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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l 01. 2018

양심적 병역 거부, 지금은 틀리고 그 때는 맞을까?

어렵다 어려워


양심적 병역거부 시위 with 박주민(출처: THE FACT)

 요즘 한국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한창 뜨거운가 보다. 사실 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주기적으로 ‘쿨타임 찼다’는 식으로 한 번씩 언급되던, 그야말로 논란의 고전이다. 그래서 이제 와 새삼 강하게 이슈가 될 건덕지는 없는 주제인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헌재가 대체 복무를 허용 하라는 초유의 판결을 때려 버린 까닭에 사회 전체에 제대로 불이 붙게 된 것 같다. 근데 불이 붙긴 붙었는데 발화가 '논쟁'에서 비롯했다기 보다는 헌재 판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 느낌이다. 헌재가 합헌을 때리든 말든 여론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방적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니 그건 너무나 개소리이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굉장히 의외였고 많이 놀랐다. 왜냐하면 최근 사회 분위기가 정말 많이 뒤집어졌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원전부터 시작해서 노동 문제, 북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급진적인 전환에도 모조리 찬성표를 던져왔던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아마도 논리의 문제인 거 같다. '양심적 문제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겠다'는 감성으로 섥힌 논리가 일반 국민들을 도저히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아직 그들을 이해 해주지 못하고 있다. 양심적 거부랑 군대 가는 거랑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 내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안되기 때문이다. 군대를 거부한다는 건 군대의 일인 전쟁 수행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결국 전쟁이 유발하는 살생이 종착지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휴전 중이라고는 하지만 복무 중에 적군을 죽이기는 커녕 멧돼지 한 마리 죽일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잖아? 그래서 살생 문제 때문에 징병 거부하겠다는 건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집총 거부는 이해한다. 총은 인류사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시무시한 살생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적, 양심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할 자유 정도는 주어져야 하고 국가는 그걸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총 거부로 전력이 약화된다거나 할 가능성은 없을 거다. 군 60만 중에 뭐, 해봐야 몇 명이나 거부하겠냐. 종교적, 양심적 이유로 집총 거부하는 인원들은 의무병이나 종교병, 행정병 등 총 관계 없는 보직으로 배치해 주면 된다. 근데 문제는 저들이 집총 거부를 이유로 아예 군대를 안 가겠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군대는 현실적으로 살생이랑 관계가 없으나 군에서 지급하는 총은 살생과 관련이 있으니, '군대 가서 총 들지 마세요'가 밥 로스 그림마냥 실천하긴 어렵지만 놓고보면 참 쉬운 해답이 아닌가 싶은데 아무래도 생각이 좀 다른가 보다. 

헌재(출처: 국민일보)

 내가 뭐라 생각하든 헌재는 대체 복무 합헌 결정을 때렸다. 지금까지 ‘법’의 이름으로 병역 거부자들을 모조리 징역 보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대체 복무가 합헌임이 인정되었기에 뭐 어찌됐건 '법'을 따라 앞으로의 병역 거부자들은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일단 지금까지 ‘법’으로 태클 걸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양심적 병역 거부'에 태클 걸면 안된다. 일관성을 지켜서 이제 찬성파 하시면 된다. 근데 공정함이나 형평성, 또는 ‘말이 되냐?’는 매우 감정적이지만 꽤나 설득력있는 말로 올 단두대 주장해왔던 사람들은 계속 태클을 걸 수 있겠다. 대부분 반대파가 다 이런 이유로 반대했을 거다. 솔직히 좀 논란이 있다. 애초에 '양심적 병역 거부'가 말이 맞느냐, '종교적 병역 거부'라고 해야 옳지 않느냐는 것 부터 시작 해서(사실 이건 헌법 용어를 쓴 거라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프레임적 기능을 해온 것도 분명함), 양심적 병역 거부자 중 무려 99.4%가 여호와 증인 신도라는 팩트 까지(출처: 서울경제). 여호와의 증인은 또 사이비로 취급받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더욱 받아들일 수가 없어진다. 거기에 더해 대체 복무 허가한다고 합헌 판결을 내려 줬더니, 이제는 대체 복무조차 국방부가 주도한다는 이유로 거부를 하니 여론은 더더더욱 악화된다. 에베베 봐라! 양심이고 지랄이고 너네 그냥 끌려 가는 자체가 싫은 거 아니냐! 라는 의심이 확신이 되어 가는 거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근데 진짜로 대체 복무는 또 왜 양심상 안된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좆 같은 곳.jpg(출처: 충청남도)

 사실 '징병'이라는 제도 자체가 국민을 향한 국가의 강압이고 폭력이다. 자격 요건에 해당되는 국민 수명 2년을 맡아간다는 너무나 잔인한 국가 폭력이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해 '신성한 의무' 따위의 되도 않는 상표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만들어야 이 나라의 가엾은 남자들이 두 말 않고(심지어는 자부심을 가지며) 끌려와 줄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세계 기준에 맞춰 생각하면 국가는 '개인의 신념'을 최우선으로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해외 선진국들에서 보기엔 남성 전원 징병이란 무자비한 제도 자체도 끔직한데, 우리가 대체 복무 규정도 없이 병역 거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감방에 집어 넣는 꼴들이 아주 잔혹하고 미개해 보일 것이다. 프랑스가 우리나라 병역 거부 이민자를 난민으로 인정해 준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위치해 있는 지리적 요건과 쳐해 있는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징병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한 처벌을 동반해 강압을 하더라도 일단은 일정 병력 이상을 유지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양심'의 이유로 징병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이후 컨트롤이 곤란해진다. 징병제 자체가 국가가 개인의 신념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이유로 이를 억누르고 심지어 처벌까지 해야 하는 아이러니 위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양심'이란 규정하기가 몹시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한 번 예외를 허락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과연 어디까지를 '예외'로 규정해야 하는지 끝없는 논쟁과 다툼과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광화문 행사(출처: 중앙일보)

 지금의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행동과 논리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도 아주 페널티가 높은 대체 복무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무엇이 옳은 것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처음엔 틀렸다고 얼굴 시뻘개져서 소리소리 지르다가 몇 년 지나서 사실 그거 옳다고 돌아섰던 예들이 얼마나 많았나. 수도 이전 건만 해도 보자. 10년 조금 더 전에 노무현이 이거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아직 이념과 전통의 가치를 몹시 중시하던 때라, '500년 수도 서울을 옮기다니..!' 하며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었다. 지금은 전국 평균 과반 이상, 서울 사람들 중에서도 30%를 넘는 인원이 수도 이전에 찬성하는 시대가 됐다(서울 사람이 왜 수도 이전에 찬성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에 대한 인식은 또 얼마나 변했나.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는?' 같은 병신같은 여론 조사의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한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보수로서는 뒷목 잡고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으로 높아진 게 현재 2018년 대한민국이다. 10년 전만해도 북한을 신뢰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민노당 당원들과 그 지지자들 정도로 극소수였다. 가치라는 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 같이 다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람들이 당연히 반대하고 감방 보내자고 소리치지만, 몇 년만 지나도 나처럼 목에 핏대 세워가며 개새끼들! 외치던 꼴통들이 얼굴에 철판 깔고 "양심적 거부자는 어떤 것도 강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리치며 멀뚱멀뚱 나는 모르오 눈알이나 굴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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