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군 May 22. 2018

크림 두개를 섞어야 한다는 환자분

세번째 로테이션 첫번째 날

오늘 드디어 세 번째 로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돌고있는 APPE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 로테이션 시리즈는 모든 약대에서 졸업하기 전 1-1.5년정도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로테이션인데, 우리 학교에서는 총 7개의 APPE 로테이션 블록(block)을 제공한다.

- 이 중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1 블록을 방학 블록으로 뺄 수 있고 (예를들어 나는 R6 블록이 방학이다. 각자 자기들 일정에 맞춰 R1 부터 R7중 하나를 뺄 수 있다),

- 2 블록은 "교양"블록이며 (electives 인데 이 상황에서도 "교양"으로 번역 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처음 한 두 로테이션이 교양 로테이션이었다. Managed care 하고 outcomes research),

- 1 블록은 community practice (동네 약국 정도?),

- 1 블록은 health system practice (병원에서 한두 분야를 심층적으로 배우는것--감염병 infectious diseases, 정신의학 psychiatrics, 등등),

- 1 블록은 general medicine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의 약을 관리 하는 등 전체적인 흐름을 배우는것),

- 1 블록은 ambulatory care (약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 환자와의 면담 후에 의사나 전문간호사nurse practitioner와 같이 처방을 할수도 있다) 이다.


이번 로테이션은 "동네 약국" 로테이션이다.

동네 약국에도 종류가 여럿 있는데, CVS, Walmart, Walgreens, Costco 같이 체인으로 여기저기 있는 약국들도 있고, 자영업 하는 약사님들의 개인 약국들도 있고, 또 병원에서 퇴원 하는 환자들이나 다른 입원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약을 파는(??) outpatient 약국들도 있다.

이 "동네 약국" 로테이션은 이들 중 아무데나 지원할 수 있는데, 나는 우리집에서 5-10분도 안걸려 있는 한 병원의 outpatient 약국에 배정 받았다.


오늘은 첫번째 날이었고, 그래서 내심 일찍 끝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고 갔었다. 근데 이건 내 친구가 말한대로 "wishful thinking" 이었다.

친구야 너는 지하 벙커에서 일하는구나


아침 8시에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갔었다.

나랑 같은 3학년 친구들이 나까지 3명 (우리는 6주짜리 APPE를 도는 중), 2학년 친구들이 2명 (이 친구들은 여름방학동안 4주짜리 "IPPE"로테이션을 한다)이었다.

그래도 "outpatient"에서 로테이션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두 3학년 친구들과 2학년 친구 한명은 inpatient, 또 2학년 친구 한명은 다른 병원에서 로테이션 하는데, 오리엔테이션만 이 병원에서 하려고 오늘 온거라고 한다.)


8시 30분쯤 신분 뱃지를 만들고 (사진 찍고, "약국 학생 인턴"이라고 적혀있는 아이디 카드를 준다), 오리엔테이션 해주신 약사님이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 갔는데, 나를 outpatient 약국에 데리고 가시더니

"준비 되었니?"

라고 일방적으로 말 하시고는 (질문이 질문이 아니었다 ... 내가 "네??? 뭐가요?" 라고 채 말 하기도 전에 휙 돌아서 나가시던 약.사.님 ...) 금새 사라지셨다.


11시 경.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엔 어느새 30개의 태그가 들려있었다.

환자들이 약을 찾으러 오면 카운슬링을 해야하는데, 약 하나에 태그 하나이다.


1시 반 경. 점심을 이때쯤 먹으러 가라고 했던거 같은데 아직 내 손엔 끝나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점심시간 준수가 정말 무지무지 중요하다. 특히 이 병원은 고용자 연합employee union 입김이 무지 세기로 유명한 곳이라, 점심시간도 다른 왠만한 "동네약국" 처럼 30분, 40분이 아니라 1시간 빵! 하고 준다. 만약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 점심시간을 안/못 지키고 단 몇분이라도 초과해서 일을 하면 이게 또 위로 얘기가 들어가고 등등 골치가 아파진다. 하지만 나는 일하러 들어온시간 나가는 시간 보고 해야하는 그들과 달리 돈 안받고 로테이션 하는 학생 이니까 ... 점심을 조금 늦게 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 배도 많이 안고팠다.)


