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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30. 2017

영화해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진보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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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QFj59PON4

영화사 가장 임팩트 있는 오프닝. 저 유명한 배경음악은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서론
 과연 ‘진화’는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가?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 문명 진보의 속도가 한 차원을 달리 하게 된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하루하루 인류의 삶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시켰다. 인류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수준의 도약을 했던 100년간인 20세기는 기술문명의 발전을 통한 진보와 파괴가 동시에 진행된 시대다. 진보한 과학은 인류사 유래가 없을 정도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통치 질서 역시 무너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부와 평등, 문화를 선물했다. 그러나 동시에 두 번에 걸친 끔찍한 세계대전, 경제공황 등 기존에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전 지구적 문제에 봉착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20세기는 전반적으로는 현재의 낭만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동시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도리어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도달케 할 것이라는 상상 역시 조심스레 공존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 20세기가 상상한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큰 틀에서 ‘인류의 진화’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에 대한 답을 명확히 주지는 않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진화로 말미암은 인류 미래의 결말은 어디에 도달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내며 시대의 고전으로 남게 되었다.

2.해석(1)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진화’와 그것이 도달하게 될 결말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주제로 한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2가지는 400만년 된 검은 돌 ‘모노리스’와, 배경 음악으로 쓰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일 것이다.

영화 주요 분기마다 등장하는 검은 비석 '모노리스'

‘모노리스’는 인류에게 깨달음을 줘 한 차원 도약해 진화하게 하는 초월적 존재다. 무력하게 표범에게 사냥당하고, 깊은 밤에는 바위 아래서 잠도 못자고 숨죽이고 숨어있어야 했던 인류는 ‘모노리스’를 만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게 된다. 이제 인류는 뼈를 사용해 사냥을 할 수 있고 밤에도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로 달에서 등장한 모노리스는 인류에게 ‘목성 너머 또 다른 생명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세 번째로 등장했을 때는 보우먼을 목성 너머 ‘미지의 저편’으로 보내준다. 마지막으로는 침상에서 늙어 죽어가는 보우먼의 앞에 등장해 그를 태아로 만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오프닝을 제외하고 총 2번 쓰인다. 유인원이 처음 뼈를 ‘도구’로서 인지하고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 보우먼이 모노리스 앞에서 태아로 변했을 때다.

모노리스가 보낸 '미지의 세계'에서 보우먼은 노인이 되고, 죽은 뒤 태아로 환생한다

슈트라우스는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배경에 대해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서 발전해가는 모양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결국 ‘모노리스’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모두 인류 진화의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태아로 변한 보우먼은 현 인류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인류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3.해석(2)
 보우먼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해 새로운 차원의 인류로 진화할 때 까지, 그는 발달한 인간 문명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모두 체험한다. 행성을 넘나드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며 화상전화, 슈퍼컴퓨터 등 최신 과학 문명의 이기를 모두 누린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슈퍼컴퓨터 HAL-9000에 의한 살해 위협, 즉 인공지능의 반란이라는 최악의 디스토피아를 경험한 최초의 인간이 된다.

역사적인 악역 HAL-9000. 이후 모든 인공지능 디스토피아 영화 악역의 모티브가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하며 살려 달라 애원하는 HAL-9000을 묵묵히 '살해'한 보우먼은 그제서야 작전의 진짜 목표(달에서 발견된 모노리스가 목성으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이유, 즉 고등 생명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를 알게 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목성에 도달한 보우먼을 모노리스가 '미지의 저편'으로 보내준다. 인류 문명의 이기, 그에 따른 부작용을 모두 체험하고 홀로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 보우먼은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음으로써 기존 인류로서의 탈을 벗고 새로운 단계의 인류로 재탄생 하게 된다.


