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가 통증을 잘 참는 모양이다
2017년 5월, 첫째 세찬이가 태어나던 날 아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금요일에 약대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토요일에는 도보 30-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월마트까지 남편이랑 시어머니 손 잡고 일부러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다.
예정일이었던 일요일에도 아기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월요일 밤, 남편이랑 황새가 아기 물어다 주는 영화 Storks를 보고 잤다.
화요일 아침 9시, 남편이랑 시어머니는 근처 헬스장에 운동 하러 가고 나는 집에 혼자 있는데, 아랫배가 슬슬 아파왔다.
임신기간 내내 변비로 고생 했던지라 이번에도 변비인줄 알고 화장실만 들락날락 했는데, 마침 카톡 하고 있던 엄마가 그거 진통인거같다며 빨리 아플때랑 안아플때 시간을 기록 해보라고 하셨다. 얼른 앱을 하나 다운 받아서 배가 아픈 시간 기록을 해보니, 아픈 시간이 길어지고 또 더 자주 아프다는걸 알게 되었다. 임신/육아 책에서 읽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 진진통의 패턴이었다.
그 사이 빨갛게 비친 이슬을 보고, 얼른 남편에게 카톡을 하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곧장 집으로 왔다.
어디서 읽은건 있어가지고 병원 가기 전에 뭐라도 먹고 가고싶다고 하니 남편이 후다닥 샌드위치를 만들어줘서 먹고 있는데, 남편이 “너 진짜 아파보여. 병원 지금 가야할거같은데?”
그래서 남편, 시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샌드위치 마저 다 먹은건 안비밀..)
오후 12:30. 임신 9개월차 즈음 미리 접수 (pre-regiatration) 해둔 병원에 체크인 하고, 병원 침대에 누우니 간호사가 내진을 했다. 벌써 자궁 경부가 8cm 열렸다고 그런다.
그 사이 무통주사랑 항생제 등을 병원측이 후다닥 준비 해줘서 맞기 시작하고 (무통주사는 진짜 천국을 느끼게 해준다! Epidural에 주사 놓는게 아픈데 그 이후엔 고통이 하나도 안느껴진다), 의사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이제 자궁 수축은 간호사가 보는 모니터 상으로만 보이는 상황 (내가 자궁 수축을 느낄수 없으니).
2시쯤 의사가 왔고, 몇번 푸쉬 하다가 내가 5분만 쉬자는 헛소리 해서 의사랑 간호사들이 “안돼요!! 계속 더 푸쉬 해요!!!” 하기도 하며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출산 과정은 2:38분, 아기가 태어나며 마무리 되었다.
8파운드 12온즈 (3.9 kg), 21 인치 (53 cm) 남자 아이. 세찬이의 탄생이었다.
***
2020년 11월. 둘째 예정일은 원래 12월 2일 이었는데, 왠지 이 아기는 빨리 태어날거 같단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학생 신분이던 2017년과 약사로 재택근무 일 하던 2020년의 나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지금 일하는 회사는 육아휴직 등 베네핏이 좋다고 다들 그러기도 해서 참 다행이고 감사했다.
11월 첫째주까지 일 하고, 둘째주부터 육아휴직으로 쉬기 시작했다 (쉬는동안 일에 미련이 남아 한두번 원격 로그인 하던거 인사과에 걸려서 육아휴직 끝나는 기간까지 로그인 차단 당한건 안자랑 ㅡㅡ).
일 마지막 날에는 동료들이 virtual babyshower 해주며 아마존 기프트카드를 $400이나 (!) 해줬다.
원래 11월 셋째주 까지 일 할까 고민 많이 했는데 첫째주까지 일 하기로 한게 정말 잘 한 일이었다. 아기가 11월 중순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화요일 새벽 2:30경. 기분 나쁘게 아랫배가 아파서 일어났다. 변비때문인줄 알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혹시나 싶어서 앱을 다운받아 아픈 시간을 기록 하려고 했는데, 이게 아픈건지 아닌건지 조금 헷갈려서 기록은 엉망진창 랜덤이었다.
세시 쯤, 남편을 깨워 살짝 언질을 놓았다. 배가 아픈데 느낌이 좀 세찬이 태어나던 날이랑 비슷하다고. 남편에겐 일단 좀 더 자고 있으라고 했다.
새벽 3:30, 빨갛게 이슬이 비쳤다. 어머 망했어! 애기 예정일이 한참 남아서 아직 애기 침대도, 카시트도 준비 안해뒀는데! 병원 가방도 아직 안챙긴 상태였는데, 이 새벽에 혼자 위층 아래층 왔다갔다 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애기 옷, 나랑 남편 먹을 간식 (제일 중요했다 ㅋㅋ), 핸드폰 충전기, 보험 카드, 지갑 등. 이 와중에 위층 화장실 화장지가 다 떨어져 차고에서 화장지를 새로 뜯어 그것도 보충 해 놓았다. 빈속에 가면 안될거 같아 수박이랑 빵 등 간식도 좀 먹었다. 왔다갔다 하니 좀 통증이 덜 한 느낌. 이번 출산도 어렵지 않겠군 혼자 흐뭇해 했다.
새벽 4:30, 남편을 깨워 같이 병원 갈 채비를 했다. 이 와중에 난 화장을 하고 가겠다며 눈썹 그리고, 아이쉐도우 하고, 눈 그리고. 마스크 쓸거지만 립스틱도 발랐다.
새벽 5시, 시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병원으로 출발. 가는 길 차 안에서 무통주사~ 노래를 불렀다. 배가 아플땐 진짜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자궁 수축 없을땐 그래도 노래 부르고 농담 할 여유가 있었다.
새벽 5:30. 미리 접수 해둔 병원(세찬이가 태어난 병원이랑 같은 병원이었다)에 가니 오늘 체크인 하는 산모가 내가 벌써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란다. 애기 낳기 좋은 날인가보구나.
간호사가 내진을 하더니 뭐라더라? your bag is bulging!!! 이랬던가? 아기가 있는 막이 다 느껴진다는 말이었는데 이 말이 10cm 다 열렸다는 말인줄 몰랐었다 ... 그렇다. 자궁 경부가 다 열려서 이제 푸쉬만 제대로 하면 아기가 언제라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와중에 자궁이 수축할때마다 10점 만점에 12점으로 아파서 “저기.. 무통 주사는요?” 하고 물어보니 너무 늦었단다. 무통 없이 생으로 낳아야 한다는 말씀... 지옥같은 자궁 수축 때마다 남편의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꽉 잡으며 소리를 꽥꽥 질렀다. 나중에 남편이 하는 말이 내 얼굴이 꼭 토마토 같았다고... (딴말이지만 이번 임신중에 방울토마토를 정말 많이 먹긴 했다.)
의사가 6시쯤 왔고, 자궁 수축 한 세번 만에 애기가 나오면 정말 좋겠다 생각 하며 첫번째 수축 때 푸쉬를 하는데 “응애!!!!!”하며 둘째가 태어났다. 6:19AM. 병원에 체크인 한지 한시간도 안되어서 였다.
6파운드 14온즈 (3.1 kg), 20 인치 (51 cm) 여자 아이. 세진이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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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두 아이 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세진이가 일어나 울기 시작한다. 밤 12시 반. 애기 젖먹일 시간인가보다!