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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Aug 21. 2018

우리 사회는 학종을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되는가?

신뢰도 낮은 사회는 정성 평가를 감당하지 못한다

지난 17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직접 2022학년도(현 중3부터 적용)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시 모집 비율을 현행 23.8%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대학들에게 권고하고, 현재 절대평가인 영어와 한국사에 더불어 제 2 외국어와 한문까지 절대평가에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조금 놀랐다. 그 김상곤이 겨우 1년 만에 이렇게 항복해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출처: 이데일리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 1년간 현 정부 교육 정책은 신념과 여론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큰 줄기는 놓치지 않았었다. 정시 축소, 수시 확대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학종(학생부 종합전형) 확대다. 부임 초기부터(사실 민간인 시절부터) 김상곤 장관이 쭉 주장해왔던 '수능 절대평가'라는 급진적인 안은 미끼일 뿐이고 결국 학종을 8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틀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자체 논의 끝에 아직 우리 사회가 학종 80을 받아들이기는 조금 버겁다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라는 대통령 취임사에 깊이 감동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종이라는 흐릿한 제도는 그다지 공정한 경쟁 절차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수능의 환상을 걷어낼 필요는 있다. 우리의 굳은 믿음과 달리 수능은 그다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통계가 모든 것을 증명해준다. 올해 초 4월 '국민일보' 보도([대입제도 개편] 수능, 과연 공정한가… 수능 위주 정시모집 늘리면 강남이 웃는다)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 지역 일반고 학생 중 수능 고득점자(국영수 세 영역 평균 2등급 이상)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서울 강남구였다. 10년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위 역시 마찬가지로 10년간 변함이 없었다. 바로 서울 서초구다. 2015학년도 기준 강남구는 전체 학생의 무려 17%가 국영수 평균 2등급 이상을 받았다. 서초구는 11.9%였다. 나머지 3등 양천구(9.3%), 4등 송파구(7.4%), 5등 노원구(5.6%) 순이다.


반대로 2015학년도 수능을 치른 서울 지역 일반고 학생 중 고득점자 비율이 가장 낮았던 5개 구는 어디였을까? 5위부터 서대문구(2.2%), 도봉구(2%), 구로구(1.9%), 중랑구(1.5%), 금천구(1.1%) 순이었다. 강남과 비강남이 확실히 갈리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격차 역시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구 고득점자 비율이 2005년 12.6%에서 2015년 17%로 4.4% 증가한 반면, 서대문구나 도봉구 같은 경우 각각 -2.2%, -3.9% 감소했다.

출처: 국민일보

아무런 이유 없이 지역별 수능 점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고득점자 비율이 가장 높은 5개 구는 공교롭게도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5개 구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양천구로, 월평균 58만 원이었다. 이후 2등부터 순서대로 노원구(53만 원), 서초구(52만 원), 송파구(51만 원), 강남구(48만 원)였다. 고등학생만 따졌을 경우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사교육비 지출은 월평균 86만 원으로 강북(54만 원)의 1.6배나 됐다. 그러니까 통계를 두고 결과를 보면 수능은 집에 돈이 많을수록 유리한 시험임이 자명하다. 즉, 돈을 많이 투자할수록 성적도 정비례하는 일종의 '현질 유도' 게임인 셈이다.


그렇다면 학종은 어떤가? 학종은 공정한가? 놀랍게도 결과만 놓고 보면 학종은 수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교육비의 영향을 적게 받는 듯 보인다. 학종 비중을 늘린 대학 신입생들의 소득 분위를 보자. 서강대는 학종 비중을 2015년 13.6%에서 2017년 37.4%로 3배가량 늘렸다. 그 결과 저소득층(기초~2 분위 이하) 신입생 비율은 21.2%에서 27.2%로 증가한 반면, 고소득층(9~10 분위)은 48.3%에서 35.9%로 줄었다. 이외에도 건국대, 중앙대, 한양대, 서울시립대 등 학종 비중을 늘린 서울 주요 대학들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불공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금수저 전형'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학종이 결과를 내고 보니 오히려 부모 재산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고르게 대학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수능 성적 상위 5개 구의 학생들 대부분은 여전히 학종보다는 정시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시는 학종에 비하면 시원하게 뚫린 직선 도로다. 이미 파헤쳐질 대로 파헤쳐진 전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전하기도 쉽다. 돈을 투자하면 결과가 따라준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까지 됐다. 학생은 부모가 사준 비싼 차를 타고 직선 도로를 주행하기만 하면 된다.

