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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Aug 04. 2023

영화 <지옥만세> 리뷰 - 기도할 시간에, 뭐라도

스포 있음

[지옥만세] 2023.08.16 개봉

임오정 감독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 박성훈 출연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뿌리는 다르다. 나미는 가해 그룹 속 방관자였다. 그녀는 '가해와 연대하지 않은 죄'로 그룹에서 쫓겨나며 일순 몰락해 버린 피해자다. 선우는 처음부터 피해자였다. 전학 첫날부터 가해 그룹 우두머리인 채린(정이주)에게 찍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이유는 없다. 가해자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나미와 선우에게 현실은 지옥이다. 둘은 지옥 탈출을 꿈꾼다.

나미와 선우. 극 중 '쏭남'과 '황구라'로 더 많이 불린다

가해자라고 천국에 살진 않는다. 채린에게도 현실은 지옥이다. 잘 나가던 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났다.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딸을 버리고 '낙원'이라는 사이비 종교 해외 집단거주지로 떠났다. 버려진 채린은 낙원으로 따라가 엄마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 낙원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종교 시설 내 봉사 점수 1등을 달성해야 한다. 배점이 가장 높은 항목은 '피해자에게 받는 용서'다. 채린은 낙원행을 위한 위선을 쌓는다. 채린 역시 지옥 탈출을 꿈꾼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탈출 방식은 동일하다. '기도'다. 나미와 선우는 자살을 기도(企圖)하고 채린은 신에게 기도(祈禱)한다. 나미와 선우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데, 내 불행의 원흉인 가해자 채린은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댄다. 원통하다. 죽더라도 채린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난 뒤에 죽어야겠다. '복수' 일념으로 두 소녀는 기도를 멈추고 행동을 시작한다. 둘은 서울로 북진하고, 채린을 발견한다.


나미와 선우에게는 불행하게도 채린은 과거와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사이비 종교에 귀의하며 회개했다. 채린은 오히려 나미와 선우가 자신을 벌해주길 원한다. 그들의 징벌과 용서를 통해 채린은 비로소 지옥탈출이라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가해자의 회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다. 복수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그들이 가하는 징벌을 구원이라 말하며 벌해주길 애원한다.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구원을 선물할 수는 없다. 이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니 정말 사람이 달라진 건가 헷갈리기도 한다. 어린 두 소녀의 마음이 흔들린다.


둘의 마음을 다시 붙잡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옥 같은 현실이다. 마냥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듯 보였던 종교시설은 사실 그녀들의 지옥인 학교와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사이에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어른들에게는 위선과 차별이 있다. 채린은 여전히 여왕벌 노릇을 하며 따돌림을 조장하고 있다. 따뜻한 사람 같던 전도사 명호(박성훈)는 사실 따돌림과 차별의 본산이다. 이들의 실체를 알게 된 나미와 선우는 낙원행 신도가 발표되는 날, 채린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용서'라는 가장 큰 가점을 채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린의 낙원행이 결정된다. 채린의 구원이 손끝까지 다가왔다. 

채린과 명호. 명호 역은 <더 글로리>의 전재준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성훈'이 맡았다

구원이 결정되는 순간은 곧 몰락의 시작이다. 회개 없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회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회개는 위선이며 신성모독이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구원이 주어질 여지는 없었던 셈이다.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채린의 버팀목 명호는 감당하기 어려운 죄를 짓고 달아난다. 현실이라는 지옥을 '기도(企圖)'로 탈출하고 싶어 했던 그는 결국 또 다른 '기도(祈禱)'로 탈출하고 만다. '낙원'으로 갈 최우수 신도였던 채린은 하루아침에 '마귀'로 몰락해 광신도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납치 감금 된다. 


소녀들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탈출하고 잠시나마 통쾌한 복수의 즐거움도 누린다. 그러나 일련의 지옥 같은 여행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지옥 탈출을 기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설사 탈출하더라도 그곳에 낙원은 없다. 있더라도 기도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닐 터다. 상상 속 낙원에 비하면 현실은 누구에게나 참혹한 지옥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형이하학적 존재다. 기왕 살아내야 한다면, 만세다. 헤일 투 헬(Hail to hell). 지옥으로 돌아온 나미와 선우는 기꺼이 웃으며 현실과 맞선다. 비로소 성장이 시작된다. 지옥 탈출로 시작한 영화는 "웰컴 투 헬"을 외치며 막을 내린다.


★★★★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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