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알이 해석: 한국어 vs. 스페인어

같은 옹알이여도 듣고 싶은 대로 들립니다

by 장군

3개월 전, 1월의 어느 날. 2주간의 짧은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동생에게서 불현듯 문자가 왔다.

(색깔 구분: 남편 동생의 문자 메시지, 나의 문자 메시지)


- You won.

- $5,000?

- 아니, 근데 애기가 papa 보다 "mama"라고 먼저 말했어

- 우와 진짜?? 그 전부터 연습 하긴 했었지 애기가

- 응. 오늘 보행기 타고 걸어 다니다가 울면서 확실하게 "mama" 그랬어.


이때 난 속으로 '근데 애기가 그동안 연습하면서 내는 소리들 들을 때마다 어설픈 그 소리가 그래도 "엄마"로 들리던데. 진짜 "mama" 이랬나?' 궁금했었다.

("mamá"는 스페인어로 "엄마"이다.)


- 그래도 애기가 스페인어 먼저 한 셈이네. 한국말로 "엄마" 한 게 아니니. I guess we all won. 그래도 애기가 처음으로 정확하게 말하는 순간을 못 봐서 좀 슬프다.

- T_T

- 집에 7시 반 전에 가도록 해볼게!


그때부터 였던가. 같은 한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듣고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와, 스페인어가 첫 언어인 시가족들은 서로 다른 것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이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일이 있었다.


아기가 4개월이 된 무렵의 어느 날부터 이유식을 조금씩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어머니가 언제부턴가 아기용 과일 퓨레, 채소 퓨레 등을 먹여오고 계셨던 것이다. 워낙 내가 낮 시간 동안 집에 없고 학교에서 수업 듣고 공부하느라 집에 저녁 늦게에나 오고 그러니 낮 시간 육아는 온전히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나마 주말에는 내가 무슨 행사가 있어서 나가지 않는 한 아기와 나 둘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아기 음식 먹이기는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다. 워낙 활동량이 많은 아기라서 그런지 음식 먹을 때마다 투정(?) 부리지 않고 입 쫙쫙 벌리며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난 진짜 엄마 미소 한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기에게 아기 음식 (거버) 먹여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냠냠냠" 소리를 내며 떠 먹여주고, 아기가 먹는 동안에는 "맛있어?" 물어보는 게 거의 매 숟가락마다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뭔가 주중 내내 시어머니의 스페인어를 많이 들었을 아기에게, 엄마의 언어인 한국어도 자꾸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맘 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기저귀를 갈아 줄 때도 (기저귀 갈자! 어디가? 도망가지 말구 이리 와 빨리.), 옷을 갈아 입혀줄 때도 (팔 빼주세요! 아이구 잘하네. 이제 이쪽 발, 옳지!), 목욕시킬 때도 (아기 기분 좋아? 목욕하니까 따뜻하지?), 음식 먹일 때도 (냠냠냠! 맛있어?), 분유 줄 때도 (아이구 아기 잘 먹네. 배고팠구나. 맛있어?) 비슷한 말 반복해주면서 자꾸 아기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 해온 편이다.


처음 "mama"라고 말문을 튼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아기가 배고플 때 "냠냠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 아기 음식 먹다가 주는 사람의 행동이 좀 느려진다 싶으면 "냠냠냠!" 큰 소리 내기도 시작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밥 먹는 중간중간에 아기가 "마-" 하고 소리 지르는 때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가족들의 해석이 갈린 것이다.

밥 먹일 때마다 늘 "냠냠냠. 맛있어?"를 세트로 가르쳐오던 나는 당연히 아기가 "맛있어?"를 따라 하려고 그 앞 음절인 "마-"를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한국어를 모르시니) 당연히 그렇게 듣지 않으시고, 아기가 더 달라고 표현하는 거 같다고 하셨다. 스페인어로 "더"는 "más"인데, 스페인어를 하시는 집안 어른들께는 아기의 "마" 소리가 꼭 "más"를 흉내 내는 것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말이 되었다. 또 아기는 시어머니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도 하니. 1월에 엄마 찾을 때도 "엄마" 부른 게 아니라 정말 "mamá" 한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니면서 많이 가까워진 교수님들 중 한 분은 두 자녀를 두신 한국 분이신데, 언젠가 내가 아기 언어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어 교육 어떻게 시키셨는지. 유치원 보내기 전까지 가족들이 집에서 한국어만 썼는데, 유치원 가자마자 영어는 일주일 만에 적응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에 반비례하게 한국어를 또 그렇게 빨리 까먹더라고 하셨다. 이 조언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 1. 아기에게 영어는 굳이 집에서 안 시켜도 어차피 학교 가면 다 배운다. 2. 아기가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다 잘하게 하려면 정말 정기적으로 꾸준히 시키는 방법밖에 없겠구나 ㅠㅠ. 아기가 싫어하고 질려하지 않는 방법으로 어떻게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꾸준히 노출시켜줘야 할지 벌써부터 이른 고민이다.


+ 제목 배경 사진의 출처는 구글 이미지에서 "방글이 인형" 검색으로 나온 이 사이트 이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방글이 인형이 생각나 검색해 봤는데 이게 나올 줄이야 ... 건드리면 "방글 방글 방글 방글, 엣취, 엣취" 하던 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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