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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l 05. 2018

'재벌 갑질'에 미쳐 있는 대한민국

문제는 아시아나가 아니라 샤프도앤코다

박삼구 금호 그룹 회장(출처: 세계일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벌=대기업=악' 공식이 머리 속에 정말 강하게 박혀 있는 것 같다. 사건 하나 터지면 일단 연관된 대기업, 재벌 잘못이라고 답을 내려 놓은 뒤, 그 이후에서야 그들의 잘못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시아나 항공과 연계된 회사의 협력사 대표가 자살했다는 불행한 뉴스가 전해지면서 온 나라가 '아시아나 갑질'로 난리다. 바로 몇 달 전에 대한항공 재벌 일가의 '갑질' 논란이 전국을 뒤덮었는데, 곧바로 경쟁하듯 라이벌 국적 항공사에서 갑질 사건이 벌어지니 다른 때보다 더 큰 주목이 쏟아 지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번 아시아나 사태는 대한항공의 그것과는 궤가 전혀 다르다. 대한항공 건은 유전적으로 정신병이 있는 듯한 힘 있는 가족이 그 아래 사람들을 향해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상습 폭행을 저지른 사건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는 한 묶음의 '죄인'을 특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시아나가 직접적으로 '갑질'을 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건은 '아시아나의 갑질' 사건이 아니라, '샤프도앤코의 하청 업체 갑질' 사건이라고 명명해야 맞다.

 일단 사건을 촉발한 건 최근 3개월간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 공급을 담당한 '샤프도앤코'란 중소 기내식 업체 협력사 대표의 자살이다. 당연히 이 협력사는 아시아나 항공과 직접적 계약 관계에 있는 회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본 사건은 아시아나 항공이나 금호 그룹 총수인 박삼구가 영세 하청 업체를 상대로 이른 바 '갑질'을 저질러 자살을 종용한 사건이 아닌 셈이다. 한국의 유수 언론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메이저 언론사의 어느 기사를 보든 위와 같은 사실 관계가 왜곡된 부분은 없다. 대신 '갑질', '하청업체', '자살', '재벌'이란 키워드들을 적당히 버무리고 글의 순서를 섞어, 마치 아시아나의 갑질이 비극을 만든 것처럼 분위기를 엮어가고 있다. 

 많은 기사들이 아시아나의 갑질 사례로 기존 기내식 공급 업체인 LSG스카이셰프와의 재계약 과정을 거론하고 있다. 아시아나가 재계약을 조건으로 LSG스카이셰프가 다른 금호 계열사에 1600억 원을 투자하라는 '갑질'을 했으며, 이 '무리한 요구'가 작금 사태의 최초 원인이라는 것이다. 해당 업체가 이 요구를 거절하면서 일종의 나비 효과가 일어났다는 어투다. 사실 이 사건 전체에서 아시아나의 '갑질'로 볼 수 있는 사례는 이 하나 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갑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금호 아시아나가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상대 회사 LSG스카이셰프는 루프트한자 그룹 계열에 속한 회사다. 아니, 루프트한자가 무슨 동네 굴러다니는 중소 중견 기업인가? 세계 4위 경제 대국 독일의 원탑 항공사다. 이런 규모의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계약 갱신 시 일정 수준 이상의 요구를 하는 걸 갑질이라고 욕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애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아니다. 기업과 기업간의 '기존 계약 갱신 조건'에 관한 거래다. 사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다. 때문에 기업간의 거래를 '갑질'같은 선악 구도로 바라보는 것부터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기업간 규모가 엄청나게 차이나서 누가 봐도 '갑과 을'이라고 못 박을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오히려 루프트한자 그룹이 금호 그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다. 

 말하자면 이건 삼성과 애플의 거래와 비슷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 디스플레이 중 OLED 패널은 거의 100% 삼성이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 삼성이 OLED 패널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OLED 패널 세계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한다. 그래서 삼성은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를 새로 만들 때 마다 패널 공급을 두고 계약 조건을 엄청나게 높여 제시한다. 애플은 디스플레이의 삼성 종속 상황을 탈출하려고 비슷한 품질에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다른 업체를 찾으려 매번 안간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이 만드는 OLED 패널과 나머지 회사 제품간 성능 차이가 워낙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플은 언제나 울며 겨자먹기로 삼성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 매번 새로운 계약을 한다. 하지만 이걸 두고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갑질한다!"며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건은 정당한 기업간의 거래라고 본다. 애플이 우리나라 기업이 아니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잠재 의식 속에 두 회사가 서로 덩치가 비슷한 수준의 회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의 애플을 향한 '무리한 요구'를 '갑질'같은 선악 구도로 나누어 보지 않는다.

