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재울 때 필요한 노래

엄마표 자장가? 클래식? 오르골 음악?

by 장군

작년 5월, 어느 따뜻한 봄날. 오후 2시경 아기가 병원에서 태어나고 난 후 그날 밤은 진짜로 "엄마"가 된 나, 이제 "아빠"가 된 나의 남편, 그리고 우리를 "부모"로 만들어준, 드디어 세상에 나온 우리 아기 이렇게 셋이서 한 방에서 자게 된 첫날이었다.

무통주사 때문이었는지, 진진통과 출산을 2시간 만에 몰아서 하고 난 뒤의 후유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그날 밤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뻗어 잤고, 잠귀 밝은 나의 남편만 밤새 선잠을 자며 간호사들이 아기에게 이것저것 테스트해보는 것을 잠결에 지켜보는 동안 그렇게 우리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아기와 엄마에게 별 문제가 없으면 자연 분만인 경우 출산 24시간 이후 (제왕 절개였다면 출산 48시간 이후) 퇴원을 시키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갓 태어난 엄마와 아기를 쫓아(?) 낼 수 있냐고 속으로 야박하다 생각하던 나였는데, 막상 아기를 낳은 다음날 2시쯤 되자 집에 빨리 가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나의 간절한 마음대로, 병원에 들어올 때 둘이었던 우리는 이제 셋이 되어 오후 3시쯤 퇴원할 수 있었다.

(사실 병원에 들어올 때도 셋이긴 했다. 시어머니도 내 손 꼭 붙잡고 같이 와주셨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 늦은 저녁 아기와 나를 보러 병실에 잠깐 들리셨던 시아버지와 함께 시어머니는 집에 가셨다.)


그날 밤, 우리 방에서 아기를 처음 안고 재우려는데 뭔가 어색했다. 먼저 아기는 낮 동안에도 수시로 자다 깨다 해왔기 때문에 굳이 밤에 재운다고 뭔가 막 다르거나 새롭진 않았다. 임신 때는 밤이 되면 그냥 피곤한 몸 이끌고 침대로 스르륵 들어가서, 옆으로 돌아 누워서 잠이 들면 그만이었다. (똑바로 누워 자면 무거워진 아기가 배와 척추를 눌러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제 엄마가 되었다고 내가 아기를 안고 재우려고 한다는 게 꿈 같았지만, 또 내 팔에 안겨있는 이 아기의 존재감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자장가를 불러주셨는데. 나도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러 노래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 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 구슬 금 구슬

내리는 귀한 밤

잘 자라 우리 아가


그런데 이 노래, 생각했던 것보다 은근히 고음이다.

"달님은 영창으로" 부분에서 목이 갈라졌다.

그래서 시도한 조금 더 낮은 음의 노래.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노래는 만만 한데 가사가 "파도가 들려주는"인지 "바다가 들려주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또 왜 엄마는 아기를 혼자 두고 나갔나? 저거 불법 아닌가?

팔 베고 잤다는 게 팔을 베었다는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괜히 섬뜩하지?

혼자서 자꾸 딴생각하다가 결국 노래를 바꾸기로 했다.


아기를 보면 나도 몰래

뛰어가서 안기고 싶어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음- 음- 사랑이죠


이 노래는 사실 한국에 살 때 자주 만났던 어린 친척동생이 알려준 노래인데,

원래는 "엄마를 보면 나도 몰래"로 시작하는 노래이다.

근데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아기에게 불러주고 싶었었다.

근데 맨 마지막 "사랑이죠"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감격에 북받쳐 눈물이 나고 말았다.

비로소 내가 엄마로서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 것이다.

한국말로 혼자서 이 노래 저 노래 불러주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남편이 나를 지켜보는 와중에 아기는 잠이 들었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이날 밤과는 달리, 낮동안에 2-3시간에 한 번씩 아기에게 모유 물리고, 다시 재우 고를 하루에 여덟 번씩 반복해야 하다 보니 다음 며칠간 나의 몸과 마음은 피로에 찌들어갔다.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줄 여유도 없이 아기를 가슴팍에 얹은 채로 같이 잠이 들거나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유투브(YouTube)나 스포티파이 (Spotify) 같은 애플리케이션으로 노래를 틀어놓는 것.


무슨 노래를 틀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대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면 늘 듣던 노래들이 생각났다.

Secret Garden 이라는 북유럽 아티스트(듀오)의 음악인데,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아일랜드/노르웨이 풍의 특유의 분위기가 맘에 들어 줄곧 듣던 노래들이었다. 그중 "Song from a secret garden"이라는 노래는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들어왔던 익숙한 노래였었다.

