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트롱 Apr 18. 2017

영화 리뷰 <나의 사랑, 그리스> - 무항산 무항심

무비 패스, 신작 영화 리뷰


1.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是罔民也).”


2.

보통 한 줄로 간단히 ‘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으로 요약되는 이 유명한 문구는 중국의 고전 <맹자(孟子)> 양혜왕 편 상(上)에 쓰인 맹자의 통치철학이다. 쉽게 말해 ‘안정적으로 먹고살지 못한다면 도덕이고 양심이고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이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 ‘무항산 무항심’이다. 필경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접근 이리라. 정반대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모든 에피소드에서 ‘에로스(사랑)’를 몇 번씩이 나 강조하며, “그럼에도 사랑이다”를 온 힘을 다해 호소하기 때문이다. 다소 과할 정도다. ‘기승전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도 딱히 변명하지 못할 터다.

원제는 "Worlds Apart"


3.

하지만 현재 그리스의 상황을 알고 있다면 감독(그리스인이다)의 이 같은 간절한 사랑의 외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다. 그리스는 2015년 국가 부도 선언을 했다. 회사로 치면 ‘망한’ 회사다. 더군다나 그리스의 파산 원인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5:90 수준의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비율, 강력한 반발에 줄이지도 못하고 있는, 무려 소득대체율 90%가 넘는 수준의 과도한 연금 등은 이 나라가 유로 국가들의 자비와 도움 없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파산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리스는 더 이상 논리적으로 작금의 재앙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정말 감성으로, 사랑으로 위로하는 것만이 최선인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구제금융/유로존 탈퇴 찬성과 반대, 완전히 갈라진 그리스


4.

그래서인지 영화는 고집스레 사랑을 제시한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3개의 옴니버스 스토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순서대로 초년, 중년, 장년의 사랑을 보여준다. 초년의 사랑은 그리스 여대생과 시리아 난민 남성 사이의 사랑, 중년의 사랑은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은 남성과 스웨덴에서 파견 온 직장 상사와의 사랑, 그리고 장년의 사랑은 독일에서 온 이민자 노인과 60 그리스 주부 사이의 사랑이다. 초년을 제외한 나머지 2개의 이야기는 불륜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들의 불륜은 참 아름답게 그려진다. 감독은 왜 굳이 이렇게 설정을 했을까? 그리스 현실에 비춰 봤을 때, 법을 초월한 사랑, 논리를 초월한 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사람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은 불륜


5.

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한 곳으로 모인다. 초년, 중년, 장년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그리고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않는 ‘아버지’는 불법 이민자를 증오해 매일 밤 이민자 사냥에 나서는 파시스트다. 아버지의 증오와 폭력의 칼끝은 종국엔 딸에게로 향해 그를 희생시키고 마는 의도치 않은 결말을 낳는다. 세상에 옴니버스는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분리된 듯 하지만 사실은 모두 이어져 있다. 그러니 타자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랑을 주어야 사랑으로 돌려받는다, 라는 감독의 원대한 메시지다.


6.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과연 이런 나라에서 이런 식의 무차별 ‘사랑’이 가능한가? 나라가 망했는데, 더 심하게 망한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몰려 들어온다. 우리가 당사자라면 그들을 사랑으로 아량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우리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IMF다. 주위 5~60대 어른들에게 한 번 여쭤보자. 망하지 않을 것만 같던 대기업이 부도가 났다. 30대 기업 중 14개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당시 재계 2위이던 기업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심지어 은행마저 파산을 하던 때다. 이런 판국에 사랑?

항산이 없는데 항심을 유지함은 군자만이 가능하다


7.

영화 속 중년과 장년의 사랑 대상은 각각 스웨덴과 독일 출신이다. 이들 국가들은 부유하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하든 ‘살고 싶은 나라’ 상위권에 손꼽힌다. 이 나라들은 시리아나 이라크 등 난민들을 수용하는데도 꽤나 호의적이다. 국민들부터 입국하는 난민을 미소로 맞고, 그들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힌다. 왜? 그리스인들과는 타고난 국민성 자체가 달라서일까? 그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걔네들은 먹고사는 걱정 없이 웬만하면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 아닐까? 삶이 안정적인 국가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중 국민성이 개판인 나라는 없다. 차별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그 나라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신호일뿐,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민자를 환영하는 독일인


8.

모름지기 항산이 있고서야 항심이 있는 법이다. 이걸 부정해선 이야기가 진행이 안된다. 무항산 무항심은 일종의 인간 본성이다. 영화는 그걸 부정하는 듯 보인다. 에로스의 무한 반복이요, 기승전사랑이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단순히 감상적인 의도에서의 부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애타는’ 부정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도저히 풀 도리가 없는 그리스의 현실을 이렇게나마 덮어주어야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낭떠러지에 선 1000만 그리스인에게 보내는 절박한 위로이자 최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3.5/5)





p.s)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타스'는 영화 속 '지오르고' 역으로 직접 출연했다.



*브런치 무비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해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진보와 폭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