점심을 먹고 3시경 돌아와보니 아침에도 바쁜줄 알았던 약국이 더 바빠져있었다.

(이 로테이션을 미리 거쳐간 친구에게 물어보니 월요일은 바쁜 날도 아니라고 한다 ... ㅎㅎㅎㅎ 화요일이랑 수요일이 제일 바쁘다는데, 내일 나 블로그 쓸 기운이나 남아 있으려나?)


주섬주섬 내 컴퓨터 앞에 서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테크니션 pharmacy technician 한분이 와서 어떤 환자분이 크림 2개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시스템에 들어온 처방전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번 로테이션에서 해야하는 일들 중 하나는 이런 경우에 처방을 한 의사나, 그 의사와 같이 일하는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처방전을 빨리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다.

간호사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 크림 두개는 일반 의약품 over-the-counter 라고 한다.

이 말인즉, 처방전을 의사가 굳이 써 보낼 필요가 없이 그냥 약국 진열대에서 환자가 직접 가져와서 살수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분께 그리 말씀 해드리니, 나에게 나와서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 하셨다.

의사가 환자에게 말해준 약은 두가지였는데, 첫째, hydrocortisone 1% cream과 둘째, clotrimazole cream 이었다. 환자분께선 의사가 이 두 약을 1:1로 섞어 환부에 바르라고 일러줬다고 그러셨었다.

첫번째 약은 찾기 쉬웠다.


두번째 약, clotrimazole 크림은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무좀 athlete's foot 약"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브랜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질 효모 감염증 vaginal yeat"에 사용되는 약이었다.

처음에 무좀약을 추천해 드리니 환자분께서는 외음염 vulvitis 이 있다고 그러셨다. 사실 무좀약이나 질 효모 감염증 약이나 약의 성분과 강도(?) strength 는 똑같았기 때문에 이 둘중 어떤 약을 쓰던지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환자분은 무좀약을 "그곳"에 바르기가 조금 꺼려진다고 그러시며 약사에게 직접 확인을 해줄수 있느냐 물으셨다.

(내가 학생이라서 무시하는게 아니고 그냥 평소 믿고 지내던 약사님들께 재차 확인을 받아보고 싶으셨던 것.)


다시 약사님들이 계신 약국 안쪽으로 들어가 한 약사님께 직접 여쭤봤다. 난 이 질문이 굉장히 간단한 질문일 줄 알았다.

약사님이 하고계신 일도 있었고, 그냥 "응 그거 같은거야~ 무좀약이나 질 효모 감염증 약이나 둘중 아무거나 써도 돼~"라고 간단히 넘기실 줄 알았는데!

약사님께서는 친히 환자분의 기록을 찾아보시고 (병원 약국이라 이게 또 좋구나! 진짜 "동네약국," 특히 체인점으로 되어있는 큰 약국들이었으면 꿈도 못꾸었을 일!), 오늘 의사가 환자분을 보고 남긴 기록들 중에서 이 환자가 질 내부가 아닌 질의 입구쪽에 감염이 있다는 기록을 찾아내셨다.

"질 효모 감염증"용으로 나온 약은 질 내부에 약을 삽입하게끔 나온 구조라, 이 환자분께는 적합한 투약 방법이 아니었다.

약사님께서는 내게 두 약을 손가락에 조금씩 얹어 다른 손으로 잘 섞어 바르라고 전해달라는 말을 하시고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하셨다.


다시 약국 카운터 밖으로 나가 환자분께 약사님이 설명해 주신대로 말씀을 전하니, 환자분께선 도와줘서 참 고맙다고 하셨다.

다른 일들 처리할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첫째날부터 정규직 직원마냥 8시간 가까이 일 하면서 이것저것 다른 많은 새로운것들도 배웠지만, 이 환자분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조금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이렇게 블로그로 글을 남겨본다.


집에 와서 저녁을 후다닥 먹고, 8시경 아기를 재우고 난 직후 나도 같이 잠들었다.

밤 12시쯤 일어나서 다시 잘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 컵라면 하나를 끓여먹고 (ㅎㅎ) 일어나 글을 하나 써본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하는데 지금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간다! ㅋㅋ)


+ 제목부분에 쓰인 배경 사진은 구글 검색에서 퍼옴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로테이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