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Infants, and Children (WIC)
2016년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임신 기간 내내 봐 왔던 (산)부인과 전문 의사가 있다. 이 의사 선생님의 오피스는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거리였고, 경력 많-으신 백발의 백인 의사였다. 오피스 입구에는 두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이 두 아들들도 의사 선생님과 같은 의대를 졸업한 모양이었다.
임신 초기와 중기에는 매 달, 임신 말기에 가서는 격주로, 또 임신 마지막 달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매번 나는 아기가 잘 자라고 있나 설렘과 기대에 부풀어 가곤 했는데, 부인과 경력 40년 이상의 이 선생님에게 나는 그저 "아기도 정상. 산모도 정상. 다 정상. 매우 매우 저 위험군 산모"일뿐이었다.
나는 갈 때마다 매번 두세 개 이상씩의 질문을 적어갔다 (특히 임신 중에 기억력이 왔다 갔다 하던 터라 질문을 적어놓지 않으면 절대 기억이 안 날 것이 분명했기에). 그런데 이 의사 선생님은 늘 내가 질문을 채 하기도 전에 진료를 후다닥 마치고 나가시려 하는 것이다. 질문 있다고 다급하게 붙잡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이 엉거주춤 문가에 서있으면 그제야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폰에서 질문들을 읽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들도 마치 "아 그래 너 이 질문할 줄 알았다. 자 여기 답!"하며 스피드 퀴즈 하듯이 속사포로 대답을 하는 동시에 문을 나서곤 하셨다.
매 진료에 불만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사 선생님 말마따나 모든 게 "정상"이어서 아기가 건강히 태어났으니 그래도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둘째를 가지게 되면 또 이 의사 선생님한테 갈 것이고 ...)
근데 막상 이 의사 선생님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아기가 태어난 후 두어 달 이후에야 생겨났다.
아기가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하여, 그동안 부인과 의사를 만나던 예비 엄마는 이제 아기 엄마가 되어 아기와 소아과 의사를 만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갔다. 모든 진료와 질문들을 서두르던 부인과 의사와 정 반대로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안 물어본 정보도 알아서 챙겨주시고 또 매 진료마다 아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위하는 마음이 역력히 드러나는 분이셨다. (알고 보니 동네 엄마들에게도 유명하신 의사 선생님이셨다.)
이 고마운 의사 선생님이 주신 가장 큰 정보중 하나는 연방 정부에서 저소득층 산모와 아기를 위해 지원해주는 WIC (Women, Infants, and Children)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 마디로 정부에서 산모와 아기의 먹을 것들을 무료로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아기 분유값이 지원된다니! 약대 다니며 학자금 대출이 엄청난 나에게 (4년 다 다니고 졸업하면 원금만 $200,000불 가까이 된다) 정말 고마운 소식이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WIC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집에 와서 혼자 검색해 보며 이 굉장한 프로그램을 나에게 전혀 언급 안 해줬던 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괜히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 WIC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모유 수유 중이었다 (모유 + 분유 혼합). 그래서 쿠폰 바우처에는 엄마인 나를 위한 쿠폰들과 아기를 위한 쿠폰들이 따로 들어있었다. 그런데 아기가 3개월쯤 되었을 때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그냥 분유만 먹이기로 결심했고, WIC 오피스에 이를 알려야 했다. 그 이후로 WIC에서는 아기 분유만 지원이 되었다. 아기가 4개월쯤 되었을 때에는 이유식도 아기 음식 품목에 추가되었으며, 점차 아기가 자람에 따라 위한 과일과 시리얼 등도 추가되었다. WIC 프로그램은 아기가 5살 어린이가 될 때까지 쿠폰 바우처를 지원해 준다.
WIC 오피스들은 많으면 한 도시에도 2-3개씩, 없어도 두세 도시에 1개 정도는 있는 모양이다.
