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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n 05. 2018

악덕의 상자 홍준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를 몰아내고 바른미래당과 합칠 것이다


0.

 네이버에는 <덴마>라는 웹툰이 있다. 과거 <누들누드>, <아색기가> 등 '아동 만화풍 그림체의 19세 성인 개그 만화'라는 독보적 장르로 명성을 떨친 '양영순' 작가의 SF 판타지 스릴러 추리 드라마물이다. 초기 광고 문구에 따르면 정확한 장르명은 'SF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한다. 벌써 8년째 연재 중인데 느낌 상 이제 2/3쯤 온 거 같다.

대한민국 만화계사(史)에 길이 남을 명작... 완결만 난다면..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대작(大作)'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언젠가 한국 만화계 신화가 될 작품이다. 우주를 넘어 차원급으로 넓은 세계관, 기상천외한 설정, 소름 돋는 복선들을 밀도 있게 차곡차곡 회수하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한국인인 것이, 그리고 플랫폼이 '네이버'인 게 아쉬울 정도다. 작가가 미국인이고 이 웹툰이 미국에서 연재됐더라면 아마 진즉에 미드 혹은 할리우드 영화로 각색됐을 걸(미드가 더 좋겠다. 세계관이 워낙 방대하니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덴마> 스케일을 소화할 수 있을 만한 기술이나 자본력이 없다. 일본이었으면 애니화라도 했겠지만 우리는 애니 문화권도 아니니... 그래도 수년, 혹은 수 십 년 뒤에는 영상화된 <덴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 정도는 갖고 있다.


1.

 뭐, 제목이 홍준표인 만큼 당연히 <덴마> 추천이나 하려고 타자를 치고 있는 건 아니다. 요 몇 달 새 홍준표를 보고 있으면 괜히 <덴마> 속 어떤 아이템 하나가 연상이 돼서 인용하기에 앞서 작품 소개 겸 찬양 좀 했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하자. 나는 작품 속 아이템 하나를 내 글에 인용하고, 대신 나는 작품을 추천하고...  


2.

 그래서 내가 인용하고자 하는 <덴마> 속 그 아이템 이름이 바로 제목의 '악덕의 상자'다. '악덕의 상자'는 작품 내 귀족들이 비밀리에 저지른 '악행'들의 기억 저장소다. 상자 안에는 몰래 살해한 사람들의 머리통들도 있고, 마약도 있고, 무기도 있고 여하튼 온갖 악행의 흔적들이 모두 다 들어 있다. 귀족들이 '상자 키'를 이용해 상자의 문을 열면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에 용량도 무제한이다. 귀족들은 '악덕의 상자' 속에서 악행을 저지르거나, 혹은 자신이 외부에서 저지른 악행들을 상자 속에 담아두고 공개적으로는 '깨끗하고 선한' 이미지를 관리한다. 악은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다. '악덕의 상자'가 비밀리에 모두 품고 있으니까.


3.

 지금 홍준표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더 넓게 말하면 '구(舊) 보수 세력'의 악덕의 상자다. 지금의 홍준표는 누가 봐도 너무나 지저분해 보인다. 나는 현 정부와 민주당의 '만물 적폐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의 홍준표를 보고 있노라면 '적폐'라는 단어는 정말이지 그를 위해 준비된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해 보인다. 홍준표는 현재 제 1 야당의 사실상 '총수'이지만 그 지위에 걸맞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존경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 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후보들이 자기 당 당대표의 지지연설을 보이콧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결국 홍준표는 '문재인 vs 홍준표' 구도가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를 포기했다.

'꼰대'의 상징이 된 그는 평상시 인상조차 악덕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4.

 그냥 보면 참 당연해 보인다. 홍준표는 막말로 국민 신뢰도를 자발적으로 깎아 먹고 있는 X맨이니까. 한 표가 더 급한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X맨의 신임과 지지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다. 당대표는 당의 얼굴인데, 지금 자유한국당은 자기들 얼굴이 가장 큰 골칫거리인 셈이다. 당장 지방선거는 대구, 경북을 제외한 15곳 전원을 압도적인 격차로 패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사실 대구, 경북도 안심할 정도의 격차가 못 된다. 최소 15:2, 거기에 재수 없이 대구나 경북 중 하나를 내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할 경우 자유한국당은 그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당내 구성원 모두가 전전긍긍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 다들 어떻게 손에 쥘 지푸라기 한 올 조차 없어 갓난아기 마냥 잼잼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자, 여기까지가 겉으로 보이는 자유한국당의 고민이다. 그러나 실제 속을 파헤쳐 보면, 자유한국당은 스스로를 그리 끝없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유한국당에는 마지막으로 움켜 잡을 지푸라기 한 올이 사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당의 얼굴, 홍준표다.


