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빛 지음
「여행의 이유」는 김영하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반복해서 틈틈이 재밌게 읽었고 읽고 있다. 2019년 8월에 18쇄까지 인쇄기로 밀려나온 책이다. 몇 부가 팔린건지. 문학동네에서 펴냈으니 초판은 3천부, 2판도 3천부? 그럼..18쇄라면 18곱하기 3을 해야 되는 건가? 수포자라서 모르겠다. 윤홍균 작가님의 「자존감 수업」도 베스트셀러였다. 몇 판까지 찍어냈을까요? 모른다. 여행의 이유는 읽고 최소 4번 정도는 더 읽어야할 듯하다. 어려워서 반복하는 게 아니라 ‘솩’,‘솩’ 읽어지니 외워질때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자존감수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나’란 존재감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로 읽었고 사람들은 이걸 읽으면서 나름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것인가. 읽으면서 자존감이란 말의 의미도 잘 모르고 있었다.이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읽다 말았기 때문이다.「여행의이유」가「자존감수업」보다 실제 판매부수가 훨씬 많다면 그 이유는 충분히 알 거 같다. 조금이라도 읽기 전에는 자존감이라 하여 자존심의 의미인 줄 알았다. 이게 아니란다. 자존감은 어느 곳을 가든, 내가 남들보다 잘 났든 못 났든 ‘난 나일뿐. 난 나야’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상대방이 나의 변화를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줄 때의 의미가 자존감이란 말라고 한다. 자존감의 ‘감’자에 작은따옴표를 표기하기로 한다.
부서 사람들끼리 점심 먹으러 나갔을 때 윗 사람이 자장면을 주문하는 데 부장과 과장도 같은 메뉴를 시켰을 경우 이 장단을 맞추지 않으면 ‘이 사람 분위기 모르네’할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겉으로는 “개성적이라 보기 좋아요. 자신감 보기 좋아요” 그럴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의 출생자들은 이런 걸 싫어해서 그런 문화가 많이 깨졌다고 해도, 아직은 그럴 것이다. 조직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야지만 잘 적응하는 걸로 판단한다. ‘나’를 강조하는 걸 싫어하는 문화다보니.. 내면으로 이런 문화를 마음으로라도 거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존감 수업’을 읽고 위안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읽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걸수도 있겠다.소설책인가 에세이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손에 올려놨던 기억이 있다.
소제목이 여행의 이유 P165인데 윤홍균 작가님의 저작물 얘기가 나오니 기막힐 노릇이지요?
이 페이지 밑에서 3번째 줄부터 1번째 줄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한국은 개인주의화가 되어가는 사회고 미국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라고 한다. 전자는 남한테 인정받고 못 받고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지 않고 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나는 나 빛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의 의미다. 아직 미국에 가 본 적은 없으니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그들이란 자들은 나 자신에 대한 만족은 비중을 팍 줄이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하는 경우일 것이다. 승진을 해야 연봉이 올라가고 권한이 많아져서 결정권도 생기고. 이렇게 되려면 남한테 인정받아야 함은 분명하고 결과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그러니 ‘자존감’보다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첫 번째 읽을 땐 보이지 않았는데 2번째 읽으니까 보이는 부분이다. 수도권이나 시골이나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니? 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남들 눈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허례허식虛禮虛飾은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것은 상류층에만 국한된 게 아니더라.
‘나를 인정’에서 ‘타인의 인정’을 덧붙이는 게 필요하지만 「자존감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고려한다면 좀 상반된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