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박수 쳐라

(D+298) 드디어 박수 치기를 배운 아기

by 장군

지난 주말이었다. 임신 때 사다 놓고 줄곧 읽던 임신/육아 책 한 권이 있었다. (남편이랑 같이 LA에 있는 한국 서점에 가서 바가지 쓰고 사온 책이다. 책 사러 간답시고 LA까지 나간 김에 한국 분식이 갑자기 땡겨서 김밥이랑 떡볶이 잔뜩 사가지고 오는 길 차 안에서 거의 다 먹어치운 기억이 갑자기 난다.) 아기가 이제 막 9개월-10개월 차에 접어든 지라 지금쯤 또래 아기들 발달 상황은 어떤가 궁금해 오랜만에 책을 뒤져봤다. "이 시기 아기와 함께 하면 좋은 놀이" 코너를 보는 데 내 눈을 딱 사로잡은 부분이 있었으니 -- 아기와 짝짜꿍 연습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책을 덮고, 옆에 있는 아기를 안고 1층으로 내려왔다. 아기를 내 무릎에 앉히고 짝짜꿍 연습을 시켜볼 참이었다. 옆에서 컴퓨터 하고 있던 남편의 형이 "아직 그건 좀 이르지 않나?" 지나가는 말로 무심코 던진다. "한국 책에서 봤는데 지금쯤 적정 시기래! 자꾸 시켜봐야지"하고 대답하니 "그런가?" 하고 게임을 계속한다.

아기 두 손을 잡고 박수치는 모양으로 놀아주다가 내가 손을 놓으면 아기는 내 손등을 자꾸 때렸다. 박수 치는 소리는 나는데 모양은 그게 아니잖아. ㅠㅠ 아직 이르긴 이른 건가? 싶어서 그만두었다.


어제 로테이션 끝나고 집에 4-5시 조금 넘어서 왔는데, 시어머니가 내일은 몇 시쯤 올 거냐고 넌지시 물어보셨다. 원래 내 학교/일 스케줄 관여 안 하시고 나 필요한 만큼 밖에서 지내도 뭐라고 하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거 같았다. "비슷한 시간에 올 건데 왜 그러세요?"하니 머리 자르러 미용실에 가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늦지 않게 일찍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조금 더 일찍 올 거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냥 여느 다른 날처럼 5시 조금 전에 집에 도착했다. 아기랑 시어머니가 거실 소파에서 놀고 있었다. 시어머니께 머리 자르러 가실 거냐고 여쭈니 좋아하는 미용사가 다음 주 금요일까지 예약이 꽉 차서 오늘 못 가신다는 것이었다. 아기는 옛날 언젠가 자기 아빠가 직접 골라 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블록들 10개가 한 통에 담겨 세트로 파는 장난감인데, 이 블록들이 아기가 손에 쥐기 딱 좋은 크기라 요즘 아주 잘 가지고 논다. 그런데 아기가 벌떡 일어서 소파에 배를 대고 서더니 이 블록들을 하나씩 집어 소파 뒤켠으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내 얼굴을 보셨는지 시어머니는 "괜찮아~ 자주 이래. 이따가 다 던지면 소파 옮겨서 다시 주워 담으면 돼"라고 하셨다. 어느새 블록 10개를 다 떨어뜨린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갖고 놀게 없으니 뭘 하려나?


그때였다. 아기가 갑자기 생뚱맞게 박수를 쳤다. 시어머니가 넉살 좋게 "하나!"하시며 박수를 한번 치셨다. 아기가 또 따라서 쳤다. "둘!" 하시니 아기는 박수 네 번을 쳤다. 아이고 얘는 언제부터 박수를 친 거지? 기특하면서 매일 아기랑 붙어있으며 아기의 "처음"을 매번 놓치는 거 같아 조금 미안했다. 그렇게 시어머니랑 나랑 아기랑 신이 나서 박수를 막 서로 치다가,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내가 막 웃었다. 아기가 박수 칠 때 우리가 치면 그걸 보고 아기는 더 신나서 박수를 친다. 생물 시간에 배운 양성 피드백 마냥 아기가 지질때까지 그렇게 박수의 행렬은 쭉 이어진다. 아기가 언제부터 박수 치기 시작했냐고 시어머니께 여쭈었다. 시어머니 대답하시기를, "몰라, 지금 막 치는데?"

시어머니도 나처럼 아기의 박수를 처음 목격한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내게 아기가 새로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고 얘기하시면서 옆에 있는 아기 담요를 아기에게 주셨다. 그랬더니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담요를 가져다가 자리 머리 꼭대기까지 덮고서는 까꿍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옆에서 "어디 숨어봐 예쁜 아기야!" 스페인어로 말하시고, 나는 "아기 어디 갔어? 아기야!" 한국어로 말하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 또 까꿍놀이를 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아기가 이것저것 배우고 행동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몇 시간을 그렇게 박수 치고 까꿍 하고 놀더니 오늘 잠에 들땐 다른 때보다 덜 칭얼거리고 잠이 푹 들었다. 아기는 자기 침대에서 자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된 후의 첫 글을 쓰는 중이다. (이 전의 모든 글들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에 써서 서랍장에 보관해뒀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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