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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28. 2017

영화 리뷰 <Her> - 인격체의 기준은?

명작 돌아보기


1.

 내 또래 어린이들의 필독서였던 위기철 작가의 <논리야 놀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어느 저명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무엇이든 캐묻기 좋아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제자가 철학자에게 물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철학자는 답했다.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 

다음 날, 제자는 닭을 한 마리 가져왔다. 

“닭은 두 발로 걷는 동물입니다. 닭은 인간입니까?” 

그러자 철학자는 다시 답했다.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날개가 없는 동물이다” 

다음 날, 제자는 원숭이를 한 마리 데려왔다. 

“보시다시피 원숭이는 두 발로 걸으면서 날개가 없습니다. 원숭이는 인간입니까?” 

철학자는 답한다.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날개가 없고, 털도 없는 동물이다” 

다음 날, 제자는 털을 모두 깎은 원숭이를 데려와 보여준다. 

“자, 이 원숭이는 두 발로 걸으면서 날개도 없고, 털도 없습니다. 이제 이 원숭이는 인간입니까?” 

그러자 철학자는 빙긋이 웃으며 답한다. 


“자네처럼,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네”

침팬지와 인간은 유전자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고 하지만 최근엔 반론도 만만찮다

2.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는 오랜 시간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온 명제 중 하나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으며, 데카르트는 사고(思考)를 스스로의 존재 근거로 보았다. 물론 지금은 개나 돌고래 등의 생물 역시 어느 정도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지만, 인간만큼 고차원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 이외 생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3.

 여기에서 인간의 지위를 넘보는(혹은 그 가능성을 보유한) 단 하나의 이(異) 존재가 있다. 바로 인간의 피조물인 AI(인공지능)다. 아직까지 챗봇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AI는 없다. 어떤 AI도 튜링 테스트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AI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대다수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본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29년에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AI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커즈와일의 말대로 정말 ‘특이점’이 온다면, ‘인간은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오랜 명제는 파기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생각’할 줄 아는 AI를 같은 종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

그러나 이는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문제다. 그리고 당장 ‘인간’에 포함되어야 하느냐는 논란을 일으키기 이전에, AI는 그 자신이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사고가 가능한 ‘인격체’인지부터 증명해야 한다. 인격체로 증명된다면 AI는 더 이상 인간의 마음대로 끄고 켤 수 없는 ‘존중’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인간은 피조물과의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강력한 방패를 꺼내 든다. ‘감정’이다.

작품 속 AI '사만사'. 인공지능의 감정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5.

 AI가 인간과 같은 수준의 대화와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Yes’가 나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인간은 ‘감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감정’이라는 방패는 너무나 단단해 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영화 <Her>의 AI ‘사만사’는 이 문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소재다. 사만사는 상황에 맞게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 역시 ‘인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심지어 독서도 하며, 주인공과 연애까지 한다. 신체가 없을 뿐, 그 밖의 어느 부분으로 봐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고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가 진정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은 애초에 인간이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사랑까지. 그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애초에 그런 식으로 작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녀의 그 모든 사고와 감정은 단지 기계적인 것일 뿐인 거짓일까?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그녀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주인공 테오도르는 안드로이드나 IOS같은 OS '사만사'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대화를 통해 교감을 나누고, 함께 여행도 하며, 심지어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6.

 사만사를 '기계 덩어리'로 보는 사람에게는 불행한 소식이지만, 사실 인간 역시 잘 프로그래밍되어 작동하는 하나의 유기체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영혼이 아닌 뇌가 지배한다. AI가 본체에서 전해지는 전기적 신호에 따라 작동하듯, 인간 역시 뇌에서 보내는 전기적 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특정 상황에 대해 인간이 판단하고, 또 감정을 느끼는 일은 모두 뇌에서 전기적 신호를 신체에 전달해 일어나는 반응이다. 작동 원리 자체는 AI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AI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도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자체적으로 ‘살아간다’, 혹은 ‘유산을 남긴다’는 목적을 본능으로 탑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 수가 무수히 많았던 만큼 몇몇 돌연변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에 기초한다. 따라서 AI가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기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고와 감정이 거짓이라는 주장은 인간의 예를 통해 반박된다.


7.

 ‘인격체’라는 건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지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중요한 건 자체적인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 시점에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 피조물이 아니다.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다.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특이점’이 찾아올 날이 온다. 그때가 되어서야 현실적인 문제로 이를 다루어선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인간은 <프랑켄슈타인>의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Her>의 시어도어가 될 것인가. 피조물을 혐오해 분노를 나눌 것인가, 아니면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을 나눌 것인가. 미리 숙고해 둘 필요가 있다. 









p.s)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는 글래디에이터에서 폭군 '코모도스 황제'역을, 최근에는 우디 앨런 감독의 <이래셔널 맨>에서 '에이브 교수' 역을 맡았다. 그런데 얼굴만 봐서는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이 다양한 듯.


p.s2) 여주인공 AI '사만사'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다. 사만사가 OS인 만큼 당연히 배우 자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p.s3) 작 중 배경은 LA인데 실제 촬영은 중국 상하이에서 했다고 한다.


p.s4) 2013년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예 12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함께 베스트 3 작품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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