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면 고2 시절부터 딱 이어서 재생될 줄 알았지
2008년 5월.
한국 나이로 18살 고2였던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여동생과 함께 인천 국제공항에서 미국 LA로 행하는 비행기를 탔다. 수능을 2년도 채 안 남긴 여고생의 나였다.
미국 오기 직전엔 동생들과 한달정도 단기간으로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닌 기억도 있고, 4월 말에 다니던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 했을때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선미가 자퇴서를 내는 날이 올줄이야!”라는 소리도 들어보고, 오기 직전 날까지 여러 친구들을 만나 서울 구경도 같이 하고.
이래 저래 시간이 흘러 결국 5월 중순,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이날은 우리 엄마 생신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사랑하는 막내딸이 생일날 엄마와 한국을 떠나간다며 많이 섭섭해 하셨었다.
미국 와서 처음 2주는 시차 적응하느라 내리 밤낮 바뀌어 잠만 자고 깨어있어도 몽롱했던 그 기억밖에 없다.
미국 와서 처음 2년은 고등학교 11학년, 12학년으로서 그동안 못 들은 “졸업 필수 과목”을 몰아 듣느라 정말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공부 했었다. 신기하게 첫 수업부터 영어가 들리긴 하는데 (한국 고1때 수능 대비로 문법 공부를 엄청 했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이때 쓰던 교재가 엑스텐 이었던가.. ㅋㅋㅋ) 말은 죽어도 완벽하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 수업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도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 조용히 속으로만 “저요 저요!!!!!!!”를 삭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배운 표현이지만 이런 상황을 “wall flower”라고 부른다고 한다(벽에 조용히 붙어서 아무말 없이 있는 꽃처럼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있는 사람).
그 다음 2년은 동네 커뮤니티컬리지에서 편입을 목적으로 또 열심히 공부 했고, 이때 지금의 남편도 만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의지를 많이 하고 위로를 많이 받았었다.
또 그 다음 2년은 좋은 주립대에 가서 화학 전공으로 공부를 또 죽어라 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준정규분포 벨 커브의 평균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가 있구나 하며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학부를 졸업 하고, 1년간 다시 커뮤니티컬리지로 돌아가 수업도 듣고 학교 과외 센터에서 일하며 돈도 벌면서 약대 갈 준비 & 결혼 준비를 했다. 그러고서 2015년 3월 결혼을 하고, 그 해 8월에 약대를 시작했다.
2019년 5월 약대 졸업을 앞둔 지금, 로테이션을 열심히 하고있지만 그 와중에 6주간 방학이 있어서, 한국을 떠난지 10년만에 남편과 아기를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기로 큰 맘 먹고 지금 나와있는 중이다.
남편과 아기는 그네들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나와본 것이다.
LA에서 인천까지는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밤 비행기라 아기도 대부분 자면서 잘 왔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의 긴 라인을 드디어 벗어난 뒤, 마중 나오신 이모와 외할머니와 반갑게 인사 했다.
남편이 알아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다같이 가서 치킨 두마리를 시켜 먹고 (밤 1시였는데!!), 차 안막힐때 빨리 가겠다며 우리를 배려해 일찍 떠나시는 이모와 할머니를 배웅하며 한국에서의 첫 밤이 저물었다.
한국에서의 “첫째 날,” 목요일 아침.
한국와 캘리포니아 시차가 꼬박 16시간이라 (특히 아기의) 잠 사이클이 뒤집힐까 많이 걱정했었는데, 우리 가족 모두 생각보다 아침에 눈이 쉽게 떠졌다.
다행히 묵는 곳 근처가 엄청 번화가라, 필요한 모든것이 다 걸어갈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제일 먼저 다이소에 가서 생필품들(을 비롯해 좀 쓸데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귀여운 몇가지 물건들)을 잔뜩 사왔다.
묵는 곳 호스트 아저씨께서 남기신 노트에 “음식물 쓰레기는 분홍색 봉투에 버리시고 그 외 일반 쓰레기는 하얀 봉투에 버리시면 됩니다” 하길래,
다이소 가서 직원 분께 “음식물 쓰레기 버릴때 아무 분홍색 봉투에 넣어 버리면 되나요? 분홍색 봉투 어디에 있어요?” 여쭤봤다가, 그게 아니라고, 규격 봉투가 따로 있고 동네 마켓같은데 가야 살수 있다는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말.로.만.듣.던 맘스터치에 가서 사이버거와 불고기버거도 먹어봤다.
맘스터치 가서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외국에서 갓들어온 티를 안 내리라 다짐 했었는데 (디럭스 버거는 delux burger를 저렇게 써놓은거 같은데,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 표기대로 읽어야지! 한국어 발음 틀리지말자 이상하게 들리지말자 맘속으로 주문을 외우던 와중), 여기서도 음식을 “포장” 해가겠다는 말을 몰라서 “to-go로 주세요” 했다가 “네???” 하면서 놀란 아저씨를 볼수 있었다.
미국에서 스타벅스를 좋아라 하는 남편이, 묵는 곳 바로 밑에 있는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남편과 아기와 나 이렇게 셋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미국에서 시키던데로 그란데 사이즈 아이스 커피 둘을 시켰다. 그런데...
1. 한국 스타벅스 왜이렇게 비싸지? (아이스 커피 두잔이면 미국에선 $5 정도. 한국에선 거의 만원... 거의 두배네요 ㅠㅠ)
2. 뭐라구요? 하프&하프 우유가 없다구요????? (우유와 버터를 반반 섞어서 만든 거라고 그랬던 거 같다. 쓴 커피에 넣으면 맛이 부드러워지면서 색깔도 연한 갈색으로 바뀌며 참 예쁜데...)
3. 결론적으로 커피가 너무 강하고 써요... (하프&하프 우유를 못 넣어서 나와 남편의 입맛엔 커피가 넘 진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더이상 가지 못할 것 같다. 스타벅스 매니아 남편, 한국에선 여기저기 다른 카페들을 많이 시도해봐야 할듯.
이모가 용돈 겸 주신 상품권을 쓰러 근처에 있는 큰 마트에 갔다. 아기 기저귀가 제일 필요했는데, 마트에 가는 길에 마주친 한 아기 엄마께 “저 마트에서 기저귀 파나요?” 여쭈어보니, “아 저는 저기 비싸서 안가요! 보통 기저귀는 다 인터넷으로 사거든요...” 하신다. 한국에 계좌나 카드가 없어서 우린 인터넷으로 아무것도 못사요... ㅠㅠㅠ
근데 마트 계산대에서 백인 아빠와 혼혈 아이 둘을 만났다. 근데 백인 아빠와 아이 둘 모두 한국어를 참 잘 했다. 아이들 중 하나가 나의 아기를 보고 “귀여워요” 해줘서, 나도 그 아이 보고 “고마워! 근데 너도 귀여워” 해줬다. 백인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아빠 미소를 지으셨다.
동네를 어기적 어기적 돌아다니며 하루의 마무리를 하며 집 근처에서 사온 분식으로 마무리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동현관 벨이 울렸다.
중학교때 친구들하고 한국 와서도 꾸준히 연락 하고 있었고, 얘들한테 묵는 곳 주소를 주긴 했지만 얘들은 토요일에 온다고 그랬었는데...??
근데 문 열고 보니 친구들이었다.
먹을거랑 애기 선물을 들고 갑자기 찾아온 것 ㅋㅋㅋ
막판에 찍은 단체사진으로 첫째날 이야기는 끝을 내야겠다.
엄마한테 애들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니,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은 하시면서도 다 맞추셨다. 울 엄마도 대단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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