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을 아기와 보냈다

엄마가 로테이션에 늦게 출근 한 사연

by 장군

아기가 7개월 무렵이었던 작년 12월 말 즈음, 예방 주사를 맞히러 소아과에 갔던 날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주에서 운영하는 건강 보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임신기간 내내 (하혈이 있어서 새벽에 병원에 급하게 갔던 날 조차도), 아기를 낳을 때도, 아기 정기 검진 갈 때도 사비로 한 푼 들어갈 일이 없었다. 다만 단점은 정기 검진 같이 간단한 체크업 가는 데에도 짧게는 40 여분, 길게는 2시간 이상 소아과에 앉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 날도 아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자꾸 머리랑 목 주변이 평소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말을 했더니 손으로 스윽 만져보고 "난 잘 모르겠는데. 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하길래 난 또 그런가? 생각했었다.

드디어 아기 차례가 되어서 평소대로 아기 키 재고 몸무게 재고 체온 재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보는가 싶었었는데. 이게 왠 걸 아기가 미열이 있다면서 오늘 주사 못 맞는다고 간호사가 그러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을 결국 만나기는 했는데, 간호사가 미리 일러준 대로 아기 주사는 못 맞고 대신 아기가 왜 열이 나는지 답을 알아왔다. 이가 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당시 아기도 잇몸이 간질간질했는지 밤에 잠들기 전에 내 새끼손가락을 물고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기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주사 맞으러 소아과 가기 바로 전 날 밤 아기 잇몸이 평소보다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난주 내내 아기 코에서 맑은 코가 흘렀었다. 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뭔가 입 주변이 부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지금까지 이가 4개 났는데, 이가 날 때 상황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이가 지금 또 나고 있나 보다 생각했었다.

주말이 되면서 흐르는 콧물은 멈추었는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목에 가래가 낀 것처럼 그렁그렁 하는 소리도 났다. 새로 나는 줄로만 알았던 이는 아직 보이질 않았다. 그냥 아기는 감기에 걸려서 콧물 나고 기침하고 그랬던 것이다. 특히 자는 동안 코로 숨을 못 쉬고 입으로 쉬어서 그런지, 새벽에 배고파서 칭얼대며 일어날랑 말랑 하는 아기를 들어 안으면 아기 입에서 마른 냄새가 났다.

아픈 아기가 안쓰러워서 최대한 울지 않게 하려고, 평소 같으면 자기 침대에 놔두고서 나 혼자 1층으로 내려가 분유 타 오곤 할 텐데 어제랑 오늘은 아기를 안고 같이 내려가서 분유를 타 줬다.

오늘 아침 5시쯤 아기에게 첫 분유 먹이면서 내심 불안했다. 왜냐면 어제 아침 첫 분유를 먹고 나서 아기의 트름이 결국 기침으로 이어지더니 아기가 분수토를 했기 때문이다. 왠지 내가 안고 트름을 시키면서 배를 눌렀던 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내 무릎에 아기를 앉혀놓고 등을 살살 만져주며 트름을 시켰다. 트름을 잘 하나 싶더니, 어제처럼 가래 섞인 기침을 하고, 결국 또 분수토를 했다.

안돼 아기야 아프면 안 돼. 아기 옷 갈아 입히고, 나랑 남편 사이에서 재운 뒤 당장 로테이션하는 곳의 약사 프리셉터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기가 이틀 연속으로 분수토를 해서 오늘 의사 만나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오늘 꽤 늦을 수도 있는데 그만큼 시간을 메꾸겠다고.


소아과가 아홉 시에 문을 여는데, 가기 전에 아기 아침밥을 먹여보려고 해도 도통 먹지를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아침 7시 반 즈음 거버 한통을 뚝딱 비웠을 텐데. 바나나 한 덩이를 떼어서 내가 잡고 한입씩 먹였더니 그건 조금 먹었다. 아홉 시가 딱 되어서 소아과에 전화를 해 봤더니 지금 오면 사람이 많아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11시에나 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로테이션에 너무 늦게 될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릴지언정 지금 가겠다고 했다. 오는 환자들 막지는 않는 착한 소아과 직원은 그러라고 했다. 부랴부랴 시어머니와 함께 아기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병원에는 9시 30분쯤 도착했다. 그래도 아침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게 오후 시간에 비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한 30-40여 분을 기다린 뒤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검진을 한 의사는 귀 감염도 없고 목도 붓지 않은 상태라며 아기의 콧물과 가래가 기침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씩 코 뚫는 스프레이 (소금물이 분사되는 nasal spray) 써주고, 아기가 탈수를 겪지 않도록 약국에서 파는 이온 음료(Pedialyte)를 주라고 했다.

아기 있는 집에 없는게 이상한 OTC (over-the-counter; 처방전 없이 살수 있는) 약품들

아기가 많이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또 아픈 아기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그걸 핑계로 아기와 아침에 더 오랜 시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또 로테이션 시작하게 되면서 평일에 아기랑 시간 보내기가 참 힘든데, 평소에 같이 지내지 못하는 시간에 아기를 보고 있는 게 괜히 새롭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거버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아기와 거버를 먹이고 계신 시어머니를 뒤로 하고 로테이션에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아기 먹일 거버 몇 개와 (오트밀이 섞인걸 요즘 먹이고 있다) 아기 우유병 닦는 솔 두 개, 그리고 아기를 위한 이온 음료를 사 왔다.

로테이션 끝나고 집에 오니 시어머니 말씀이 아기가 오늘은 낮잠을 전혀 안 잤다고 그러셨다.

그 말을 인증이라도 하듯, 아기는 오늘 밤 평소보다 일찍 곯아떨어졌다.

로테이션에 늦게 간 대신에 못다 한 일을 집으로 조금 가져왔는데, 엄마가 그 일들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착한 아기이다.


+ 약 사진들은 여기여기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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