5.

 홍준표는 현재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걸레짝과도 같다.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다시 수건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좌파는 그를 경멸하고 우파조차도 '홍준표가 죄다 망친다!'를 외친다. 자연히 그가 완전히 장악한 자유한국당 역시 '홍준표 당'으로서 그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도무지 구제불능인 극우 정당,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매국' 정당이 되는 것이다. 이대로 나아가면 자유한국당에는 미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더러운 홍준표의 사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이 자유한국당이 진정 바라는 그림이다.


6.

  먼저 체크해 봐야 하는 부분은 홍준표가 정말 자유한국당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홍준표는 그 오랜 정치 생활과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중진 정치인으로서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리더십이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었다. 늘 그 스스로 자랑스레 말하듯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고 무당파였다. '홍준표 계파'란건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가 정치 리더로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도 지금이 처음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그를 진심으로 믿고 따를 이들도 없었고, 과거 자기 그룹 우두머리의 목을 친 것으로 스타가 된 그를 휘하에 두려고 했던 리더도 없었다. 홍준표가 지금의 위치에 이른 건 순수한 그의 개인 기량 덕이다. 쉽게 말하면 그는 개인기가 아주 우수한 정치인이지, 통솔력이나 정치력이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정치 인생의 늘그막인 이제 와서 어떻게 이렇게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됐을까? 대선 이후 갑자기 그 매력에 빠진 '홍파'가 생긴 걸까?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음에도 당내 중진들은 홍준표의 폭주에 아무런 제재를 하려 들지 않는다. 바른정당에서 돌아온 중진들도 마찬가지다. 김무성, 주호영, 김용태... 다들 말 한마디 없다. 김무성의 부하로서 얼굴 마담으로 원내대표를 하고 있는 김성태 정도만 책임감에 떠밀리듯 몇 마디 던졌을 뿐이다. 이들은 왜 진즉에 홍준표에 반기를 들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홍준표의 폭주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꽤나 개방적인 성격의 보수 정치인이었다


7.

 홍준표는 괴멸 직전의 새누리당을 대선 2위 달성을 통해 다시 살려 놓은 공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당을 '극우화'시켰다는 과도 있다. 이는 당을 일단 살려 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극에 치우친 이들일수록 보다 탄탄한 충성을 보장하니까. 당장 위태롭게 뿌리째 흔들리는 정당을 일단 유지시키기 위해 홍준표는 과감하게 오른쪽 일방 주행을 달렸고, 덕분에 정치 커리어 내내 쌓아온 '그래도 말 통하는 보수 정치인' 위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서 살아남는 데 성공했으나, 확장성 없는 극우 정당으로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확장성은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무엇보다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 대안이 되지 못하나?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왜 부끄러운가? 가장 큰 원인이 친박이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정국에서 소멸되었어야 하는 정당이다. 최소한 (당시)새누리당에 친박 의원들만 남겨둔 채 모두 바른정당으로 빠지거나 무소속으로 떠나서 후일을 도모하거나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권력 싸움, 자존심 싸움이나 치고받다가 결국 새누리당을 보전시키고 바른정당을 군소 정당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보수가 맥을 못 추는 근본 원인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친박을 자처하던 이들이 여전히 자유한국당의 중진으로 살아남아 있다. 이들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명분'을 틀어막는다. '탄핵의 키(key)'였던 바른정당(현 바른미래당)은 이들이 있는 한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을 수 없다. 즉, 보수는 이번 지선은 물론이요, 다음 총선에서 개박살이 날 그 순간까지 원칙상 통합될 수가 없는 것이다.


8.

 자유한국당은 앞으로의 확장과 생존을 위해, 이제는 결코 풀지 못할 저 골치 아픈 '명분'을 가려줄 거대한 어둠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홍준표라는 이름의 안대다. 그들은 홍준표에게 모든 '적폐' 이미지가 뒤집어 씌워지는 것을 방관한다. 홍준표의 당내 장악력이 커지는 듯 보일수록, 동시에 그의 이미지가 더러워질 수록, 언젠가 홍준표를 축출하는 날이 올 때 마치 엉겨 붙은 묵은 딱지를 한 번에 떼어내듯 자유한국당의 모든 부정적 이미지를 홍준표와 함께 일거에 소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 없는 막말을 뱉는 이가 홍준표요, 정권이 잘하든 못하든 억지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말 안 통하는 꼰대'가 홍준표다. 좌파는 경멸하고 우파는 혀를 차는 '노답' 정치인이 홍준표다. 이런 홍준표가 자유한국당의 상징이요 얼굴이 되었다. 홍준표는 당을 사당화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의 칼춤을 춘다. 홍준표가 추는 현란한 칼춤을 정신없이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자유한국당에 '친박'들이 잔존해 있었다는 사실은 서서히 잊혀 간다. 이제는 '보수' 유권자들에게 자유한국당이 쪽팔린 이유가 달라진다. 보수의 리더 답지 않게 기품 없고 천박한 홍준표 때문이다. 홍준표는 보수의 '악덕의 상자'가 되어 모든 악을 배 속에 쑤셔 넣고 있다.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그저 품을 수 있는 최대한의 악을 품고 영원히 정치계에서 사라지기 위해, 정신없이 악을 먹고, 또 먹여지고 있을 뿐이다.

