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빛 지음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는 글임
2021년 2월 넷플릭스에서 30일 무료 이용으로 〈인간수업〉을 봤다. 공중파방송에선 방송할 수 없는 드라마더라. 시즌1의 1회 중간쯤에 규리와 지수는 카페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신이 나온다. 지수는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한다. 테이블에 가서 놀란 눈으로 찾잔을 보는 지수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어른들 앞에서 젊은 사람이 술을 마셔야 하는 방법으로 지수가 아주 조그마한 찾잔을 손바닥으로 들고 몸과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마시는 걸, 규리는 밖에서 타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놀란 표정으로 보게 된다. 테이블로 돌아간 규리는 지수한테 카페가 처음이냐고 묻는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 빛은 초저녁에 종로에 있는 어느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블랙커피를 마시던 때였기에 제일 저렴한 걸로 주문했다.
스타벅스는 아니었는데 상점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 멋스러움과 다소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 보니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도피오 메뉴가 제일 저렴해서 시켰는데 받고나서 눈이 ‘땡’그래지고 말았다. 인간수업의 저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그때의 나 빛을 떠올리게 됐다. 나 빛이 주문한 건 리스트레토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상황이 너무 비슷했다. 아마 그때 메뉴에 ‘카노’가 없었던걸까? 지금 이것까진 기억하지 못하는데.. 카노가 없는 커피전문점이 있던가..지금 생각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지만 암튼 그랬다.
사람들과 있을 땐 이 에피소드를 말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의 차이나 생각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하면 현재 몸 담고 있는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이 곳에 일원으로 동화되지 못했다고 여기는 관습 비슷한 분위기 때문이다. 내가 마시는 차가 아니면 메뉴들을 모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는 정말 진했다. 마실땐 아주 조금씩 마셨다. 최소한 자리값은 다 하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주구장창 있는 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커피전문점에 가면 녹차라떼나 고구마라떼를 주문한다. 동행인들이 고르는 메뉴를 게의치 않으려고 한다. 만약 이 곳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다들 커피를 주문했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주문하기 편하게, 영수증 처리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한가지 메뉴를 일괄적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주문하더라도 마시는 건 포기할 듯하다. 아는 동생이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음식을 주문하면서 겪은 얘길해서 들었다. 동생은 간만에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팀장급되는 사람이 갑자기 다른 메뉴를 먹겠다면서 직원들 들으라고 크게 메뉴를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팀장 양 옆에 있던 사람들이 팀장을 따라서 같은 메뉴로 주문하더니 졸지에 남은 직원들도 같은 걸 주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자장면이 ‘다음 기회에’가 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식사에만 한정되는 게 아닌 거 같다.
도피오를 마시면서 혀끝에서 너무나도 쓴 맛을 느꼈고 지금도 그 맛을 기억하는 데 그때가 도피오를 주문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그 때까진 그냥 ‘카노’주세요 했다.
왜 커피를 못 마시냐고요? 난 나예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