4.진보와 폭력

 기술이란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가 전에 없이 풍족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기술은 ‘폭력’과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다. 대체로 자연을 향해왔던 기술의 폭력은 결국 인간을 향해 돌아오기 마련이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가 태동하던 때, 짐승의 뼈를 도구로 인식하게 된 유인원들은 그 뼈를 이용해 사냥을 하고 몸을 지킨다. 그러나 동시에 뼈는 같은 유인원을 때려죽이는 것에도 사용된다. 상대를 때려눕히고 포효하며 내던진 뼈가 인공위성으로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인공위성은 현대 인류에게 문명의 이기를 제공하는 첨단 기술의 보고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시’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매개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 개척을 위해 개발한 ‘오류 없는 컴퓨터’ HAL-9000은 그 첨단 기술을 이용해 도리어 자신의 창조주들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기술의 발전과 그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돌아오는 폭력은 선사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불문하고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이렇듯 폭력은 진보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단계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정상의 폭력을 감수하고서라도 진보할 가치가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류는 과연 과학 기술 및 사회적 진보를 통해 정말 ’더 나은 삶‘에 도달했느냐는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터다. 혹자는 ’국민행복지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된 방글라데시 등의 예를 들며 오히려 과거에 머무른 삶이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글쓴이 본인은 인류가 분명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상의 폭력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소수 지배 세력만이 그 모든 혜택을 누렸던 것에 비해 현대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폭력과 희생을 통해 현대의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의 가짓수도 더욱 많아진 것이다. 발전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곧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과 같다. 무지는 약이 아니다. 인류는 분명히 올바르게 진보하고 있다.


5.더 나은 미래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정반합으로 변증된다고 했다. 역사에는 긍정(정)이 있으면 부정(반)도 있으며, 이 둘의 합을 통해 더욱 확실한 사실을 찾아가는 것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유인원의 뼈와 우주선의 HAL-9000처럼 때로는 인류 발전을 위해 잘 다듬은 기술들이 도리어 인류를 향해 그 칼끝을 들이밀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화로 인한 폭력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탐험과 진화는 인류의 본능이며, 이 본능을 따라 온 지금은 분명 과거에 비해 더 나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저편’을 향해 인류는 끝없이 항해해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배우 마이클 케인은 토마스 딜런의 시 <그 어둠에 순응하지 마시오>의 한 시구를 읊는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


 밤이 두려워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폭력으로 돌아올 위협이 존재할지라도, 늘 그랬듯이 인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 진화할 것이다.







p.s)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 <스마트롱's 문화읽기>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http://blog.naver.com/rnjs1016k/220824159154








-영화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

1.이 위대한 영화의 개봉연도는 1968년이다. 이는 인간이 달에 도달하기 1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감상해도 옛날 영화 특유의 촌스러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2.영화가 촬영되던 당시에는 지구의 전체 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이 없었다. 때문에 영화에서 묘사되는 지구는 실제 모습과 흡사하지만 뭔가 색상이 약간 다르다.

3.당연하게도 우주정거장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큐브릭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NASA 및 대학 교수들의 자문을 구했고, 모든 상상을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 구현해냈다. 이런 제작 과정의 정교함은 SF영화 사상 처음 있었던 일로, 이 영화로 인해 그간 저급 영화로나 여겨지던 SF영화의 위상이 완전히 뒤집히게 됐다.

4.믿기지 않겠지만 이 영화에는 단 하나의 CG도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은 미니어쳐들과 분장, 정교한 합성과 카메라 조작을 통해 제작했다. 21세기에 살고 있기에 여러모로 당연해보일 장면들이 많은데, 1968년 당시 관객의 시점으로 보면 이 영화는 말도 안되는 혁명적인 이미지들을 묘사한 것이다.

위 우주 정거장은 미니어쳐다. 정거장 안 사람들의 모습은 미니어쳐 바탕에 합성한 것.
지금 보면 뭐가 특별한 지 모를 장면이지만, 1968년 당시 컴퓨터는 저렇게 다채로운 이미지들을 구현할 수 없었다. 큐브릭의 상상도


5.영화의 1부 '인류의 시작' 파트에서 처음 나오는 풍경 영상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다. 그러나 유인원이 나오는 장면부터는 모두 세트장이다. 유인원은 당연히 정교한 분장+미친 연기력.

6.대사 없는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의 첫 대사는 영화가 시작하고 25분 40초가 넘어서 나오며, 마지막 '목성, 그리고 미지의 저편' 파트는 파트 전체 25분간 대사가 없다. 영화 전체적으로 쳐도 2시간 28분동안 대사가 나오는 시간이 50여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7.원래 영화의 OST는 클래식이 아니었으나 큐브릭이 개봉 직전에 수정해서 넣었다. 원곡의 원작자인 알렉스 노스는 이를 개봉후 시사회를 함께 관람하며 알게 되었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과적으로 이는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평가 받는데, 클래식을 넣은 덕택에 이 영화가 시대를 넘어 보아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훌륭한 고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ekDscvvYOFg

노스의 원곡이 쓰인 타이틀. 과연 이 곡이 그대로 쓰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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