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푀유 나베 (mille-feuille nabe)

비쥬얼은 좋았으나 맛이 없었다. 진짜로 아무 맛이 없었다. ㅠㅠ

by 장군

1년 안에 있는 여러 달 중에서 8월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달이다. 특히 결혼을 하고 나서는 더 그렇다.

원래 아빠, 친할아버지, 큰고모부의 생신이 연달아 있어서 결혼 전에도 가족들이 꼭 모여서 밥을 같이 먹곤 했는데, 결혼 하고나서는 같은 8월달에 있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형, 그리고 7월 말에 있는 남편의 동생 생일까지 대여섯개의 생일을 우르르 챙기려 양가가 다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2015년 3월에 결혼 하고 나서 그 해 8월부터 매 해 모여왔으니 햇수로 어느새 4년째 모이게 된 것이다.

(한국식 부페, 일본식 부페, 멕시칸 부페에 이어 올해는 중국식 부페에 가서 먹었다. ㅋㅋ)


영어가 주 소통 수단이긴 하지만, 친정 가족 어른들은 아무래도 한국어를 더 편해하시고, 시댁 가족들은 스페인어를 쓰시기도 한다. 처음 1-2년차에는 한국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또 다시 반대로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한국어로 통역을 시도하긴 했었지만 그 이후에는 그냥 말 되는대로 이해 되는대로 콩글리쉬 (Korean + English), 스팽글리쉬 (Spanish + English) 써 가며 우리 가족만의 소통방법을 꾸준히 개발해오고 있는 중이다.


올해도 여느 해 처럼 잘 먹고 집에 돌아 왔는데, 남편이 나에게 얘기를 하나 해줬다.

큰고모께서 시어머니께 내가 집안일과 요리를 많이 하느냐고 여쭤보셨고 시어머니는 안한다고 대답하셨다는 것. (근데 반박할수 없는 사실 ....)

그냥 우스개 소리로 남편은 말을 전달해준거였는데 난 마음 속에서 막 찔렸다. ㅠㅠ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건 아니고 ... 내 빨래랑 아기 빨래는 내가 하고, 아침/저녁 설거지도 내가 하기도 한다. 근데 딱 그뿐인것 ...)


사실 결혼 하고나서 음식을 해보겠다고 몇번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잡채나 고기, 떡국같이 시댁 식구 입맛에도 맞는 음식들이 잘 나오기도 한 때도 있었지만 ...

감자 샐러드를 만든다고 그 걸죽한 감자를 믹서기에 돌리다가 믹서기 모터가 고장난 이후로, 무서워서 (이 핑계로) 요리 손을 전혀 안댔다.

그런데 남편의 얘기를 전해듣고, 마침 로테이션 끝나고 1주 쉬는 방학이기도 하니 내가 요리를 한번 다시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봤자 하루 날 잡아서 저녁 한끼 한다는 것이었지만. 구구절절히 말 안해도 시댁 식구들 다 그렇게 알아들으셨다. 좋은거야 나쁜거야 ㅠㅠ)


메뉴는 그 이름도 화려한 밀푀유나베.

집 근처 중국 마켓에서, 또 학교 근처 한국 마켓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재료를 사다 날랐고,

남편의 도움을 조금 받아 비쥬얼이 그럴싸하게 나왔다.

육수 붓고 끓이기 전 예쁜 모습. 끓인 뒤엔 맛도 모양도 안예쁜것 흑흑


그런데 딱 그뿐이었다. 나름 열심히 국물 우려낸 육수를 붓고 끓였는데, 맛이 정말 밍밍했던 것. 맛이 "없었다."


30분 걸리는, 난이도 중/하급 요리라고 인터넷 블로그들에는 떡 써있건만 어쩐 일인지 나는 준비 다 해서 음식 내어놓는데까지 한시간 반이 걸렸고 ㅋㅋㅋ

(시부모님이 아기 데리고 근처 마트에 가셔서 필요한 쇼핑을 잠깐 하고 오셨을 정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껏 배가 고파진 시댁 식구들은 내가 만든 음식을 드시긴 하셨으나 ... 그냥 드시기만 하셨다는 이야기.

그와중에 편식력 강한 남편의 동생은 고기만 골라 먹고, 시아버지는 내 맘이 다칠까 싶으셨는지 시동생이 골라낸 배추와 꺳잎을 몽땅 가져다 당신 그릇에 옮겨 드셨다.

남편의 형은 배가 무지 고프셨는지 팽이버섯 한덩이를 뭉텅 집어다가 그냥 한입에 꿀꺽 했다.

시어머니는 원채 속이 약하시고 특이하게도 배추/양배추를 잘 못드시는데 (완전 깜빡했다 ㅠㅠ) 그래서 고기와 깻잎 위주로 드셨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력없는 똥손이라 조금 (많이) 망한 요리였다.

망해도 자꾸 해봐야 없는 실력도 생길텐데.

시가족들이 내가 요리를 하게 두실지 모르겠다. ㅋㅋ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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