Song from a Secret Garden


대학생 때 자주 틀어놓고 공부했던 비디오는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담은 바로 이 비디오 (아래).

중간중간 아티스트들 인터뷰가 있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게 그들 특유의 표현법이 귀에 감기는 독특함이 있다.

Secret Garden의 23개 노래를 한 동영상에서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잔잔한 노래들은 자장가 노래로 딱 좋지만 중간중간 신나는 노래들이 나오면 아기가 깰까 조마조마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장가 노래를 더 찾는 여정은 이어지게 되는데 ...


스포티파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아기 자장가 플레이 리스트를 찾던 도중, 스튜디오 기블리(Ghibli)라고 써있는 리스트를 발견했다. 무심코 눌러 틀어놨는데 이게 웬걸, 익숙한 멜로디가?

알고 보니 기블리는 우리에게 흔히 "지브리 스튜디오"로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였던 것이다.

유투브에서 비슷한 노래로 묶인 동영상을 찾아봤다.

정확히 이 동영상에 있는 음악들이랑 스포티파이 애플리케이션에 있던 플레이 리스트의 음악들은 조금 다른 구성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아기 이 음악들로 지난 8-9개월간 잘 자왔다. (스포티파이에서 찾은 노래들은 오르골 소리로 되어있는 음악들이라 아기 재우기에 정말 딱 좋은 음악들이었다.) 차에 타서도 핸드폰으로 연결 해 이 음악들을 틀어주면 막 울던 아기가 곧잘 잠에 빠져들곤 했다. 어디 쇼핑 나가서나 음식점 가서도 유모차 안에서 우는 아기 옆에 핸드폰으로 이 노래들을 틀어놓으면 어느새 조용해지고, 또 잠에 들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밤. 뭔가 이 노래들로 아기를 잠에 대한 세뇌를 시키는 게 아닐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아기는 윈터솔저가 아닌데 ...)

지난 몇 개월간 아기에겐 편한 잠을, 엄마에겐 편한 밤을 선물 해준 지브리 스튜디오 노래를 뒤로 하고 뭔가 다른 노래들을 시도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또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지브리로 돌아가면 되는 거지 뭐 ...)


그래서 그제 밤과 어젯밤 스포티파이 애플리케이션에서 새로운 노래 리스트를 찾아봤다. 클래식 노래로 된 자장가 리스트를 틀어줘 봤다가 (언제나 효과 만점), 문득 약대 1학년 때 공부하면서 들을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아티스트가 생각났다. 노래는 좋으나 노래가 너무 잠잠해 나를 곧잘 잠에 빠져들게 하곤 했던 그분.

바로 엔야(Enya)의 노래들이다. 어느 정도 아기의 수면 패턴이 잡혀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노래들도 아기 재우는 데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이 분 노래들은 노래도 잠잠, 목소리도 잠잠, 코러스도 잠잠, 그래서 배경음으로 또 아기 재우기 용 노래로 딱 좋은 노래들이 아주 많다. 잠잠한 것 치고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만 있지도 않아서 뭔가 아기 정서 발달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될 것만 같은 노래들이다.

공부할 때는 쥐약이요 아기 재울 때는 명약이로다


지금도 핸드폰으로 엔야의 노래를 틀어놓고 아기는 아기 침대에 재우고서 1층에 나 혼자 내려와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어? 아침 7시 30분, 아기가 일어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안 일어나고 있네? 노래 덕인가?)

아기가 점점 더 자라면서 더 많은 노래를 함께 듣고, 또 같이 따라 부르고 하겠지만, 지금으로써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좋은 노래 찾아서 잘 들려주고 아기가 그만큼 예쁜 생각 예쁜 기억 많이 가지면서 좋은 꿈 꾸며 잘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기가 잘 자고 있나 올라가서 한번 살펴보고 나서 출근할 준비를 해야겠다.


+ 제목 부분 배경 이미지의 출처는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로 나온 여기


+ 요즘 또 밀고 있는(?) 엄마표 자장가는 바로 이것 (나도 모르게 개사 해서 부르고 있다는데에 500원 걸지!):

넓고 넓은 밤하늘에 누가누가 잠자나

하늘나라 아기별이 깜빡깜빡 잠자지

깊고 깊은 바닷속에 누가누가 잠자나

바닷물엔 고기들이 살랑살랑 잠자지

포근 포근 엄마 품엔 누가누가 잠자나

우리 아기 예쁜 아기 새근새근 잠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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