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안의 큰 딸이자 첫째 딸이다. 우리 엄마는 나를 27살에 낳으셨다. 학창 시절 난 은연중에 나도 첫아기를 27살에 낳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가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사람들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아기가 생겨 학업이나 일을 중단해야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반대로 아이를 십 수년간 원해도 가지지 못한 부부들도 만나봤다. 미국으로 이민 오고, 어느덧 나도 결혼을 하고,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도 소중한 우리 아기가 내게로 와 지난해 태어났다. 문득 생각해보니, 아기를 낳은 작년 나는 한국 나이로 27살이었다. 우리 엄마처럼 나도 나의 첫아기를 27살에 낳은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첫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자기소개를 하시며 성함과 함께 자신의 나이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가 선생님의 첫 담임 반이라고 말씀하시던 예쁜 그 선생님은 27살이라고 하셨다. 11살이었던 내 나이에 2를 곱한 것보다도 5살이 더 많은 나이었다. 선생님은 어른이었다. 27살은 어른이고 11살은 어린이였다. 그렇게 27살은 오랫동안 내게 "어른 나이"로만 생각이 되었었는데, 내가 벌써 27살이라니. 나는 어른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고, 게다가 엄마이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 오기 직전에 같은 반이었던 또 다른 친구가 있다. 그리고 미국 와서 미국 고등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세 번째 친구가 있다. 아무 접점 없을 것 같은 이 세 친구들과 나, 우리 넷에겐 지금 아주 큰 공통점 하나가 있는데 바로 같은 해(작년)에 첫아기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네 아기들 모두 같은 성별이다. 같은 나이에, 같은 해에, 같은 성별의 아기를 낳게 된 네 엄마는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어 매일매일 수다를 떤다. 살아온 방식도, 지금 사는 나라와 도시도 모두 제각각인 우리들은 (시차 때문에) 각자 편한 시간에 밀린 카톡 답변을 몰아하고, 각자 할 말도 몰아서 하는 편이지만 또 그 나름대로 우리 카톡 방만의 암묵적인 규칙을 즐기며 서로의 육아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27살에서 28살이 된 사이 우리 아기도 어느덧 9개월을 지나 10개월째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 한 살도 안된 아기 넷을 키우는 네 엄마이지만, 그 짧은 시간도 어느새 훌러덩 지나가 버린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네 아기들이 개월 차수가 조금 나서 서로 조금 더 커 보이고 덜 커 보이고 하지만, 시간이 금방 흘러 어느새 아기들이 1-2살 되고 나면 다들 비슷비슷할 것 같다. 그때 되면 이 네 엄마들은 또 얼마나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을지 내심 궁금하다.
네 명의 친구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야매 엄마”라고 부르곤 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씩 육아할 때에 편법을 쓰곤 하기 때문이다. 친구 엄마들 중엔 애기 분유를 타 줄 때 물을 끓여서 몇 도로 식히고 타 준다고 그랬는데 나는 애기 2개월 차 때부터 그냥 코스트코에서 파는 물병 따서 분유 타 주고, 기분 내킬 땐 전자레인지에 데워 주고 아닐땐 또 그냥 주기도 하고 그랬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에 대해 굳이 변명하자면—친정 엄마는 늘 데워서 주라고 하시고, 시어머니는 애기 버릇 들어서 나중에 나갈 일 있게 되면 찬 우유 안 먹는다고 데워주지 말라고 하셔서 그 장단 중간쯤 맞추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것이다.)
이유식도 한 번도 직접 만들어 준 적이 없고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본인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거버 이유식만 먹고 자라셨다고 한다... 위안 아닌 위안이 된달까 ㅠㅠ) 학교 다니면서 수업 끝나고 공부 더 하고 오느라 아기 자는 시간 맞춰 오면 다행. 저녁 8시 정도면 잠드는 아기인지라 어떤 날은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우유 한번 먹인 게 아기를 본 전부인 날도 있었다.
그래도 같이 사는 시가족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원으로 아기에게 너무 미안해하지만은 않으면서 내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음이 매일 감사하다. 2019년 5월 학교 졸업하고 나면 또 일 한답시고 바쁘겠지만 그래도 그때 되면 최소한 집안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될 테니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울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그만큼 시간이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또 그와 동시에 삶에서 지고 가야 할 짐(= 책임감)이 하나씩 늘어난다고. 작년 27살의 나에게 새로 생긴 또 하나의 책임감이 바로 나의 아기라는 점이 난 정말 기쁘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나의 아기. 내가 누군가를 남편보다 더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 미안! ^^;;). 매일매일이 새롭고 또 앞으로 아기가 자라며 우리가 함께 겪을 많은 일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우리 엄마가 내게 늘 그래 오셨듯이 우리 아기에게 내가 좋은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