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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Feb 25. 2018

김어준의 말은 예언이 맞다. 왜곡하지는 말자. 하지만

그는 노련한 ‘언론’이며 동시에 선동가다

 1.

 김어준이 또 한 번 성공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슈들 중 하나를 선정, 자기 식으로 해석해 확산시키는 데 도가 튼 이 한국판 괴벨스는 이번에 다듬어 줄 이슈로 '미투'를 선택했다. 하지만 포지션은 지금까지와 조금 다르다. 이명박 정권 말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공격수' 포지션을 유지하던 김어준은 이번엔 '수비수'로 나섰다. 물론 지금까지의 여타 정치 수비수들과는 플레이 스타일도 조금 다르다. 그는 상대의 공격을 1차로 방어해내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상대의 이후 공격 루트까지 미뤄 읽어낸 뒤 팀원들에게 "자, 다시 집중하자!"고 외치고 있다. 동시에 역습을 위해 센터링을 올릴 공간을 엿보고 있다. 그의 오른 팔에는 왠지 노란 주장 완장이 메어져 있을 것만 같다. 최근 쏟아지는 예상치 못한 '우리 편 적폐'에 정신을 못 차리고 혼비백산하던 그의 팀원들은 '주장' 김어준의 한 마디에 다시금 '집중'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훌륭한 주장 수비수다. 그리고 노련한 '언론'이다.


2.

 나는 본질적으로 김어준을 언론인으로 보지 않는다. 김어준은 '언론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김어준을 선동가라 본다. 아, 물론 직업적으로 그는 언론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이해하시겠지만 어디까지나 심경적으로 그에게 '언론인'이라는, 어딘지 거룩해보이는 타이틀을 채워주는 일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좋다. 일단 직업이긴 하니 언론인이라 직함을 붙여주자. 대신 앞에다 한 마디만 더 붙이자. 그는 '올바른' 언론인이 아니다. 그 잘난 '쫄지마 씨바' 정신으로 여기저기 쫄지도 않고 찔렀다가 '아니면 말지' 하는 식으로 끝난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천안함, 세월호를 향한 음모론들부터, 최근 대선 직전 냈던 영화 <더 플랜>까지. 심지어 <더 플랜>은 대선 이후 무려 뉴스타파에게 저격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입장 표명도 없었고, 논리정연하게 찔러들어오는 반박에 논리적 재반박을 하지도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부터 틀린 이야기였고, 본인도 시작부터 알고 있었을테니까. 그는 언론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를 총수라 일컬으며 "믿쑵니까?!"를 외치는 사이비 교주요 선동가다.


3.

 김어준을 '올바른 언론인'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불운하게도 그는 거대한 '언론' 그 자체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대중성이나 화제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에 있어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숨겨진 역할, 바로 '방향 지시등'으로서의 역할이다. ‘언론’ 김어준은 보수 조선일보에 비견될 만큼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방향 지시 메시지를 세력 지도층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된 발언들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 보고 오시라. 사실 지금 김어준에게 쏟아지는 비난들은 방향이 잘못됐다. 문제가 된 발언들을 쏟아내기 전 김어준 본인 입으로 전제를 달았듯, 그 말들은 '미투' 그 자체에 대한 불만도 아니고 ‘현재’ 쏟아지고 있는 뉴스들이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그를 몹시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무척 안타깝게도, 그 말들은 순수한 '예언'이 맞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보수 언론, 정치 세력은 한 입 모아 '진보의 더러운 민낯'을 입에 올리며 공세를 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김어준이 좋아하는 '누군가 조작한' 사건도 아니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용기 있게 오랜 '적폐'이자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일인데 걸리는 족족 진보 좌파와 연계된 인사들이다. 정치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4.

 상당히 뻔한 수순이지만 진보측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결집시킬 정신이 없었다. 당장 그들이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미투가 아니라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파격적인 인사 파견(혹은 진심 테스트)을 받아들이느라, 그리고 이에 대한 공세를 커버치느라 한 눈 팔 정신이 없다. 그와중에 평창 올림픽이 나름대로 괜찮게 진행이 된 것은 안도할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도리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이른바 S 정책에 빠져들어 비판력을 잃은 것은 "우리 대통령의 성공"에 환호하는 ‘원래 우리 편’들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 여론이 대통령의 지지율과는 정반대로 조성되고 ‘문꿀오소리’들의 결집력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각종 문제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방향을 잃었음을 반증한다.


