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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Mar 10. 2018

미국 약대 3학년생의 이야기

로테이션 1, 여섯 번째 날 (02-26-2018)

나는 약대에 다닌다. 미국에서 약대를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는 방법, 대학교 졸업하고 가는 방법, 직장 다니다가 약대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들어가는 방법 등 다양한데, 나는 대학교 졸업하고 1년 동안 약대 갈 준비를 하고 나서 약대에 들어온 경우이다. 약대 준비하는 1년 동안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약대 원서를 낼 때 제일 중요시했던 부분은 차를 타고 왕복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가 였다. (결혼하자마자 장거리 부부로 살아가기는 싫었다. 이미 2년의 장거리 연애를 하고 난 뒤여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약대 지원생들이 랭킹이 좋은 학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교, 학비가 그나마 싼 학교 등 나름대로 자기들의 기준으로 많은 약대에 원서를 넣는 반면, 나는 단 두 곳에만 원서를 넣었다. 두 군데 모두에게서 입학 인터뷰를 봤고, 입학할 수 있다는 편지를 받았었다. (별로 경쟁이 센 학교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최종 합격률 100%를 달성 한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학교들도 지원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무언가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난 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우리 학교가 좋다. 나름대로 우리 학교는 이름이 더 알려진 더 크고 유명한 약대들이 모티브로 삼을 정도의 훌륭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학교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Pharm.D. 프로그램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부분의 약대들처럼 4년제다. (현재로써 캘리포니아의 두 약대는 3년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4년을 다니면서 1학년생은 P1, 2학년생은 P2 등 차례로 P3, P4학년 이렇게 부르는데 지금 나는 P3이다. 졸업하기 전까지 마쳐야 하는 전체 8학기 중 5학기를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보낸다. 6번째 학기가 되면 처음 한 달은 마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나머지부터는 이제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의 약국을 돌며 로테이션을 한다. (사실상 이때부터는 학기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로테이션을 시작하면 하루 / 주 / 달 스케줄은 각 로테이션 장소의 약사님들에게 달렸다. 여름방학 없이 내내 로테이션을 하면서 졸업 크레딧을 받고 스스로 약사 시험 준비 & 실무 경험 쌓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의 APPE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 로테이션을 하고, 내년 2월부터 5월까지 1개의 AE (Advanced Elective) 로테이션을 하고 졸업을 하게 된다.


나의 첫 번째 APPE 로테이션은 지난주에 시작되었다. 집이 있는 곳과 같은 도시에 내가 원하는 분야의 로테이션이 있었다. P1 학년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매니지드 케어 (managed care)라는 분야이다. 쉽게 말해 보험회사와 의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환자들이 네트워크 안에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의료 비용 절감을 꾀하는 방식이다.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들이 30개, 60개, 90개 단위로 약을 센다면 매니지드 케어 분야의 약사들은 3천, 6천, 9천 명 이상의 더 큰 인구를 상대로 약장사(?)를 하는 것이다. 매니지드 케어를 얘기할 때엔 주 혹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 보험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MediCal, Medicare 등) 내가 로테이션을 시작한 이 곳에서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메디칼 혹은 메디케어를 통해 보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다.


나의 프리셉터는 Pharm.D. 약사님과 M.D. 의사 분 이렇게 두 분인데, 첫 주에는 의사 프리셉터만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매니지드 케어 회사는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 환자들이 있는데, 약사님은 하와이 출장을 나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사 프리셉터를 직접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루에 거의 6-7 시간씩 사무실에 앉아있다 오곤 했는데, 직접 얼굴 보고 하는 회의이든, 스카이프를 통해서 하는 회의이든, 컨퍼런스 전화 연결을 통해서 하는 회의이든, 인터넷에서 들어야 하는 강의이든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회의/강의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아래는 첫 주동안 내가 로테이션에서 한 일들의 요약이다.


월요일 - Presidents' day (대통령의 날)이라 휴일이었다.

화요일 - IT 테크니션 만나서 내 맥북에서 회사 업무 할 수 있게 셋업 하기. 회사 신분증과 엘리베이터, 다른 회의실 등을 이용할 때에 필요한 센서 (열쇠) 받기.

수요일 - 처음으로 의사 프리셉터를 만났다. 오전 10시에 미팅이 있었지만 취소되었다. 이 미팅을 주도하는 간호사를 만나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웹상에서 들어야 하는 설명회가 있었다.

목요일 - 10시 미팅에서 ocrelizumab과 multiple sclerosis에 대해 이야기함. 11시에 웹상으로 들어야 하는 Webinar가 있었다. 1시 30분에 스카이프를 통해 처음으로 (!) 약사 프리셉터와 대화함. 2시 30분에 스카이프를 통해 opioid 101 강의를 들음.

금요일 - 8시 미팅에서 이 회사의 네트워크 안의 의사들에게 환자를 볼 자격을 줄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이야기 하는 것을 경청함. 9시 미팅은 utilization management , quality management인데 아직도 이 미팅은 무엇을 하는 거였는지 잘 모르겠다. 10시 미팅 취소됨. 11시 미팅에서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환자의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1시 30분에 NCCN webinar가 있었고 그와 동시에 2시에 또 다른 미팅 (둘 다 웹상에서 이뤄지는 강의 / 회의).


이렇게 약사 프리셉터 없이 하는 약대 학생의 로테이션이 1주일간 흘러갔고, 돌아온 월요일 (어제) 드디어 약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영어 성씨 철자가 분명 한국 성인데 알고 보니 약사님은 중국계라고 한다. (집 전화로 가끔씩 한국어 광고 전화가 온다고 불만이셨다.)

약사님 칠판에는 그동안 이 로테이션을 거쳐간 학생들의 이름이 잔뜩 쓰여 있는데, 그중에는 눈에 익은 이름들도 더러 있었다. 출신 학교마다 다른 색을 쓰셔서 그 학생들이 내가 아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약사님 말씀에 의하면 약사님은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을 쬐끔 더 좋아하시고 그 이유는 다녀간 학생들 모두들 열심히 자기들 해야 할 일과 그 이상의 일들을 잘 해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로테이션이 내 첫 로테이션인 만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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