 금호 계열의 아시아나와 루프트한자 계열의 기내식 공급 업체 간 계약도 이런 면에서 놓고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하면 아시아나가 자신들의 규모와 권력을 이용해 영세한 상대 거래 업체를 '착취'하려고 든 케이스로 보기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결과만 놓고보면 애초에 아시아나가 내건 조건이 그렇게 극악한 요구라고 단정짓는 것도 웃기다. 결국 아시아나는 자신들이 처음 내걸었던 조건과 같은 내용으로 빠르게 다른 업체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지 않은가? 이는 곧 아시아나가 내건 조건이 타 기내식 공급 업체 경쟁사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는 조건이었단 소리다. 1600억 선불로 주고 10+년 계약 할래? 라는 제안을 게이트고메코리아(GGK)는 받아들였고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거절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 뿐이다. 거래 과정을 아주 세부적으로 들여다 봤을 때 불공정한 부분이 있었는 지는 이미 본 건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가 들어가 있으니 공정위에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아시아나 항공(출처: 연합뉴스)

 사건의 본질은 아시아나가 아니다. 초점이 잡혀야 할 회사는 아시아나가 아니라 샤프도앤코다. 물론 아직 명확히 드러난 진실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는 있다. 게이트고메코리아의 공장이 화재로 전소되어 기내식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시아나 입장에서 아주 불행한 사고다. 아시아나로서는 기내식 공장에 불이 나든 말든 비행기는 떠야 하므로, 공장 복구 전까지 어떻게든 기내식을 제공 받을 루트를 찾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었을 터다. 실제로 LSG를 다시 만나 3개월만 연장해달라 애원했지만 당연하게도 거절 통보를 받았다. 그 혼란하고 시급한 틈을 덥썩 파고든 게 샤프도앤코다. 아마 처음에 이 회사는 아시아나의 고려 사항에 들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나는 규모상 하루 2~3만 개의 기내식을 필요로 하는데, 이 회사는 하루 2~3천 개 정도만 생산할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임원들이 바보 병신들도 아니고 지금까지 2~3천 개밖에 생산하지 못하던 회사를 오롯이 믿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3개월 한정으로 계약을 한듯 보인다. 여기 둘이 계약을 맺는 과정 중에서도 아시아나가 샤프도앤코 측에 갑질을 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은 없다. 오히려 역량이 안되는 중소 규모 회사가 작금의 사태를 기회로 오판해서 무리한 입찰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몇몇 언론들은 아시아나가 샤프도앤코 측에 내걸었던 '지연 시간 별 패널티' 조항을 가지고 또 갑질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아시아나가 당시 얼마나 급했는지, 그리고 동시에 기내식을 제때 공급받지 못할 것을 얼마나 우려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명서다. 아니, 애초부터 기내식 업체가 비행사에 기내식을 제 때 지급하지 못하면 당연히 충분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항공사 입장에서 쓰지도 못할 기내식을 뒤늦게 받아봐야 뭐하냐고. 대중에 공개된 세세하게 시간 별로 달린 패널티들은 급하면서도 의구심이 많았을 아시아나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들이었다. 반면 샤프도앤코 입장에서는 회사의 미래를 걸고 신뢰를 거래한 조건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독하게 마음 먹은 것과는 별개로 급하게 계약을 한 만큼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갑자기 생산량을 기존 10배나 올려버리니, 샤프도앤코보다도 더 작은 하청 협력 업체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사망한 대표의 회사 같은 경우, 기존 7시간 3교대 근무를 하던 인원이 하루 14시간씩 쉬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위에서 하청 업체들에 엄청난 압박을 가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단순히 '쉬지도 못하고 일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업체의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극단적 사태까지 갔을 리 만무하다. 결국 돈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계약'의 문제다. 때문에 언론이 이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뤄줘야 하는 것은 아시아나와 샤프도앤코간 계약서 내용이 아니다. 그걸 아무리 뒤적거려 봐야 샤프도앤코 하청업체 대표의 죽음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둘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샤프도앤코와 그 하청 협력 업체들 간의 관계다. 언론이 진정 이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생각이라면, 샤프도앤코와 그 아래 하청업체들 간의 계약 문서를 찾아 분석해줘야 한다. 샤프도앤코가 감당했어야 할 '기내식 공급 지연 패널티'들이 하청업체들에 얼마나 충격 분담이 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나 됐길래 하청 기업의 대표가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그걸 찾아줘야 맞는 것이다.

 기업간의 관계를 선악 구도로 바라보면 자연스레 강자(갑)와 약자(을)로 기업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시장에서 영원한 강자와 약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A와 B의 관계에서 A는 B에게 갑이고 B는 A에게 을이었지만, B와 C가 거래를 할 때는 B가 갑이 되는 또 다른 갑을 관계가 형성이 된다. 그게 시장이다. 대기업은 악이고 그 아래 기업은 선이라는 구도로 바라보게 되면 모든 문제를 대기업 잘못으로만 책임을 묻게 된다. 하지만 대기업만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청업체를 괴롭히는 것 역시 대기업만의 악습이 아니다. 무조건 대기업은 나쁜 놈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 사이 중간 규모 업체들 중에서도 각자 하청업체 고혈을 빨아먹는 개새끼가 있을 수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거다.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은 하청업체 대표의 죽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언론들은 이를 계기로 아시아나 그룹 재벌들에게 타격을 가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죽음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 이미 금호 총수 박삼구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딸이 높은 직책으로 특혜 취업을 했니, 1600억 원 투자 요구는 계열사 경영권 확보를 위함이니, 박삼구 일가가 스튜어디스를 성희롱을 했니 어쩌니 따위의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이나 증폭시켜 떠들고 있다. 물론 저런 문제가 있으면 조사를 하고 책임을 져야겠지.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일어난 사건의 본질은 아니잖아? 도대체 언론이 약자의 죽음에 진정 관심이 있기는 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을 뿐인 건가. 나는 정말 의심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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