5.

 이대로 가면 야당 주도 여론전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북한 이슈가 끝나고 나면 다음으로 이어질 본격적 공격 대상은 ‘미투’로 불거진 ‘진보의 민낯’이다. 이런 뻔한 판국에 여당이 갈팡지팡하는 모습을 보이자 답답해진 김어준은 예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고 미투 포화의 중심에 나섰다. 그리고 "자, 집중하자! 올림픽 끝났다. 정신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오자!"를 외친 것이다. 초선이지만 광고 전문가인 손혜원은 이를 단박에 알아들었고, 아직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순수한 초짜 금태섭은 오독을 했다. 금태섭의 반발은 머잖아 여당 안에서 자체적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막간에 나도 예언 하나 하자. 며칠 안에 금태섭은 스스로 글을 내리거나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 더이상 입을 다물 것이다. 어찌됐건 김어준의 메시지는 민주당 지도층에게 제대로 전달이 된 듯 보인다. 여당은 태세를 가다듬고 머잖아 입장 발표를 하든지 비슷한 건을 터뜨려 역습을 하든지 조치를 취할 터다.


6.

 김어준이 전면전을 펼치자 혼란스러워 진 것은 보수 우파 세력이다. 수를 읽힌 것은 둘째치고, 이러다간 별다른 공세도 펴지 못하게 생겼다. 자칫하면 이 쪽은 또다시 ‘구태 정치’를 하는 ‘정치 적폐’가 되고 김어준은 그 신봉자들에게 다시 한 번 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보수 언론측 입장에서는 김어준 건이 주말에 터진 게 천만다행이다. 방향을 재설정할 시간이 생겼으니까. 김어준의 대담하며 대단한 한 수다. 보수는 일단 당장은 김어준 말의 의미를 왜곡, 과장하는 방향으로 보도하며 그를 매장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시적 대응일 수도 있고, 진심을 담은 공격일 수도 있겠다. 최근 ‘여성 이슈’만큼 화력 집중도가 강한 문제가 없으니 어쩌면 일방적 매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을 터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매장될 수준이라면 김어준이 선동가로서 지금의 지위까지 오르진 못했을 것이다. 충성도 높은 신도들과 메이저 언론사급 파급력을 가진 김어준에게 그의 발언에 대한 치졸한 왜곡 보도는 그가 가장 원하는 방향의 대응이다. 아마도 그는 다음 번 방송에서 자신의 의도를 왜곡 보도한 보수 언론들을 “늘 이런 식인 구태 세력들”로 몰아갈 것이다. 그러면 김어준이 구상한 그림은 깔끔하게 완성된다.


7.

 김어준 자체에 대한 공격은 잘못됐다. 보수는 김어준을 하나의 톡 튀어나온 인간이 아닌 ‘언론’ 자체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진보 지도층을 향한 방향 설정 메시지에는 마찬가지로 보수 지도층을 향한 방향 설정 메시지로 대응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한겨레에 대응하듯, 경향신문이 중앙일보에 대응하듯 말이다. ‘미투’로 드러난 문화 예술 계열 진보 인사들의 민낯을 두고 문제를 따지는 것은 마땅한 정치적 공세다. 잘못도 아니며 구태도 아니다. 이 길을 틀어막고 총구가 보수를 향하도록 구부려 버린 김어준의 발언은 ‘파급력 높은 언론’이 제시할 수 있는 마땅한 공격이다. 보수 언론은 자존심을 굽히고 김어준의 ‘성공’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상대할 수 있다. 월요일(혹은 화요일) 발행될 조선일보의 ‘미투’ 기사는 어떤 메시지를 숨긴 채 실릴 지 몹시 기대가 된다. 조선일보는 그 하늘 높이 솟은 콧대를 잠시 낮출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김어준을 하나의 ‘불순물’로만 여길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자존심 고하와는 상관없이 ‘불순물’ 김어준은 이미 조선일보와 비견할만큼 강력한 언론 왕국을 구축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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