맨 처음 예약은 전화를 통해서 한 후, 아기를 데리고 가서 아기의 키와 몸무게를 재고 WIC 직원과 1시간 정도의 상담을 한 후 아기의 발달 과정에 따라 필요한 음식들을 살 수 있는 쿠폰 바우처(voucher)를 받게 된다. 보통 3개월치 쿠폰 바우처를 한 번에 주는데, 따라서 3개월에 한 번씩 WIC 오피스에 직접 가 새 쿠폰 바우처를받아와야 한다. 보통은 엄마 혼자 가서 쿠폰만 받아오면 되지만, 1년에 한두 번은 아기를 직접 데려와 WIC 직원과 1시간 여의 상담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각 쿠폰들은 쓸 수 있는 날짜, 교환할 수 있는 음식 품목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엄마가 가족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겠다고 WIC 오피스에 미리 알려놓지 않는 한, 쿠폰 바우처는 엄마 본인만 사용할 수 있다.
웬만한 식료품 체인점(WalMart, Vons, Albertson's, Cardenas 등)에서 쿠폰을 다 받아준다. 하지만 간혹 품목에 대한 제한이 이상하리만치 까다로워서, 바리바리 골라 온 음식들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계산이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직원이 "아 이건 WIC에서 지원을 안 해주는데요"라고 알려주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WIC 쿠폰은 곡식류가 들어간 아기 이유식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오직 과일만, 혹은 채소만 들어있는 이유식만 지원하기 때문. 또 엄마의 음식 중 "땅콩버터"를 지원해주는데, 반드시 땅콩이 씹히는 땅콩버터이어야 한다.) 이때의 억울함과 민망함은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 줄이 길수록 배가 된다.
어지간한 WIC 프로그램의 고수(!)가 아니고서야 매번 실수 없이 단 한 번에 쿠폰이 지원하는 모든 품목을 사 내기란 어렵다. 또 쿠폰을 쓸 때 한 쿠폰에 쓰여있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사지 않은 품목들은 "포기하는" 품목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3월의 쿠폰이 분유 7통을 지원한다면, 7통을 한 번에 교환해야 한다. 식료품점이 만약 3통의 분유만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4통은 교환받을 수 없게 된다 (사실 "raincheck"이라고 해서 식료품점이 나머지 4 통도 주게끔 제도는 되어있지만, 많은 식료품들은 이걸 귀찮아하고 되려 엄마들에게 "여기 지금 있는 게 다야. 나중에 다시 오려면 그래도 되고."하며 엄마를 아쉬운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엄마들의 고충을 아는 착한 사람들이 장사를 시작하였나니, 엄마들을 위한 "WIC 체크만 받는" 식료품점들도 있다. 내가 다니는 WIC 오피스 바로 옆에도 고맙게도 그런 식료품점이 하나 있다. 이름이 모든 걸 설명해주는 "Mother's Nutritional Center."
일반의 식료품 체인점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이지만, 이 작은 상점은 그래도 WIC 체크로 살 수 있는 모든 음식들을 다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WIC 이용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이 사람들은 현금을 내고 산다), 그래도 본래 목적이 WIC 체크 이용자를 위한 것이니 만큼 모든 직원들이 WIC 쿠폰 바우처 사용 절차와 주의점 등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다.
오늘 받은 3월 WIC 쿠폰들로 이만큼 교환해 왔다. (내가 먹을 과자 두 개, 또 쿠폰으로 커버되지 않는 아기 과자 한 개를 따로 골랐기 때문에 $4불 정도는 현금으로 냈다. 왼쪽에 "Cash"라고 쓰여있는 품목들이 그것들이다.) 현금으로 낸 품목을 제외하고도 사실상 ~$150불어치의 아기 먹을 것들을 무료로 얻어온 것이다.
한 달에 한번씩 쿠폰을 쓰지만, 사실 아기가 먹는 양이 많아 그런지 2주 반에서 3주 정도 지나면 분유도 아기 음식들도 다 떨어지곤 한다. 그러면 나의 사비로 모자란 음식들을 더 사 와서 먹인다. 그래도 한 달치 음식 사야 할 것 1주일 정도 분량만 사면 되니 WIC 프로그램 덕분에 경제적 부담을 많이 더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