직선 도로 하면 창원대로죠! 캬 / 출처: 경남신문

반면 학종은 아직까지 변칙적이다. 답을 도출하기 아직은 애매하다. 그래서 강남을 비롯한 '5구'는 여전히 수능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변화무쌍한 일도 결국 언젠가는 나름의 규칙성을 드러내며 보수화 되기 마련이다. 언젠가 입시 전형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학종 연구를 끝내는 날이 온다. 사교육이 학종으로 모인다는 소리다. 사교육이 학종에 대한 분석을 끝내면 어떻게 될까? 정시를 파던 학생들도 모두 학종으로 이사를 온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똑같아지는 것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전문가들이 학종을 완전 해체시킬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수능과 마찬가지로 '돈'이 대학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유지된다면, 마땅한 정량적 기준이 없는 학종은 훗날 지금의 수능보다 더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높다. 결국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학종이냐 수능이냐에 관한 논쟁의 기저에는 제도에 앞서 우리 사회가 학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신뢰도가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숨어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은 한국인에게 보내는 신뢰는 굉장히 특이한 구조를 띤다. 한국인은 바로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카페만 해도 보자. 마음 놓고 노트북,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놓고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던가? 선진국이라는 유로 국가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옆 사람이 아닌 멀리 있는 사람,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향한 신뢰도는 어떨까? 거의 바닥을 치는 수준이다. 아무나 붙잡고 우리 사회는 부패했을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부패했다고 답할 것이다. 정작 '그럼 너도 부패함?' 물어보면 아무도 부패 안 했다고 말할 거면서. 인물의 사회적 계층이 위에 위치하고 있을수록 그를 향한 부정적 인식도 함께 높아진다.


2017년 올해의 단어는 '적폐'였다. 온 나라가 적폐 청산에 미쳐있었다. 이 광적인 현상은 대체 무엇을 의미했을까?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 두 사람에게 분노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온 시스템을 향한 불신이 두 사람을 계기로 분노로서 표출된 것이다. 적폐 청산 구호에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우리 사회에 적폐가 가득 쌓여 있다는 사실에는 한 마음으로 공감을 표한다. 각자 생각하는 '적폐' 대상이 다를 뿐이다.

재벌적폐 청산을 외치던 대통령은 거듭 악화되는 지표들에 마음이 급해져 결국 삼성에 SOS를 쳤다 / 출처: 세계일보

신뢰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추상적이고 말만 오가는 것들은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신뢰도가 낮은 국가의 국민은 정부를 향해 지표와 통계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쉬지 않고 지지도를 조사하고 경제 성장률을 따지고 매 분기를 넘어 매달 실업률을 조사한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정량적인 것 이외는 믿지 않도록 만든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부자, 기득권을 위한 정책 밀어붙이려 할 리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그런데도 그를 지지했던 인원들까지 모조리 목놓아 반대를 외쳤다. 수능 30% 이상 권고 선언은 그 결과다.


학종이란 정성 평가다. 객관화된 수치나 기준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아직 수치화되지 않은 평가 기준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제도를 땜질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 만연한 불신과 적대감을 치유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으면 학종 비중을 아무리 늘린다고 한들, 결국 또다시 '국민'의 요구에 못 이겨 정량화될 수밖에 없다. 정량화된 학종은 또 다른 수능으로 이어질 뿐이다. 아주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성과를 내겠다고 서두르면 될 것도 안된다. 지금 정부는 대부분 일을 당장 뭔가 이뤄내려고 급하게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될 것 같았던 일들이 모두 고작 1년 만에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지지율도 그렇게나 높았는데. 지지율은 영원하지 않고 실수가 거듭되면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진정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욕심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실수는 겸허히 인정하고 보완하며 안정적인 정국을 가져가야 한다. 그래도 안 뒤집힌다. '혁명' 동력은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이미 사라졌다. 큰 변화는 힘들다. 욕심은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안정을 우선해야 할 때다. 정부에게도, 사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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