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환자분들 이야기입니다
“블록 시스템”을 모토로 하는 우리 학교 수업은 보통 한 과목을 3-5주 사이에 배우게끔 하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한 블록 안에 한가지 공통 주제로 묶인 여러 질병들을 배운다. 당뇨병, 고혈압, 등의 성인병이 묶인 블록도 있고,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 등 정신 질환이 묶인 블록도 있고 그렇다.
예외적으로 1학년때 듣는 몇 과목은 한 학기 전체에 걸쳐 거의 12-14주 동안 배우기도 하는데, “셀프 케어”라고 하는 수업에서는 약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이런 저런 다양한 수업들을 들었다. 그 중에는 캘리포니아 약사 법에 관한 수업, 처방전 없이 살수 있는 약들에 대한 카운슬링에 대한 수업, 또 카운슬링에 쓰일 수 있는 다양한 테크닉과 약사로서의 전문적인 대화 방법 등을 배우는 수업 등이 있었다.
프로페셔널 함을 유지 하는것은 어렵고도 꼭 필요한 일인데, 예를 들어 발기 부전 약이나 질염 치료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부끄러워 하는 내색을 비치면 안된다는 것, 속어나 지칭하는 “별명”으로 생식기관을 부르지 말 것, 또 얼굴 표정도 담담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 하라는 것 등 뭔가 당연하면서도 은근(?) 주의력을 요구 하는 기술들을 머리로 배우고 말로 익히는 수업이었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환자의 상황을 멋대로 슬프다고 단정 짓거나 혹은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empathy 이지, sympathy 가 아니라는 것 이었다. 한마디로, 환자의 슬픈 이야기나 상황을 이해는 하되 그 상황에서 개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카운슬링 테크닉들은 1학년때 처음 배우고서 아직까지도 잘 써먹곤 하는데, 특히 이번 로테이션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루에 40-50명이 넘는 환자분들(혹은 보호자분들)을 1:1로 마주하며 찾아가시는 약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 드리는것이 나의 주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전에 약국에서 일을 하며 정신 없이 여러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운터들을 돌면서 환자분들을 한분 한분 차례차례 만나 약에 대한 설명을 해 드리고 있었다.
어느 여성 분께서 세 가지 약을 찾아가시는 길이었는데, 처음 두 약은 많이 찾아가는 보통 약(?)들이었지만 세번째 약은 misoprostol 약이었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 했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투약법을 알려드렸다. 이 약은 전혀 연관성 없는, 두가지 경우에 쓰일 수 있는데, 1. 소화성 궤양 질환 이거나 2. 낙태 이다.
나중에 카운슬링 한 기록을 시스템에 남기려 환자분의 태그를 약국 컴퓨터에 연결 된 바코드로 스캔 하다가 최근에 찾아가신 예전 약들 목록에 임산부용 비타민 등이 있는걸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다.
오후에도 카운슬링은 계속 되었다.
어떤 남자 환자분께서 quetiapine 약을 찾아가시는데 카운슬링을 하며 잠깐 얘기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약은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주로 쓰이는데, 환자분께선 어떤 용도로 쓰시는지 혹시 아시나요?”
“밤에 잠을 통 잘수가 없다고 얘기 하니 의사가 새로 처방해준 약이에요.”
“아 새로 드시는 약이시군요. 이 약은...”
“작년 11월 아내가 죽은 이후로 매일 밤 두시간 마다 잠을 깨요.”
최대한 내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괜히 화제를 돌려보려고 시도도 해봤다.
“집에 혹시 애완동물은 없으신가요?”
“강아지가 세 마리 있죠. 치와와 두 마리랑 퍼그랑 치와와가 섞인 잡종 개 한 마리. 그래도 집이 전에 비해 너무 조용해요.”
약국에서 제일 많이 나가는 약들 중 하나는 통증약들인데, 보통 타블렛 tablet (한국어로 “정” 이라고 하나?) 으로 된 약들을 많이 찾아가시지만 때때로 피부에 붙이는 패치 patch 형태도 자주 찾아가시곤 한다.
오후 느즈막히 만난, 다른 통증약들과 함께 fentanyl 패치를 찾아가시는 환자분을 카운슬링 할 기회가 있었다. 다른 약들은 진작부터 드셔왔지만 패치가 처음이라고 하시는 환자분께 패치를 버릴 때엔 혹~~시 누군가 혹은 동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실수로 약을 건드리지 않게끔 안쪽으로 접어서 약이 있는 부분이 서로 맞닿은 상태가 되게 버리시라 말씀 드렸다.
이에 대한 환자 분의 대답이 예고도 없이 확 내 가슴을 후벼파고 들어 왔으니...
“피부에 붙이고 있는 동안에도 혹시 약이 샐까 염려 해야 할까요? 암 투병중이라 몸 전체에 있는 통증 때문에 패치를 꼭 붙여야하는데, 집에 4살배기 아들이 있거든요 ...”
세 환자분 이야기를 들을때 모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이야기를 들으며 슬퍼진 마음을 밖으로 비치지 않으려 많이 노력 했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까지 괜찮은 척 할수 만은 없었다. 이 마음을 결국 블로그에 조용히 털어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