를 내 이마에 가만히 가져다 대고

"이이이 잇~"하고 웃는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이 잠시 시간이 멈춘다.


어른들이 말하는 내 자식 예쁘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마치 뇌에서 꿀이 나오는 듯

머리와 마음이 한없이 달콤하다.




하지만 아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예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내 아이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출산 직후에 몸은, 당시에는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구나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칫솔질 할 때 느껴지는

손가락 마디의 아픔.

머리를 감는 작은 움직임에서조차 아프던 손목.

생수병 뚜껑을 돌려 딸 때 느껴지는 뼈 통증.

물주전자를 들어 올릴 때의 버거움(?).

조금만 걸어도 아픈 발목.

출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뼈가 헐거워지는 거라고 들었지만

정말 몸이 나사를 덜 조인 나무인형처럼 덜컹덜컹거렸다.  

신경에 조금만 거슬려도 짜증이 났다.


특히 출산 때까지는 스트레스받지 말자는 생각으로 미루고 미뤄두었던 걱정.

바로 일터로의 복귀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그냥 밀려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나를 대체할 사람이 숱하게 많다.

어서 빨리 일터로 복귀해서 내가 아기를 낳았지만 내 실력은 녹슬지 않았음을,

그리고 아기와 관계없이 이전처럼

밤새 준비해서 일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연습해야 한다.

연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기와 씨름하고 있자니

 매일 퇴보하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만 했다.



출산한 지 50일도 안되었던 어느 날 밤.

아기가 새벽에 깨서 울었다.

졸리고 아픈 몸으로 아기를 안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밤은 항상 걱정을 몰고 온다.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이대로 주저앉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아기 뒤통수를 만진다. 작고 작은 뒤통수.


갑자기

나는 이 아이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 하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었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내해 내겠다. 불구덩이에도 뛰어들겠다.

그런 생각이 망설임 없이 바로 들지 않..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모성애가 없나 보다. 있어도 우리 부모님 세대 같은 그런 희생정신은 없나 보다.

어째서....?


나는 고양이를 키웠는데 정말 지독하게도 요 녀석과 사랑에 빠졌었다.

생각만 해도 달콤한,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어서 빨리 집으로 가자고 걸음을 재촉하고

무엇이든 해 주고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내 고양이였다.


그런 내가 왜 정작 내 아이와 사랑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 거지?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는, 아이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고양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기를 보고 있자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면

뱃속 깊은 곳에서 부담감이 밀려왔다.

너를 키우면서 내가, 나도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먼데.

이제 네가 있으니 나는 좋은 집과 안전한 교육기관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네가 더 크기 전에.

이 모든 것은 부담감이었고,

아이는...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남보다 독하게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그것만이 나의 경쟁력이 었는데

이제 나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내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부담감은 나의 모성애가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마음 놓고 아이를 예뻐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은 조급했고, 답답했고, 막막했다. 그리고... 슬펐다.


친정으로 향해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근데 생각보다 애가 안 예뻐~"

엄마는 "네가 일하는데 아기가 방해된다고 생각하니 그렇다."면서

"차라리 빨리 일을 시작해"라고 하셨다.


잔디밭이 싫은 복에 겨운 도시 아기

그러나 자연은 참으로 신비해서 내가 그렇게 힘들게 보내는 시간에도 슈우는 자라나서

나를 알아보고 내 표정에 웃고 깔깔대며

교감을 시작했다.


나도 남편에게도 없는 사랑스러운 웃음을

장착하고 나왔다(고마워).

코 찡긋 + 반달눈이 되어 웃는 슈우는

다행히도 웃음이 많은 녀석이었다.


슈우의 웃음소리가 나를 찾는 울음이 녀석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했다.

이리저리 간신히 만든 이유식을 받아 먹고 오물거리는 입술이

뒤집었다고 신나서 자지러지게 웃는 얼굴이

녀석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느 날 밤에 자는 아이를 안고

"슈우야. 엄마가 꼭 헌헌장부로 키워 줄게."라고 약속을 했다.

(참 옛스러운 단어 선택(?)이었지만

그때는 꼭 그런 이미지(?)로 아들을 키워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쩌면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꼭 내가 낳아서만이 아니라.

거기에 더하여 슈우와 함께 지낸 시간이

슈우가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나라는 사람도 엄마라고 졸리면 찾고 깨면 웃어주는 것이

열이나고 아플 때 마음 졸이며 남편과 함께

지새운 밤들이

그게 내가 아이를 정말로 내 새끼로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너무 힘든 날,

남편과 육아 문제로 다툰 날,

나만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아이가 나에게 치대어 오는 것이 버거웠고 아기를 아기로 대할 수가 없었다.

"너 왜 그래~! 엄마 힘든데~!!" 라고.

요 작은 아기가 뭘 안다고.

내 목소리에는 짜증과 원망이 묻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너만 새싹이 아니야. 엄마도 자라나야할 새싹엄마다.

좋은 엄마란 타고나는 것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은 안그런가.

좋은 선생님도, 좋은 사장님도, 좋은 대통령도

그 모두가 훈련과 전문가의 조언과 경험자의 격려와 이런 것들이 없이 불가능하지 않나.


남편과 양가부모님과

돌봄 이모님과

어린이집 선생님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

친구들 동료들

이 모든 이들이 함께 해 줄 때 나는

간신히 좋은 엄마의 가장 낮은 레벨정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모두

나 혼자 노력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모성애가 있으니까,

엄마는 위대하니까 라고

생각해오지는 않았나 싶다.


말 그대로 신화와 같은, 눈물겨운 노력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홀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수많은 그 위인전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나처럼 힘든 것은 꼭 티 내고

가족과 친구에게 기대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극복하는 미천한 천성의 소유자는

감히 따라 할 수 도 없고

 따라 하려고 하지도 말자.


(그렇지만 이제 고작 1년정도 지났지만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이 작은 아이가 처음 옹알이를 하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신기해하고 만지고

뒤집고 기고 걷고 탐구하고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그 과정을 돌보고 지켜보는 것은...

이것은 엄마의 의무가 아니라

지켜야 할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신기하고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전 세계 모든 엄마들이 걱정없이 적어도 1년의 시간을 아이와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면

장담컨데 이 아이들이 컸을 때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도 폭력을 쓰는 사람도 분노하는 사람도 더 적은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다.)



나는 평범지만

아이를 많이 사랑하는 엄마가 되련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나에게도 또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슈우야. 결국에는 우리는 가족이니 네가 어느 정도 크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네가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네 중심으로 해주고 싶겠지만

너에게 책임을 주고 양보를 하라고 할 거야.

내가 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너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렴.


네가 자라서 떠나가면

엄마랑 아빠는 빈 둥지가 되겠지만

둘이 손 꼭 잡고 행복한 빈 둥지가 될 거란다. (계속)






철없이 간지(?) 나게 살아온 인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육. 알. 못. 엄마의 솔직한 육아 분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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