40대 홍준표와 60대 홍준표


9.

 지방 선거에 출마한 자유한국당의 모 후보는 '홍 대표만 없으면 지지율이 10%는 오를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 말을 밖으로 내뱉어도 될 때가 온 것 같나 보다. 실제로도 홍준표가 사라지면 '품위'를 중시하는 보수 특성상 한국당 지지율이 어느 정도 오를 것이라 본다.  6월 5일 현재 기준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은 50%,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20% 정도다. '중도 보수'를 내걸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거의 5% 정도에 불과해 군소 정당인 정의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도대체 왜 존재하고 있는지 모를 민주평화당을 제외하고 나면 무려 25%나 되는 국민들이 여론조사에 응답을 하지 않거나, '지지 정당이 없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아마도 '샤이 보수'로 추정되는 이들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보수'로 생각해 민주당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이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기에는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고, 바른미래당을 지지하기에는 저 당이 뭐하는 당인지 몰라서 그저 관망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샤이 보수다. 자유한국당이 홍준표 축출이라는 마술을 부려 눈을 현혹시키고자 하는 대상들이기도 하다. 부끄러운 이유를 '홍준표'로 덮어 씌우는 것이다. 홍준표 축출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이 목격되면 그때부터는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논의도 가속화된다. 바른미래당은 '속아주는 척' 하며 과거의 동지와 손을 잡을 터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출신 호남 의원들은 거진 탈출하려 하겠으나, 어차피 바른미래당은 안철수가 서울 시장을 먹는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면 실패로 결정 나는 정당이다. '홍준표 축출'이라는 명분을 주고 새로 당권을 장악한 트로이의 목마 김무성이 문을 열어주면 마지못해 들어가는 척 흡수될 것이다. 그리고 이후 당명을 바꿔주면? 자, 이제 '새로운 보수' 시작이다.


10.

 알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거. 이런 바보 같은 뻔한 수작에 대중들이 속겠냐고? 글쎄, 나는 속을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속아줄 것' 같다. 대중들은 특히나 자신이 믿고 싶은 환상에 대해서는 일단 믿어주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것에 대해, 일단 속이면 대중들은 최선을 다해 그것을 믿어준다. 지금 보수 대중들은 자신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해도 괜찮다는 '최면'에 걸리길 원한다. 그들은 모두 위기감이 있다. 다만 체면상 나 보수요 외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준표를 제물로 소환될 새 옷을 입은 소환수가 사실 너도 나도 알고 있는 그 놈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두 눈 딱 감고 최면에 걸려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중도 보수, 샤이 보수들이 속아주지 않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김무성과 친구들, 너네도 싫다는 경우일 거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들이 김무성 시리즈들을 싫어해 주는 게 가장 좋겠다. 보수가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닳아빠진 걸레들을 깔끔하게 버리고 새 수건들이 충분히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한쪽 날개만으로 날개 될 국가가 단기간 위태로워질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정치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1.

 홍준표의 시끌벅적하게 길었던 독고다이 정치 생활은 지방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그 요란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그 마지막은 박근혜, 이명박의 그것과는 형식적으로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으나, 악덕을 뒤집어쓴 악덕의 상자로, 보수 적폐의 '상징'으로서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어쩌면 거의 같은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말이 통하는 보수로, 좌파 정치인이 인정하는 우파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던 그가 구태 극우 정치인으로 커리어를 끝맺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역사적인 정의파 검사였고, 처음 정치권 입문 당시 민주당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정치색이 진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홍준표를 보는 게 참 안타깝다. 지난 대선 당시 KBS에서 만들었던 3분짜리 <대선 주자 과거사 - 홍준표 편> 영상을 첨부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그의 변천사가 짧고 굵게 잘 드러나 있다. 젊은 시절 목소리, 인상과 지금의 목소리와 인상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https://youtu.be/3GDXlos-e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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